어른이 돼도 외로운 상태에 놓이거나,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사회통념을 생각없이 보면 위험한상태에 놓일 수 있다. 저자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범죄가 늙어가고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살인, 강도, 성폭행 같은 범죄는 20대가 가장 많이 저질렀다. 이어 10대>30대>40대 순이었다. 그러나 2006년에는 강력범죄를 저지른 연령대에 30대가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40대>20대>10대 순이다. 60대 이상의 강력범죄도 늘었다. 2014년에는 40대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50대>30대>20대 순이다. 40대의 비율이 높은 것은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다.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이창무·박미랑, 메디치, 2016.4)는 대검찰청 통계자료를 분석해 위와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사회의 노령화 및 노령인구의 활발한 사회활동은 범죄가 늙어가는 이유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경제적 부담이 더 늘어난다. 저자들은 이창무 중앙대 교수(산업보안학)와 박미랑 한남대 교수(경찰·범죄학)다.
강남역 여대생을 상대로 한 묻지마 살인, 이웃에 사는 중학생을 성폭행한 소아성애자, 수십년간 남편의 가정폭력 아래서 지내온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 최근 벌어진 범죄들은 보면 그 형태가 이전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의 3부 ‘범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에서 범죄의 시작은 범죄 수법과 범죄 행동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학습하면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범죄의 진화와 노령화
책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구절이 있다. “인간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살인, 강도, 성폭행과 같은 미시범죄의 위험뿐만 아니라 학살, 전쟁, 착취와 같은 거시범죄의 위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저 범죄가 나를 비껴가리라는 막연한 믿음만 있을 뿐이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범죄에 대한 무지가 키운다. 저자들은 사람들이 범죄를 피하기보다 범죄를 깊이 알았으면 한다. 범죄는 범죄 동기와 범죄 기회가 마주쳐야만 발생한다. 이른바 ‘박수이론(clap theory)’이다.
책의 1부 ‘범죄는 어디에서 싹트는가’에는 강한 척하고 자존감 있는 인간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범죄자들이 나온다. 연쇄 살인범들의 경우 사람들이 떠받드는 경찰을 조롱해 자신이 사회에서 가장 강한 존재임을 내비치고 싶어 한다. 또한 그들은 경찰에게 잡히지 않는다면 경찰이 자신들을 두려워하게 될 거라고 여긴다. 그래서 연쇄 살인범들은 대개 흔적을 남긴다. 예를 들면, 워싱턴DC에서 22일 동안 10명을 무차별적으로 쏘아 죽인 범죄자는 사건 현장에 죽음을 상징하는 타로카드를 남기고 갔다. 카드 뒷면에는 “경찰관들아! 나는 신이다”라는 문구를 적었다.
자존감이 계급을 중심으로 달라지는 군대도 범죄의 온상이 된다. 군대 내에는 계급이 높은 선임병의 논리가 상식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만연해있다. 가해자들은 장난 혹은 친근감을 내세워 피해자의 감정을 묵살하고 자신들의 언어로 범죄행위를 재해석해버린다. 저자는 성폭력 범죄자 역시 상실된 결정권과 자율성을 표출한 것이라 보고 있다. 그들은 성적 욕구나 성적 만족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심한 피해의식과 불안감을 지니고 있다. 집에서 부모에게 폭행당하고 무시당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신을 높여줄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어려서 정상적인 교육이나 관심, 애정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흉악범이 된다고 책은 말한다. 심리적 무력감과 마주한 인간에게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강하려는 본능적 욕구가 강하게 작동한다. 힘이 있는 인간이고 싶고 누군가를 통제하는 인간이고 싶은 것이다. 반면, 커가는 과정이나 어른이 된 후에 자극을 받아 좋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릴 때 사랑받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도 어른이 돼 외로운 상태에 놓이거나,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사회 통념을 계속적으로 생각 없이 보게 된다면 이 역시 위험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저자들은 이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존재감 드러내기 위해 범죄 저질러
2부 ‘범죄 앞에서 고정관념은 왜 위험한가’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깨진 유리창 이론’이 흥미롭게 제시된다. 책에 나온 예로, 길바닥에 자동차 두 대를 두는데 한 대는 번호판을 떼고 보닛을 열어두고 다른 한 대는 깨끗한 상태로 둔다. 그러면 몇 시간 뒤 번호판을 떼고 보닛을 열어놓은 자동차는 모든 부품이 털리고 유리창이 깨졌다. 1주일 후에는 차체가 박살나 고철이 되어버렸다. 반면 깨끗한 상태로 둔 차는 시간이 지나도 멀쩡했다. 법과 규칙을 그런대로 잘 지키던 사람들도 주위 분위기만 조성되면 얼마든지 폭력과 범죄 행위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사회질서라는 것이 정말 지키기는 어렵고 한번 무너지면 순식간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범죄의 예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생물학을 내세웠다. 범죄는 환경이 나빠지면 증가한다. 다시 말해 환경을 개선하면 범죄도 예방하고 줄일 수 있다. 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주변 환경에 적응해 살게 마련이다. 인간 행동 역시 환경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설계나 도시계획 등으로 범죄를 예방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행해지고 있다.
4부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내용이다. 범죄학 이론에 의하면 ‘동기를 가진 범죄자’와 그에 상응하는 ‘취약한 피해자’, 그리고 취약한 피해자를 방어해줄 ‘보호 장치의 부재’라는 조건이 동시간대에 맞아떨어지면 범죄가 발생한다. 이런 범죄 발생 이론이 크게 적용되는 범죄에는 가정 폭력, 부부강간, 데이트 폭력, 성폭력이 있다. 범죄 피해자들은 한참 동안 자신의 피해를 부정하고 후회한다. 오랜 시간 본인을 탓하면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다.
범죄 피해자들은 그러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이들이 피해자답지 않다고 하며 피해자의 피해를 인정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는 경찰도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늦게 신고 했는지, 다른 목적으로 이제야 신고했는지, 왜 가해자와 같이 사는지 등등 캐물으며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다. 사람들은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고 한다. 피해자라면 피해를 입은 즉시 신고해야 하며, 매우 고통 속에 살아 일상을 살지 못한다고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아내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아이들마저 어리다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해자의 손아귀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부부 강간의 경우에도 피해자 이야기를 들어줄 기관이 없다면, 피해자는 강간범인 배우자와 평생 살아야 하는 고통을 안게 된다. 데이트 폭력의 경우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위협이나 멸시, 불신과 같은 심리적 학대 그리고 반려동물의 상해나 재산의 파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 다수가 데이트 폭력의 개념을 모르고 있다. 때문에 ‘그저 사랑싸움’이라 여기며 자신이 폭력을 당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성폭력은 말 그대로 폭력 범죄다. 성욕에 의한 범죄가 아니다.
남성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같이 저자는 범죄에 대한 국민들 인식의 부족함을 질책한다. 미디어가 조장하는 여성 비하 예능, 사회가 만드는 사회 약자에 대한 태도를 우리들은 그저 웃음거리로 즐긴다. 저자는 국민들이 범죄에 대한 인식을 가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만큼 사회도 범죄 예방책을 만들어야 맞다.
범죄는 사회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험해지고 있다. 저자는 범죄를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간신히 범죄 대응 매뉴얼이라는 백신을 만들어도 어느새 변종 범죄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더 좋은 백신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kimyita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