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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관행 끊으려면 부패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 필요하다”
“불평등한 관행 끊으려면 부패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 필요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06.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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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_ 16강.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의 ‘부패·청렴·투명성’

지난 18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 16강은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의 ‘부패·청렴·투명성’이었다.
김일수 명예교수의 말에 의하면, 부패에는 공적지위, 권한남용, 공익위태화, 사익추구, 법규범 위반 등이 공통 요소로 들어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과 의식의 부패’인데, 그는 이것을 모든 부패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정의와 공평과 같은 도덕적 원칙을 부패개념의 핵심에 둬야 한다는 견해에 깊이 공감한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의 부패 유발요인으로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연고주의, 온정주의, 과도한 선물 및 답례문화를 거론하면서, 이러한 관행은 “우리 사회가 아직 개방사회로 발전해 나가지 못하고, 폐쇄사회적 구습에 찌들어 있다는 증거”라고 비판한다. 여기서 김 명예교수는 ‘부패범죄에 대한 무관용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이 같은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관행의 고리를 끊으려면 부패범죄에 대한 무관용원칙(zero tolerance)이 어느 시기까지는 지속적으로 적용될 필요도 있다”는 것.

“부패가 있는 곳에선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통합이 좀처럼 이뤄질 수 없다”라고 말하는 그는 “미래세대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고, 정의롭고 선한 삶의 질서를 함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명예교수는 고려대 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찰개혁자문위원장, 제4기 법무부 정책위원장, 제12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다. 저·역서로 『한국형법 Ⅰ·Ⅱ·Ⅲ·Ⅳ』, 『새로 쓴 형법총론』, 『새로 쓴 형법각론』, 『개혁과 민주주의』, 『공정사회로 가는 길』, 『한국사회 정의 바로세우기』(공저), 『법철학』(역서), 『규범, 인격, 사회』(공역) 등이 있다.
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부패란 무엇인가?
부패는 비윤리적으로 상정된 다양한 행위유형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최근 들어 부패개념의 범주에 민간영역의 부패까지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올 가을 발효를 앞두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는 부패행위를 부정청탁 15개 유형과 금품수수 8개 유형으로 열거하고, 공공기관의 범위에 사립학교와 언론사까지, 공직자의 범주에 사립학교의 장과 교직원, 학교법인의 임직원과 언론사의 대표자와 그 임직원까지 끌어들였다. 국제기구들도 나름대로 부패에 관한 개념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일찍이 세계은행(WB)은 부패를 “사적 이익을 위한 공적 직위의 남용”이라고 정의한바 있고, 최근 들어 공직직위 남용을 넘어서 민간영역의 부패행위에 관해서도 관심을 쏟고 있다.

이상의 관점들을 종합해 보면 부패개념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공통적으로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즉 ① 공적지위, ② 권한남용, ③ 공익위태화, ④ 사익추구, ⑤ 법규범 위반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소 포괄적인 부패개념에서도 무엇인가 다른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든다. 부패는 한 사회공동체의 ‘체계’나 ‘생활세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부도덕성과 부정의, 그리고 불합리성의 표본이다. 또한 부정과 불의가 판을 치는 부패사회에서 시민들은 행복한 삶을 가꾸기 어렵다. 그러므로 한 사회가 그 역사의 희망찬 순간에 보다 나은 미래를 기획하려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반에 걸쳐, 청렴과 책임, 투명과 공정성 같은 정의원칙 내지 보편적 도덕의 원칙이 강물같이 흐르게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의와 공평과 같은 도덕적 원칙을 부패개념의 핵심에 둬야 한다는 견해에 나도 깊이 공감하는 바다. 그러려면 부패개념을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 그리고 절차적 측면과 결과적 측면에서 구조화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주관적 측면에서 부패는 하나의 성향(Disposition)이다. 그것은 청렴과 책임의식에서 이탈하려는 의도적인 성향을 말한다. 미국법에서는 이를 부패한 동기(Corrupt Motive) 또는 부패한 의도(Corrupt Intent)라고 부르며, 각종 뇌물죄의 본질적 요소로 삼는다.

둘째, 객관적 측면에서 부패는 공익을 해하면서도 사익, 즉 제3자 또는 집단과 조직을 위한 사익을 불법적으로 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자주 문제되고 있는 가진 자, 힘센 자의 갑질 행동은 대부분 부패의 객관적 측면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셋째, 절차적 측면에서 부패는 불투명하고 비공개적이며 불공정한 거래관계에서 빚어지게 마련이다.
넷째, 결과적 측면에서 부패는 위에서 본 부패양상의 집적으로써 빚어진 각종 금전적·기회적 이득의 산출과 향유를 지칭한다.
부패의 이상 네 가지 측면에 대한 느슨한 토론의 장을 위해 우선 부패는 체계(국가와 경제)와 생활세계(공적·사적 영역)에서 정의의 원칙에 대한 공격이라고 엮어놓고 출발해 보고자 한다.

부패개념의 정의론적 재구성
부패는 한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정의의 원칙을 좀먹어 무너뜨리는 속성을 갖고 있다. 부패를 정의의 원칙에 대한 공격 내지 반칙이라고 말할 때, 그 속에는 공동체의 존속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치는 부패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부패라는 언어는 묘한 속성을 갖고 있다. 부패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 함께 부패와의 투쟁, 즉 반부패(anti-corruption)에 대한 긍정적인 지향성을 함께 공유하는 속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윤리와 도덕의 차원이고, 구체적으로는 정의의 원칙에 직결된 것이다.

먼저 다룰 것은 청렴의 요소다. 청렴은 공직자가 지녀야 할 긍정적 가치로서 책임과 소명의식, 직분에 대한 자존감과 충성심 등을 내포하는 정신적 자세를 가리킨다. 부패는 청렴의무와 책임윤리가 실패했을 때 구체적·현실적으로 ‘함께 썩어서 무너지듯’ 발생한다. 청렴은 이에 비해 직무의 순결성과 완전성 및 불가매수성을 포함한 내면의식적인 부패성향을 말하기 때문에 반부패에서의 부패보다는 더 깊고 더 추상적인 개념에 속한다. 이런 의미의 청렴은 덕목으로서의 정의를 뜻하는 주관적 정의원칙과 직결된다. 주관적 정의는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통해 실천해야 할 윤리적인 기본덕목의 하나가 되는 정의를 지칭한다.

다음으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공공의 이익이다. 공적지위에 있는 자가 사익을 취하기 위해 공익을 훼손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공적 직위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공공의 이익보호는 객관적 정의의 원칙과 직결된다. 객관적 정의의 원칙은 개인상호 간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와의 관련 속에서 실현해야 할 인간관계의 올바른 질서를 지향한다. 바꿔 말하자면 인간관계의 어떤 질서가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옳다고 승인될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 정의의 원칙이다. 객관적 정의는 가장 넓은 의미로 사회질서 전체를 포괄한다. 객관적 정의개념의 보다 특별한 경우는 그것이 사회관계와 관련해 사용될 때 국가에 대해 ‘사회정의’가 실현돼야 한다는 요청을 제시할 경우다. 사회정의는 공동체적 사회구성, 법질서 형성, 경제 및 정치질서 형성이라는 특별히 중요한 삶의 영역에서 문제되는 정의라는 의미에서 흔히 사회정의라고 불린다. 이 같은 객관적 정의의 원칙에 비춰보면 반부패는 실질적 내용면에서 공공의 이익보호다. 이것은 개인윤리적·사회윤리적 지침으로서 최상의 보편적 선인 공동선으로부터 그 타당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적·공적 이해관계를 서로 공평하게 조절해 줄 수도 있다.

덧붙일 점은 공동선은 일단의 전문가나 정치적 다수 혹은 이익단체, 그리고 소수이지만 힘을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 집단, 정당 등의 처분에 내맡겨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또한 공동선에 의해 공공의 이해관계에 대한 공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이성적이며 선한 의지, 약자를 배려하는 도덕적인 능력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분배절차의 공식성과 투명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다룰 주제는 그래서 투명성, 공정성의 문제다. 앞서 본 공익성이 윤리·도덕의 실질적 내용으로서 반부패의 실질화 차원이라면, 투명성, 공정성은 반부패의 공식화 차원으로서 절차적·형식적 정의론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부패없는 사회의 비전
한국은 그동안 부패방지·통제를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꾸준히 도입해 왔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국가청렴도 부분에서 국제사회로부터 ‘절대부패에서 벗어난 정도’의 평가를 받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법과 제도 차원에서 보면 청렴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한 지나칠 만큼 많은 규범장치들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법들이 제대로 집행돼 그 실효성이 입증되고 있으며 일반인들의 법의식에도 반부패의식이 내면화돼 규범안정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계속 번지고 있는 법조비리도 아주 오래된 전관예우 관행, 인맥, 학연, 온정주의 등으로 인해 법집행에 누수가 생겨나 규범억지력이 현저하게 저하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부패의 유발요인으로 연고주의, 온정주의, 과도한 선물 및 답례문화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관행은 우리 사회가 아직 개방사회로 발전해 나가지 못하고, 폐쇄사회적 구습에 찌들어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관행과 구습을 문화와 의식 속에서 타파하려면, 더 높은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부터 솔선수범하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이 같은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관행의 고리를 끊으려면 부패범죄에 대한 무관용원칙(zero tolerance)이 어느 시기까지는 지속적으로 적용될 필요도 있다. 편향된 온정주의를 바로 잡으려면, 패러독스로 들리겠지만, 엄벌주의적 방향전향(punitive turn)으로 나아가는 형사정책적 노력이 때로는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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