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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초민족 시대의 민족 정체성』(문학과지성사 刊) 펴낸 고부응 중앙대 교수
[저자인터뷰]『초민족 시대의 민족 정체성』(문학과지성사 刊) 펴낸 고부응 중앙대 교수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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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11:43:07
고부응 중앙대 교수(영문학)가 그의 화두 탈식민주의 문학비평을 들고 나왔다. 바로 ‘초민족시대의 민족정체성’이 그것. 이 책은 그가 지난 7∼8년간 포스트콜로니얼리즘 관계 문헌을 탐독하고 그걸 영미 문학비평에 적용시킨 결과물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론의 숲을 헤쳐나가면서 이 책은 또 하나의 차양을 드리우고 있는데, 바로 민족정체성에 대한 탐구작업이 그것이다. 저자는 탈식민 이론의 발원국들인 인도를 비롯한 제3세계의 문학작품 및 비평을 통해 지역 민족 공동체 형성 과정을 짚어본 뒤, 글로벌화에 직면한 초민족 시대에 전략적으로 유지해야하는 민족정체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한국의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서구이론을 그대로 차용할 뿐 한국에서의 차별화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죠.”

다소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책의 1부는 탈식민주의 이론의 전개과정에 대한 소개에 할애됐다.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대부’를 넘어서기 위한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 바바, 서발턴 연구집단들의 이론적 작업을 쉽게 소화해서 들려주기 때문에 따라 읽기 쉽다. 제2장 ‘식민 문학 읽기 서설’에서는 대학의 외국문학 학과의 문학교육이 서구 중심 이데올로기를 ‘서양고전문학’이란 이름으로 전파하고 있다고 문제제기 한다.

“대학의 문학 교과 과정이란 게 기껏 ‘구운몽’이나 ‘폭풍의 언덕’에 머무르는 한 현실문화에 대한 진술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탈식민주의 이론을 영문학자들이 주로 소개해왔는데, 그들의 영문학 교육 자체는 현실문학이 어떻게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지, 혹은 그와 맞서 싸우는지는 전혀 다루지 않았던 모순적인 행태를 보여왔습니다.”

그의 이런 문제의식이 현장비평으로 드러난 게 3부다.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 나이폴의 ‘흉내 내는 사람들’을 통해 반식민 저항과 지역 민족공동체의 문학적 형상화를 보여주려는 전략적 분석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고 교수가 가장 힘을 실은 대목은 “주변부 세력들의 결집이 민족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는 것. 민족을 얘기하는 담론들이 민족폐기론으로 기울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그는 탈식민 논의보다 급한게 민족 정체성 문제라고 말한다.
“국가체제 중심의 민족주의에서 강요하는 민족의 정체성과는 달리 주변부 집단에 의해 민족 정체성이 새로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1997년 국적법이 바뀌어 한국인 여성노동자와 결혼한 외국인이 한국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불과 20년 만에 한국인이 되는 조건이 바뀌게 된 것이죠. 저는 상명하달된 민족의 경계를 학습하던 우리의 민족 정체성이 주변부 집단의 움직임에 의해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봅니다.”

그는 이런 현상들을 사람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만 다룰뿐 이론적으로 짚어보는 시도는 없었다고 강조한다. 문학의 정전이 해체되듯, 민족도 국수적 테두리를 벗고 있다는 것인데, 그럴 경우 좀더 유연화된 민족이라는 테두리가 밀려오는 제국 자본주의의 방패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고 교수의 생각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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