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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가 상기시키는 국가는 공익 위해서만 불평등 허용”
“피케티가 상기시키는 국가는 공익 위해서만 불평등 허용”
  • 교수신문
  • 승인 2016.06.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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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사회적 국가』 홍준기 지음|한울|488쪽|39,000원

 주류경제학자들은 경제적 불평등, 현실의 문제점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한 경향이 있단 식으로 얼버무리거나 막연하게
이야기한다. 불평등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피케티에게는 이러한 모호함이 없다.

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어야 하는가. 그것은 피케티가 일생에 걸친 광범위한 실증연구를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대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분법을 벗어나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정치경제학적 대안―사회적 국가 또는 사회민주주의―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시장의 전능성을 과도하게 신뢰하는 신고전파 경제학과 이념적 순수성을 고수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불평등을 양산하는 자본과 시장의 파행적인 작동을 통제하는 사회적 국가를 통해서만 오늘날 우리를 절망케 하는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주류경제학자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과 달리 피케티는 ‘분배문제’를 다시 경제학의 핵심적인 분석 대상으로 복원시켰다. 그는 불평등의 현실을 알리는 방식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분석 방식과 문제 해결을 위한 처방에서도 독보적이다. 그는 불평등의 현실을 ‘소일거리용 잡담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진정한 문제’로 학계와 대중들 앞에 드러냈다. 대부분의 주류경제학자들은 경제적 불평등, 현실의 문제점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그러한 경향이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거나 막연하게 이야기한다. 불평등의 핵심이 무엇이고 불평등 정도가 어떠한지 잘 말하지 않으며,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피케티에게는 이러한 모호함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피케티는 진보적인 외양을 띠지만 현실분석과 구체적 대안 제시에 무력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넘어선다는 실천적 강점을 갖고 있다.

필자가 피케티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개인적 동기는 동어반복 같지만 대학시절부터 피케티의 책과 같은 경제학 책을 기다려왔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시절 나는 법학을 전공했고 동시에 경제학을 부전공했다. 그때도, 그리고 그후 전공을 바꿔 철학을 공부해오던 지금까지 나는 경제학의 세계에는 사실상 신고전파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대립)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다. 마침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출간됐고 이를 ‘단숨에’ 읽었을 때, 피케티의 저작이 내가 그동안 기다려왔던 바로 그 책이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대학시절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출간됐다면―물론 세계적인 이론적, 이데올로기적 지형상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나는 계속해서 경제학을 공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피케티에 관한 해설서를 쓸 뿐만 아니라 피케티 이론을 정치철학적 사유와 연결시키는 작업만은 꼭 하고 싶었다. 필자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사회적 국가』를 쓰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주류경제학자들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피케티 비판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피케티 이론을 잘 설명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반대로 피케티 이론을 폄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피케티의 전무후무한 대작의 의미를 사실상 무화시키고자 매우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심’이 생겼던 것이다. 더 나아가 ‘진보적인 자유주의’의 입장을 취한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많은 경제학자들의 피케티에 대한 평가 역시도 매우 미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피케티 이론이 갖는 명확한 의미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피케티가 수식을 사용하지 않고, 알기 쉽게 책을 썼다고는 하지만 사실 피케티 책은 그다지 ‘손쉽게’ 이해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피케티가 상세히 언급하지 않았거나 생략한 중요한 이론적 사항들을 보충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함으로써 ‘결코 쉽지 않은’ 피케티 이론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자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필자는 1부~4부에서 피케티 이론을 체계적으로 해설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피케티 이론에 대해 제기되는 다양한 비판에 대해 명확하게 반비판함으로써 피케티의 정치경제학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그리고 부록 1에서 피케티 비판의 유형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반비판 했다).

또한 나는 피케티의 정치경제학을 국가에 관한 ‘정치철학적 논의’로 확대하고자 했다(5부). 오늘날 철학에는 ‘놀랍게도’ 사회적 국가(복지국가)에 대한 담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학문적·실천적 지형에서 ‘국가’는 억압적 기구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회적 국가 역시 ‘전체주의’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물론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입버릇’처럼 복지국가를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는 시혜적인 자유주의적 복지 개념을 넘어서지 못하며 피케티가 말하는 사회적 국가에 미치지 못한다. 필자는 이러한 미온적인 복지 개념을 넘어서 실효적이며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국가 이론에 대한 피케티의 이론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했다.

오늘날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지형에서 국가는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양자에 의해 ‘나쁜 것’으로 간주된다. 아담 스미스와 로크의 자유주의가 진보의 상징으로 기능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를 위해 이들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국가의 기능을 최소화하는 이론을 확립했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국가를 부르주아의 도구로 간주하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공교롭게도 (신)자유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는 국가 폄하라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서로 공조하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역설이 오랫동안 우리의 일상적, 학문적 사유를 지배하는 가운데, 사회적 국가 담론은 낡은 시대의 산물로 치부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을 이용해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듯이 극단적 불평등을 양산했다. 20세기 후반부와 21세기 초반부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신)자유주의의 관철을 막을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철저하게 결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피케티의 사회적 국가 이론을 정치철학적으로 재해석했으며, 특히 롤즈의 ‘정의론’을 근대정치철학사의 맥락에서 사회적 국가 이론으로 확대했다. 롤즈는 현대정치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철학자이지만 공교롭게도 롤즈 자신이 자신의 철학을 ‘자유주의’로 명명했기 때문에 그의 철학의 의미가 퇴색되는 강한 경향이 있어 왔다. 나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롤즈 철학을 헤겔의 『법철학』과 연결시켜 사회적 국가 이론의 철학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헤겔의 국가이론을 나치식의 전체주의 국가론과 결부시키는 것은 헤겔에 대한 철저한 오독이며 헤겔이 사회적 국가 이론을 제시한 최초의 사상가라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필자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포스트모던적’ 또는 ‘신자유주의적’ 마르크시즘, 그리고 그 대표적 이론가인 슬라보예 지젝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담고 있다. 헤겔과 라깡을 원용해 ‘공산주의’를 주창하지만 지젝은 사회적 국가론의 최초 이론가인 헤겔의 『법철학』의 의미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침묵하며, 더욱이 『낙원에서의 곤경(Trouble in Paradise)』에서는 자신의 공산주의 이론에 근거해 피케티를 철저히 폄하하는, ‘비학문적일 뿐만 아니라 상식에 부합하지도 않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피케티가 요청하고 우리에게 상기시키고자 하는 국가는 본질적으로 공익을 위해서만 불평등을 허용하는 보편적인 사회적 국가다. 그것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케티가 말하듯이 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사회적 국가 건설에 필요한 뛰어난 정책과 제도들을 고안하고 이에 합의할 수 있는 집단적인 의지와 결단, 행위가 존재할 때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피케티는 국가, 조세, 부채를 구체적으로 연구하라고 우리에게 호소한다. 나는 이러한 피케티의 메시지의 근거가 되는 피케티 이론을 보다 알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의 불평등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사회적 국가』를 집필했다.

 

홍준기 홍익대 강사·철학/정신분석학
필자는 독일 브레멘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를 역임했고, 프로이트·라깡 정신분석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라캉과 현대철학』, 『한국사회 정의 바로 세우기』(공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자의 성, 여자의 성』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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