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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누가 평가로 ‘명문대’ 꿈꿀까
[기자수첩] 누가 평가로 ‘명문대’ 꿈꿀까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6.06.13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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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서강대 이냐시오 강당. 교육부가 주최한 대학구조개혁법 첫 번째 토론회가 열리기 직전, 단상에는 한 장의 현수막이 펼쳐졌다. “대학구조개악법 폐기하고 정부책임 강화하라” 전국교수노조, 비정규교수노조, 대학(직원)노조 등이 결성한 ‘대학공공성강화를 위한 전국대학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구조개혁법을 비롯한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 최성욱 기자

이들 외에도 이번 토론회에 기대감을 가진 청중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주최기관 관계자들과 토론자, 지난해 구조개혁평가에서 하위권을 기록한 일부 대학관계자들을 제외하면 토론회를 찾은 대학구성원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의 생사가 걸린 평가정책을 수립하고, 그 과정을 용이하게 도와줄 법적 기반(구조개혁법)을 촉구하는 관 주도 토론회를 반길 대학구성원은 그리 많지 않았을 터.

하지만 이번 토론회를 주도한 기관들과 토론회에 초대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오히려 교육부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이번 토론회는 교육부 외에도 전국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의 대표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공동주최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런데 토론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단상과 토론석을 차지한 사람은 대부분 교육부 자문·심의기구인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들이었다. 심지어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용승 가톨릭대 부총장은 이튿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되기도 했다.

특히 토론회를 주관한 한국교육개발원은 점입가경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정책에서 ‘평가업무’를 맡는 곳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원장은 해외출장을 이유로 이번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름 아닌, 지난해 대학구조개혁 ‘1주기 평가’를 사실상 진두지휘했던 김재춘 전 교육부 차관이다. 

이쯤되면 대학구조개혁정책을 실행하는 교육부와 대학을 평가하는 한국교육개발원, 평가 결과를 심의하는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 삼각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평가를 받고 학교폐쇄까지 기꺼이 감수할 대학이 있겠는가. 평가의 공정성은 깜지에 받아적듯 말과 글로 주입해서 달성되는 게 아니다. 공대위 회원들이 현수막을 펼쳐들고 청중들에게 호소한 것도 바로 이런 지적이고, 의심이었다.

“지난해 대학평가 결과와 과정을 보면, 무책임한 졸속행정, 대학자치를 부정하는 관료적 대학통제, 지방대의 몰락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만 드러났다. 유신시대와 같은 군사독재에서나 볼 수 있는 반민주 악법의 재정을 위해 시작한 권역별 토론회는 입법안 제출을 위한 명분쌓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날 백성기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은 공대위의 비판에 대해 “정부의 정책을 이분법적이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함께 힘을 모으자”면서도 끝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동일한 평가에서 ‘부실대학’에 지정됐던 대학이 단 1년만에 ‘명문대학’(A등급)으로 발돋움하는 등 평가의 공정성이 크게 훼손된 상황이다. 백 위원장의 말대로 정책의 취지가 오롯이 미래 고등교육의 발전에 있다고 하더라도, 백 위원장과 교육부가 잊지 말아야할 게 있다. 전국 어느 대학의 구성원들도 이 같은 정부의 대학평가가 자신들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은 그저 ‘잃기 싫어서 취할 뿐’인데도 교육부는 요지부동이다. 혹시 정책·역할·권한을 과잉해석하면서 스스로 평가 공정성을 세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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