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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리티와 다중심적 거버넌스가 만날 때
로컬리티와 다중심적 거버넌스가 만날 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6.09 2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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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택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오스트롬의 ‘사회-생태체계’ 조명

해당 지역의 사회·경제 환경과 생태계가 충분히 고려되고,
중앙과 지방정부의 정책수립과 집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지역의 사회-생태체계의 지속가능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대중매체, 학술논문 등을 통해 널리 알리는 과정 속에서
로컬리티는 능동·창조적인 수행성을 발휘할 수 있다.

 

지난달 27일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이 진행한 제9회 국내학술대회의 주제는 ‘생태와 대안의 로컬리티’였다. ‘로컬리티’를 주제로 지적 탐색 작업을 이어오던 이 연구단의 시선이 ‘생태’와 연결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롬(E. Ostrom)의 다중심성 혹은 다중심적 가버넌스와 사회·생태 체계를 로컬리티와 연결시켜 비평적으로 고찰한 박규택(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의 글 「다중심적 사회-생태 체계와 로컬리티」는 시사적으로 읽힌다. 다양한 규모에서 작동하는 여러 가지 힘들이 서로 얽혀있는 인간과 생태의 관계를 이해하고 문제해결책을 찾는 개념적 틀이 필요한 시점에서 박규택의 ‘오스트롬’ 소개와 비판은 참고가 될 만하다. 그의 논문에서 주요 대목을 발췌했다.

 

사회·생태체계는 로컬을 분산화된 제도(혹은 거버넌스)·조직·실천, 지구적 규모와 로컬적 규모의 관계, 상이한 스케일에서 작동하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물리적 힘(요인)들이 부닥치는 장의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돼 왔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존재와 인식 그리고 행위의 관점에서 사회-생태체계와 관련지어 로컬 혹은 로컬리티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깊이 고찰하지 않았다. 우선 로컬리티의 위상과 역할을 논의하기 전에 사회-생태체계에서 (비)물질적 영역들, 즉 이념/가치, 제도, 조직, 물질, 생태 등의 존재와 인식 그리고 행위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초월(선험), 본질, 탈맥락이 아닌 특정한 맥락(환경/상황), 관계적 행위, 생성과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돼야 한다. 따라서 로컬리티의 위상과 역할도 맥락, 관계적 행위, 과정중심 그리고 발달론(진화론)적 시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해 로컬리티는 세 가지 측면, 담론/서사/재현 체계, 관계 속에서의 제도와 조직, 물질 혹은 생태 체계로 개념화될 수 있다.

첫째, 담론, 서사, 재현의 체계로서 로컬리티다. 사회-생태체계에서 로컬리티는 담론 혹은 재현 체계로 표현 혹은 의미화 되고, 이들의 반복적 사용 혹은 인용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사회-생태체계는 특정한 맥락 하에서 상이한 행위자들(주민, 일반시민, 중앙과 지방정부, 초국가적 자본가, 환경단체)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변화되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이념/가치, 지식, 문화 등을 갖고 있는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은 언어 혹은 기호를 매개로한 담론/서사 혹은 재현의 정치를 통해서 로컬리티가 개념화된다.

둘째, 제도와 조직으로서 로컬리티다. 사회-생태체계와 관련된 제도와 조직에 의해서 형성·변화되는 로컬리티다. 오스트롬은 제도를 ‘형식 속의 규칙(rules-in-form)’이 아닌 ‘사용되는 규칙(rules-in-use)’의 체계로 이해했다. “법률체계와 같이 정합적으로 구성된 규칙들이 어디엔가 적혀있고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공표됐다고 해서 제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용되는 규칙이란 행동의 지침이 되는 규칙들이며 행동으로 구현되는 규칙들이다” 오스트롬은 행위상황(action situation)의 요소들(행위자, 행위자의 위치와 실천, 정보, 감시와 처벌, 평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외부변수(external variables)로 다양한 규칙들, 즉 경계규칙, 위치규칙, 선택규칙, 정보규칙, 집합규칙, 범위규칙, 교환규칙을 언급하고 있다.

오스트롬의 제도원리에 근거한 사례연구, ‘낙동강의 지천인 대포천 수질개선’에서 다양한 형태의 비공식적 규칙들, 참여 및 경계규칙, 자치조직화규칙, 집합적 선택규칙, 정보규칙, 공동분담규칙, 권위규칙, 감시규칙, 상벌규칙 등을 활용하여 정부와 주민간의 자발적 협약을 가능하게 했으며, 수질악화라는 공유재 문제를 해결했다. 공유자원의 제도원리는 물질(자원)과 비물질(노동력, 자본) 자원의 사용 규칙들이 실행되는 과정을 감시하고, 그 결과에 대해 제재(처벌)하는 연관된 체계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셋째, 물질 혹은 생태 체계로서 로컬리티다. 사회-생태체계는 담론/서사 혹은 재현으로 그리고 제도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현상학적 몸, 물질, 생태계를 포함하고 있다. 이들은 상호접촉의 행위를 통해 관계를 맺고, 이에 따라 상이한 형태의 로컬리티가 생성된다. 예를 들면, 대도시 중심과 외곽 지대는 인구 밀집, 사회·경제 활동, 건조환경, 기온, 산림 등의 측면에서 상이한 사회-생태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도시 중심과 외곽 지대는 인간과 물자의 이동, 주거지, 상위의 생태계 등으로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과 지방정부의 정책, (초)국가적 기업의 활동 등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인간과 자연체계의 통합적 연구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분리시켜 연구할 때 파악할 수 없는 새롭고 복잡한 형태와 과정을 보여준다. …… 그리고 인간과 자연체계 사이의 결합(couplings)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조직에 따라 다양하다. 이러한 결합은 또한 경험적 연구들은 임계치(thresholds), 호혜적 피드백, 시차, 회복력(탄성), 이질성(heterogeneity), 경이로움을 지닌 비선형적 역동성을 보여준다. 더욱이 과거에 이뤄진 결합은 현재 상태와 미래 가능성에 대한 유산효과를 갖고 있다.”

사회-생태체계에서 세 가지로 개념화된 로컬리티는 의존적·수동적, 매개(도구)적 그리고 능동적·창조적 위상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첫째, 로컬리티는 다양한 사회-생태의 제도와 활동들이 전개되는 무대 혹은 환경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로컬리티는 다중심적 사회-생태체계에 영향을 주는 (초)국가 혹은 전지구의 이념, 규범, 제도, 정책 등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장으로 이해되고 있다.
둘째, 로컬리티는 이해집단(자본가, 시민단체, 개발업체, 환경단체), 관료, 전문가 등이 자신들의 이념/가치, 지식, 관습에 부합하는 사회-생태체계를 만들기 위해 매개체(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로컬의 사회·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과학적이고 전문가적 지식’에 따라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해 실천한다. 이 과정에서 로컬리티는 매개체로 이용되고 있다. 중앙 정부가 로컬의 사회·문화와 생태적 특이성을 고려하지 않은 추상화(일반화)된 ‘과학적’ 지식 혹은 판단기준에 따라 계획해 실천하는 ‘환경보존지역’, ‘국립공원’ 등은 사회-생태 체계에서 로컬리티가 중앙 정부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매개물(도구)로 취급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 사회-생태체계에서 로컬리티의 능동성 혹은 창조성이다. 이는 담론 혹은 서사의 수행성, 새로운 제도의 수립과 실천, 인간과 물질(생태)의 관계적 수행성을 통해 이뤄진다. 예를 들면, 국가하천인 낙동강 유역의 특정 지역(구미, 성주, 대구)의 사회-생태체계의 지속가능성은 중앙 정부의 독점적 혹은 일방적 정책이 아닌 중앙 정부, 지방자치제, 시민의 협치를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방법이다. 특히 해당 지역의 사회·경제 환경과 생태계가 충분히 고려되고, 지역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앙과 지방 정부의 정책 수립과 집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지역의 사회-생태체계의 지속가능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대중매체, 학술논문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널리 알리는 과정 속에서 로컬리티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수행성을 발휘할 수 있다. 개인, 공동체, 정부에 의한 공유자원(common-pool resources) 관리에 대한 비교연구에 의하면, 로컬의 환경을 고려하고, 로컬인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 공유자원의 관리가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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