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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자유가 사회정의와 대립하게 된 까닭은?
한국사회에서 자유가 사회정의와 대립하게 된 까닭은?
  • 교수신문
  • 승인 2016.05.3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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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_ 12강. 김비환 성균관대 교수의 ‘자유의 구성’

‘문화의 안과 밖’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 12강은 ‘자유의 구성’으로 지난 21일(토) 진행됐다. 강연자는 김비환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과)였다.
김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아렌트의 정치적 행동개념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국내에 최초로 아렌트를 소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균관대에서 서양정치사상사와 현대정치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에는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현대 입헌민주주의의 스펙트럼』(근간), 『오크숏의 철학과 정치사상』, 『정의는 불온하다: 정의, ‘성장’에서 ‘분배’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과 변증법적 법치주의』, 『축복과 저주의 정치사상: 20세기와 한나 아렌트』 등이 있다

이날 김 교수는 자유의 구성이 관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구성된 가치라는 관점과 자유의 제도적 구성이란 관점을 모두 활용”해서 강연 주제에 다가섰다. 구체적으로는 막스 베버와 한나 아렌트를 소환한 접근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최근 복지 담론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논의를 겨냥해 “최근 우리사회에서 복지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대두하고 있지만, 이런 경향도 복지의 문제를 주로 온정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복지와 자유를 연관시켜 논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한국사회가 지금보다 한 단계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대한 소극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벗어나서 보다 적극적이고 탄력적인 논의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연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베버는 관료제화가 초래하는 보편적인 질서화 경향에 맞설 수 있는 의회정부와 선거제도의 발전 속에서 제한적이나마 개인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지를 발견했다. 통치영역에서의 관료제화가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무정부성을 집어삼킬 것으로 봤던 베버로서는 통치영역에서의 (제한된) 민주화가 사회 전체의 질서화―자유의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근대사회에서 정치적 자유를 복원시켜야 할 당위성에 대한 아렌트의 강조는 민주주의의 안정적인 작동과 제도화가 갖는 중요성을 시사해준다(롤스와 하버마스의 절차주의적 민주주의 이론도 그것을 뒷받침한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형태들이나 관계양식들을 통해 개인들이 자기발전을 꾀하거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런 행위 욕구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안정된 국가 제도들이 필요하다. 또한 그런 국가 제도들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통제할 수 있는 시민들의 권리체계와 민주적 절차가 필요하다. 자유를 이렇게 중층적으로 제도화할 때만이, 국가 권력의 행사가 시민들의 자결의 표현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시민시회의 다양한 관계양식들에서의 자유 실현을 충실히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자유논쟁의 전개와 접근방법의 중요성
자유에 대한 오늘날의 논쟁은 기본적으로 이사야 벌린의 논의에서 시작해, 벌린의 논의에 대한 비판과 수정 형식으로 전개돼 왔다. 그는 「두 가지 자유 개념」이라는 중요한 논문에서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두 범주로 분류하고, 이 두 가지 이해방식을 각각 별개의 독립적인 자유개념으로 규정했다.
맥컬럼은 1967년에 쓴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라는 논문에서 별개의 독립된 두 가지 자유 개념이 있다는 벌린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반박했다. 그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구분하고 어느 것이 가장 ‘진정한’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인가를 묻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비판했다. 맥컬럼은 오직 한 가지 개념만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언제나 동일한 3요소 관계로 도식화될 수 있다. 즉, 자유는 언제나 “x는 y로부터 자유롭게 z를 행하거나 z가 될 수 있다.”(x is free from y to do or become z)는 식으로 표현된다. 맥컬럼에 의하면 모든 자유는 바로 이와 같은 동일한 형식적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는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개념에 대한 상이한 해석으로 간주해야 한다. 맥컬럼의 입장은 이후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얻었으며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형식적인 자유 개념이 됐다.
벌린의 자유론이 전체주의 지배와 냉전을 배경으로 개진돼 적극적 자유 개념의 위험을 부당하게 비판한 측면이 있었다면, 맥컬럼의 자유 개념은 당시에 2차 세계 대전이후 발전하고 있었던 복지국가체제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 3요소 자유 개념을 통해 벌린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했던 맥컬럼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유에 관한 논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됐다. 맥컬럼의 새로운 정의는 자유를 방해하는 요소들의 성격과 범위와 관련해, 자유가 인간 내면의 구조 혹은 특성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그리고 자유 실현의 사회정치적 조건과 관련해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논쟁으로 발전했다.

소극적 자유에서 사회적 자유로
이런 논리를 더 적극적으로 확장시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율성을 계발하고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해주는 다양한 제도들과 국가의 행위 또한 자유 실현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삶의 질’과 ‘적극적인 자유’의 이와 같은 구조적 연관성 때문에, 일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를 아리스토텔레스적 목적론과 결합시켜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누스바움(M. Nussbaum)과 같은 자유주의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현대적으로 응용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Aristotelian Social Democracy)를 주창한다. 롤스와 드워킨의 중립주의적 자유주의와 대비되는 완전주의적 자유주의를 주창한 조셉 라즈(J. Raz)의 자유 이론은 자유를 ‘사회적인’ 자유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논거를 제공해준다. 라즈는 『자유의 도덕원리』에서 자유주의의 핵심적 가치인 자율성에 대한 지지와 가치다원주의를 접합시켜 자유주의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제시했다.

라즈에 의하면,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는 둘 다 필요하다. 그것들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소극적 자유는 대체로 국가와 법이 강제적으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외적 조건과, 적극적 자유는 개인들이 행사하는 자율성의 능력과 관련된다. 이 두 가지를 결합시켜주는 것이 바로 자율성이란 가치로, 소극적 자유는 (적극적 자유인) 자율성의 실현에 이바지하는 한에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개인의 적극적 자유는 개인들이 자율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고시킴으로써 증진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국가는 소극적 자유와 함께 적극적인 자유를 증진시킴으로써 개인의 행복에 이바지해야 한다.
라즈의 자유 이론에서 사회적 제도들은 (자유와 구조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주로 자유 실현의 ‘부가적’ 조건으로 덧붙여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약한 형태의 사회적 구성주의). 이보다 더 강한 사회적 구성주의는 新헤겔주의적 비판이론가인 악셀 호네트가 제시한 규범적 재구성주의(normative reconstruction)와 페미니스트 허쉬만(N. Hirschmann)이 제시한 실천적 사회구성주의(practical social constructionism)다.

자유의 통합적 이해와 한국사회
냉전체제 하에서 형성된 남북분단과 맹렬한 반공주의는 자유를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의 영리추구의 자유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민주화와 함께 국가주의가 점차 약화되면서 (자본의 영리추구를 가로막는 규제의 제거라는 측면에서) 국가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소극적 자유관이 덧붙여지게 됐다. 그리하여 자유는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부를 무한히 축적할 수 있는 자유로, 다시 말해 소유집착적 자유로 규정되게 됐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자유는 소극적인 전통이 강한데다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짧아 자유에 대한 적극적 인식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비록 최근에 우리사회에서 복지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대두하고 있지만, 이런 경향도 복지의 문제를 주로 온정주의(paternalism)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복지와 자유를 연관시켜 논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자유를 사회적인 가치로 인식하기보다는 순전히 개인이 단독으로 향유하는 가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사회정의를 개인의 자유와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력히 자리 잡고 있다.

사회적 구성주의 시각은 자유를 보다 사회적인 가치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며, 사회정의를 자유와 대립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자유의 외연적 의미로 그리고 그 실현조건의 문제로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소극적 의미의 자유가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들과 공존하지 않는다면(혹은 적극적이고 사회적인 자유들로 확장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기보다는 아노미(뒤르케임)와 의미상실(짐멜), 그리고 자유로부터의 자살적인 도피(아렌트)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소극적 자유 개념의 발견자였던 홉스가 절대주의적인 정치체제를 정당화했고, 역사를 (주로 소극적인 의미의) 자유의 획득 과정으로 해석했던 프롬이 강성 권위주의 체제인 전체주의를 (그토록 어렵게 쟁취한) 자유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중의 도피심리에서 찾았다는 사실은 소극적 자유의 한계와 결함을 잘 부각시켜준다. 그러므로 한국사회가 지금보다 한 단계 성숙한 사회로 발전함으로써 특권적인 소수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평등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유에 대한 소극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벗어나서 보다 적극적이고 탄력적인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자유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 실현조건에 대한 보다 진지한 논의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시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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