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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불면 모여들어 ‘삐이~ 삐이
찬바람 불면 모여들어 ‘삐이~ 삐이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6.05.30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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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55. 박새
▲ 박새                                                                          ※사진출처= 베를린리포트(berlinreport.com)

필자는 야생하는 어느 새보다 박새와 가장 친한 편이다. 벌레가 지천인 여름철엔 꼴도 안 보이던 녀석들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배가 고파 인가 근처로 슬슬 몰려든다. 드디어 글방(書室)의 베란다 바깥 짐받이에도 얼쩡거리는지라 접시에 모이를 듬뿍 놓아두면 노상 들락거리며 갸웃갸웃, 짹짹, 알알이 날름날름 주워먹는다. 한 마디로 고운 눈매에 참 귀여운 새다.

박새(Parus major)는 참새목, 박샛과의 조류로 몸길이 13~14cm이고, 우리나라에도 흔한 텃새다. 학명의 속명 Parustit(박새), maior는 크다는 뜻이고, 더구나 식물분류학의 鼻祖인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가 동식물분류법(二名法)에 관해 저술한 책 『自然體系(Systema Naturae)』에도 실린 새다.

한국의 박새속에는 박새 말고도 설보면 그게 그것으로 보이는 쇠박새(P palustris), 진박새(P. ater)와 색다른 곤줄박이(P. varius)가 있고, 세계적으로는 15아종(subspecies)이 산다한다. 동북아시아·유럽·중동·북아프리카 등지에 널리 분포하는 종으로 산지·정원·도시공원·인가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붙박이 새(留鳥)다.

윗머리와 목은 푸른빛이 도는 검정색이고, 멱(목의 앞쪽)에서 시작된 검은 줄은 가슴을 타고 내려가 꼬리까지 이어진다. 다시 말해서 박새는 배 가운데에 검은 줄무늬(stripe)가 있는 것이 가장 특징으로 수컷은 그것이 넓고, 한편 암컷이나 새끼는 가느스름하다. 뺨과 뒷목, 옆구리는 말간 흰색이고, 등과 어깨는 노란 빛이 감도는 회색이며, 날개에는 흰줄 띠가 하나 있다.

수컷은 ‘삐이 삐이, 쓰쓰 쓰쓰’ 따위의 소리를 내는데 그들이 내는 소리가 무려 마흔 가지가 넘지만 암컷은 잘 울지 않는다. 또 음성분석기(sonogram)로 울음소리를 분석한 결과 다른 새들이 그렇듯이, 지역에 따라 사뭇 다르다한다. 묘한 지고, 새들도 方言을 쓴다!

박새(great tit)는 평생 한 곳에 머물고, 여름철엔 귀뚜라미·메뚜기·바퀴벌레·개미·거미·벌·달팽이 등의 동물성 먹이를 먹지만 겨울엔 땅콩·해바라기씨·나무열매·풀씨를 먹으며, 심지어 동면중인 박쥐도 잡아먹는다. 일단 먹이를 잡으면 발가락 사이에 끼우고 9~11cm 길이의 센 부리로 팍팍 쪼아 먹는다. 4∼7월에 구새통(절로 생긴 나무구멍)이나 바위틈·돌담틈·인공둥지나 버려진 딱따구리 집에 산란한다. 마른 풀줄기와 뿌리, 이끼들로 밥공기 모양의 둥지를 틀고, 알자리(産卵場)에는 짐승 털이나 새 깃털, 솜털들을 깐다. 한배에 7∼12개의 흰색 바탕에 적갈색 얼룩무늬가 가득 난 알을 낳고, 암컷이 혼자 알을 품지만 새끼는 암수 둘이서 키우며, 새끼에겐 단백질이 풍부한 딱정벌레를 많이 잡아 먹인다고 한다. 주로 포식자인 족제비나 새매(sparrow hawk)에 잡혀 먹히고, 꺼림칙스런 천적 누룩뱀에게 알을 빼앗기기도 한다.

좋은 먹이를 먹어 가슴색이 진한 수컷일수록 건강한 정자를 많이 만들고, 울음소리가 큰 수놈이 優點(dominant)하며, 새끼치기도 영 잘 한다. 그리고 일부일처지만 암놈이 서방질해 새끼의 약 8.5%는 다른 수놈의 유전자를 가진다고 한다.

다른 예긴 하지만 금슬 좋은 부부로 비유되는 오릿과의 물새 鴛鴦(mandarin duck·lovebirds)이 새끼도 지아비자식이 아닌 것이 30%가 넘는다고 한다. 이건 암컷들이 여러 수컷에서 가지가지 다양한 정자를 고루 받아 무서운 질병이 돌아도 쉽사리 죽지 않는 강한 자식을 두기 위한 본능행위다. 물론 수컷들이 제 정자를 많이 뿌리기 위한 노림수(꾐)도 작용한다. 암튼 이는 同系交配(inbreeding)를 피하려는 종족보존본능인 것으로 사람에도 없는 듯 몰래(세게) 숨어있다.

박새 1마리는 1년 동안 자그마치 8만5천~10만 마리나 되는 수도 없이 많은 해론벌레를 잡는 이론새(益鳥)다. 또 박새는 가을이 되면 도토리 등의 나무열매를 먹으면서 먹을 것이 없는 주린 겨울철을 대비해 나무껍질틈새나 바위 밑에 숨겨둔다. 그해 겨울에 미처 다 못찾아 먹은 것들이 새싹을 틔워 자라니 세상에 공짜 없다.

번식기가 지나면 진박새·쇠박새·오목눈이들과 두루 섞여 무리를 지운다. 같은 屬인 진박새(coal tit)는 몸길이 약 11cm로 박새보다 좀 작고, 한국전역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이며, 영국에서 일본에 이르는 구북구에 분포한다. 또 쇠박새(marsh tit)는 몸길이 약 12cm로 역시 박새보다 좀 작고, 유라시아대륙 북부에 널리 분포한다.

마지막으로 몸빛이나 소리가 박새와 매우 다른 곤줄박이(varied tit)다. 곤줄매기라고도 하는데 머리 위쪽과 목은 검고, 등과 날개는 짙은 회색이며, 뒷목과 아랫면은 붉은 갈색이다. 주로 곤충의 유충을 잡아먹는데 가을과 겨울에는 역시 작은 나무열매를 먹으며, 겨울먹이를 따로 저장해두는 습성이 있다.

박새는 인공모이통이나 새집에 두렴 없이 쉬이 오기에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조류의 진화, 한살이 등의 연구에 좋은 대상이 된다. 또한 워낙 붙임성이 있는 탓에 조금만 정을 쏟으면 손바닥에도 금세 거리낌 없이 날아앉는 놈인데 내 정성이 부족해 여태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 마냥 아쉽다. 오는 겨울엔 멋진 박새아비기 한 번 돼 보리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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