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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ok의 중심이 돼야 할 서울국제도서전
K-Book의 중심이 돼야 할 서울국제도서전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6.05.3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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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요새는 금메달이 많아져서 감동이 크지 않지만, 양정모 선수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건국 이래 최초로 금메달을 땄을 때는 대단했다. 나라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2016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소식이 필자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폭발적 반응은 서점에서 시작됐다. 예스24 등 주요 서점 종합베스트셀러 1위로 등극했고 같은 작가의 신작 『흰』도 출간 하루 만에 종합베스트 10권 안으로 진입했다고 한다. 신경숙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문학계, 출판계에 단비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2007년에 출판됐던 이 책은 2014년 런던국제도서전에서 각국 출판사에 선을 보였고, 2015년 1월 영국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중국 등 여러 언어권에서 출판돼 세계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다. 국제도서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쾌거라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국제도서전은 70개 정도 되는데 런던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북엑스포 아메리카(시카고)와 볼로냐아동도서전이 파급력이 크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오늘날 도서전의 역할과 기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구텐베르크가 프랑크푸르트 마인츠에서 활판인쇄에 성공한 것이 1445년경, 세공사 푸스트 등과 인쇄소를 차려 달력과 면죄부를 찍어낸 것이 1450년경이다. 12세기부터 이미 필사본 거래 시장이 형성돼 있던 이 지역에서 인쇄물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출판업자와 인쇄업자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이 인쇄물들을 팔기 위해 1460년경부터 도서전을 주도적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유럽에서 중요한 도서시장으로 부상한 프랑크푸르트는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 상인뿐 아니라 학자, 사서 등도 책을 사고 출판을 의뢰하기 위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됐다.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특사를 보내 옥스퍼드大의 새 도서관을 위해 책을 구입해 오게 했다고도 한다.

당시에 책은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 가장 많이 팔렸다는 루터의 신약 성경 번역서는 송아지 두 마리 값과 맞먹었다. 그럼에도 도서전이 열릴 때면 프랑크푸르트는 도시 전체에 활기가 넘쳤다. 곳곳에서 지식인들이 모여 책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고, 학자와 유명인들이 먹고 마시는 가운데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가 가톨릭의 반종교개혁 운동과 30년 전쟁으로 프랑크푸르트의 출판업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프랑크푸르트는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관계집단들을 설득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1949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재개한다. 이후 오늘날까지 성장을 거듭해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 약 7천300개의 출판 관련 업체가 참가하며, 방문객은 27만여 명에 달하게 돼 ‘문화 올림픽’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100만평 정도 된다는 실내 전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 도서전은  각국의 출판사들이 신간 도서를 소개하는 자리인 동시에 국제적인 저작권의 매매가 이뤄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 출판 미디어의 동향을 파악하고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국제 미디어 시장으로서 기능한다. 초반 사흘 동안에는 출판사와 편집자, 에이전트, 저자, 영화 제작자, PD 등 관련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행사가 진행되고, 후반 이틀은 일반에게 공개된다. 또한 다양하게 진행되는 콘퍼런스는 출판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주제를 다룸으로써 세계 출판 시장의 현황에 대한 이해와 미래 출판에 대한 영감을 제시한다.

이처럼 국제도서전은 컨벤션산업으로도 손색없다. 교육·문화, 관광·레저, 숙박·유흥·식음료, 교통·통신 등의 분야까지 포함하는 종합산업이자 지식과 정보의 생산·유통을 촉진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는 6월 15일부터 닷새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은 사뭇 걱정스럽다. 역사가 20여 년이 됐는데도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관람객 수도 2015년도에는 전년도에 비해 30% 정도 줄어 10만 명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까지도 행사 주도권을 놓고 대립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여파로 대형 단행본 출판사들이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세계 콘텐츠 시장은 미디어의 폭발로 인해 여전히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 덕분에 문화나 언어의 문제로 국내시장에 머물렀던 우리 콘텐츠가 여러 분야에서 경쟁을 갖게 됐다. 한류로 통칭되는 이 콘텐츠 파워가 책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에 『채식주의자』가 다시 한 번 보여 줬다. 내년에는 정부가 창조경제, 문화융성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지원예산을 대폭 늘리고, 출판계는 관계단체를 아우르는 추진단을 꾸려서 서울국제도서전이 K-Book 한류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게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찬란하게 성공신화를 써낸 프랑크푸르트의 국제도서전처럼.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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