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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문화의 추억
부르주아 문화의 추억
  •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 승인 2016.05.2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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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amus 우리는 생각한다]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휴대전화 속의 TV, 영화, 팟캐스트가 출퇴근길 군중의 이목을 완전히 장악하는 한국사회에서 ‘고급문화’의 실종을 개탄하는 것은 생뚱맞다. 대중문화의 지배력이 압도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고급문화의 비중이 감소됐다고 보기도 힘들다. 언제 그런 것이 있었던가. 단아한 골동품이 전해주는 ‘양반문화’는 너무 아득하다. 서구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전적인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향수는 엄밀한 의미의 부르주아 계층 자체가 존재한 적이 없는 이 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아쉬워할 것도 없다.

향년 95세를 일기로 2012년에 작고한 영국의 大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유고집인 『파열의 시대: 20세기의 문화와 사회』 (이경일 옮김, 까치, 2015)는 사라진 유럽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기억과 성찰을 담고 있다. 1964년부터 2012년 사이에 쓴 기고문, 강연문, 서평으로 이뤄진 이 책은 저자의 생애를 사로잡았던 ‘파열된(fractured)’ 문화의 모진 체험을 거시적 역사의 흐름 속에 자리매김한다. 홉스봄이 누구인가. 지난 세기를 대표하는 역사가라 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이 거장의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그리고 20세기의 역사를 총평한 『극단의 시대』는 국역된 지 오래다.

홉스봄의 생애는 그 자체가 현대사의 격동을 입증한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으로 독일어를 모국어로 성장한 유대인이자 영국으로 망명한 이주민 가정의 자제이며, 캐임브리지대를 나와 한 시대를 풍미한 신좌파 지식인이었던 그는 전형적 주변인이면서도 전세계적으로 지성적 영향력을 행사한 비주류적인 주류였다. 『파열의 시대』는 홉스봄 자신의 정신적 뿌리인 중부유럽 부르주아 문화의 몰락에 대한 자기고백적 진술을 바탕으로 한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에서 완연히 개화한 부르주아 문화는 예술을 주축으로 한 고급문화를 속된 대중들의 세계와 격리시키는 특징을 지녔다. 극장, 공연장, 박물관이야말로 부르주아의 예배당이었다. 이러한 문화는 자기완결적인 폐쇄성을 지녔지만 그럼에도 옛 귀족문화와는 판연히 달랐다. 그것은 독일어를 국제적인 ‘교양’의 언어로 사용하는 해방된 사람들의 문화였다. 라인강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의 동쪽 경계까지,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에서 발칸 반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었던 이 범유럽적 문화는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영영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독일적 교양의 헤게모니는 사실은 독일어권의 중심부로부터 퍼져 나온 것이 아니었다. 홉스봄은 중부유럽 부르주아 문화의 진정한 주역은 의외로 유대인이었다고 강조한다. 19세기 초에 합스부르크 제국의 중심부로 진입했던 해방되고 서유럽화된 유대인 엘리트는 이디시어를 말하는 촌스런 동유럽 유대인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면서 독일문화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이들을 통해 중부유럽의 부르주아 문화는 국제적 확장성과 더불어 비로소 자신만의 고유한 색채를 얻을 수 있었다. 입맛을 씁쓸하게 하는 프로이트의 반인륜적 저술들은 물론, “화성에 있는 극장을 염두에 두었(던)” 카를 크라우스의 『인류 최후의 날들』 같은 종말론적인 문학작품이 빈의 부르주아 청중을 사로잡았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기완결적으로 보이는 문화적 정체성이란 이처럼 주변부적 입장에서 비롯됐던 것이다.

1914년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지속된 ‘긴 19세기’와 부르주아지의 호시절은 대량의 인종 추방과 학살, 상업화된 대중문화의 승리와 범지구적인 영어의 헤게모니를 통해 산산조각 났다. 20세기 이래 부르주아 문화의 자취는 그저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에서나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옛 권위를 유지하고자 역발상적인 활로를 모색해온 것이 시각예술 분야인데, 전 세계 미술관을 장악하고 있는 ‘전위예술’은 부르주아 문화를 파괴한다고 요란을 떨지만 예술가로서의 특별한 위상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어중간한 유산이다. 20세기 예술에서의 진정한 혁명은 모더니즘 전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적 혁신과 소비의 민주화에 의해 달성됐다. 대중의 일상생활을 미적 체험으로 이끈 광고와 영화야말로 혁명의 주역이었다. 역사적 현재에 대한 홉스봄의 평가는 지극히 자기희화적이다. “전문적인 책 저술가는 동력방적기 발명 이후 손 배틀 직공이 처한 입장에 놓여있다.”

이 거장의 입장은 단순한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 발전에 토대를 둔 부르주아 문화는 그 자체의 동력에 의해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기술복제의 시대가 도래하자 소수의 엘리트가 운영하고 다수가 감내하는 사회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됐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기술적 합리성과 대중소비사회에 기반한 정치적 불합리성 간의 불행한 결합이다. 그렇다면 과연 옛 부르주아가 표방했던 ‘고급문화’의 회복이 대안일까. 한국사회처럼 근대적 부르주아 문화가 아예 부재한 곳에서는 더더욱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고상한 양반문화의 부활도 과시적 소비를 부추기는데 그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열린음악회 풍의 방송사 문화행사에 만족할 수 없다면, 아예 주류매체로부터 배제된 인디문화, 퀴어문화, 다문화 등 주변부로부터의 흐름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유럽의 부르주아 문화도 본시 그러했듯이 말이다.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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