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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人治 “정치는 솔선수범으로 ‘바로잡는’ 것”
法 만능의 현대사회에서 德性을 강조하는 이유는?
공자의 人治 “정치는 솔선수범으로 ‘바로잡는’ 것”
法 만능의 현대사회에서 德性을 강조하는 이유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5.11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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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_ 9강. 이승환 고려대 교수 ‘덕치와 법치’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W스테이지에서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 2섹션 ‘정치의 목표와 전략’ 마지막 강연은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과)의 ‘덕치와 법치’였다. 이날 강연에서 이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유가가 ‘덕치’를 이상으로 삼고 ‘법’의 필요성을 부정했으며 심지어 ‘법’을 정치의 영역에서 배제했다고 이해하는데 정말 유가는 ‘법’을 부정했는가, 과연 ‘덕치’ 통치 방식은 필연적으로 ‘법치’를 배제하는 것일까”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논의를 이어갔다. 그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유가의 정치 이념을 ‘덕치’만이 아니라 ‘예치’ 그리고 ‘인치’의 측면까지 아울러 검토해볼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법치’와 양립 불가능한 것인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교수가 던진 또 하나의 화두는 ‘유가의 덕치 이념은 법치를 표방하는 현대 사회에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가’였다. 그는 “법을 만드는 자도,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자도, 그리고 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자도 모두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아무리 법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라 하더라도 덕성에 의해 보완되지 않는다면, 통치자의 지배 도구로 전락하거나 강자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타율적 강제력에 불과하게 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형벌에 관한 유가와 법가의 차이
유가의 ‘예치’는 법을 배제하는 도덕 지상주의적 정치형태라기보다, 인간이 만든 법은 인간 본성에서 도출된 도덕원칙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보는 자연법주의적인 정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원칙을 실정법보다 우위에 놓는 유가의 입장은 자연스럽게 ‘덕치’의 주장으로 연결된다. ‘덕치’란 지도자의 도덕적 감화력에 의해 백성의 자발적 동의와 복종을 유도하고, 백성들을 예의와 염치로 교화해 범죄와 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는 통치 방법이다. 지도자가 솔선수범해 모범을 보일 때 백성들도 이에 승복하고 협동하게 될 것이라는 덕치의 이념은 법가의 중형주의에 입각한 공포정치의 통치이념과 선명하게 대별된다.

법가가 내세우는 ‘법치’는 우리가 이해하는 근대적 의미의 법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근대적 의미의 법치란,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대의기관인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준거한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정치 이념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적 법치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국가권력의 분립을 핵심 원칙으로 채택한다. 이에 반해, 법가의 ‘법치’는 군주 1인의 권력과 권능을 무제한 인정하면서, 군주를 제외한 나머지 계층에게는 제정된 법에 충실히 따를 것을 요구하는 전제적 통치 이념이다.

법가의 ‘법치’는 그 본질로 보자면 중형주의적 刑治라고 할 수 있다. 중형주의란 가벼운 범죄에도 무거운 형벌을 부과해, 백성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고 군주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하려는 강압적 공포정치를 말한다. 따라서 통치 방법의 측면에서 본다면, 유가와 법가가 각기 채택했던 덕치와 법치의 차이는 교화정치와 공포정치의 차이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 형벌이론의 측면에서 본다면, 유가와 법가의 차이는 罪刑相符主義 대 중형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형의 적용과 관련, 법가는 경한 죄에도 중한 벌을 부과해야 한다고 보는 중형주의의 입장임에 반해, 공자는 죄와 형벌의 균형을 강조하는 죄형상부주의의 입장에 선다.

유가와 법가는 형벌의 기능과 목적에 관해서도 입장을 달리한다. 형벌의 기능과 목적에 있어서, 법가는 일반예방주의(general prevention theory)를 견지하는 반면, 유가는 특별예방주의(special prevention theory)를 지지한다. 일반예방주의란 형벌의 기능을 응보적 고통 또는 응보적 實害라고 보고, 형벌로 사회 구성원들을 겁주고 경계하고 삼가게(戒愼)함으로써 범죄 예방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공리주의적 형벌이론이다. 법가는 중형주의에 입각해, 경미한 범죄에도 무거운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공포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범죄 충동을 강압적으로 제어하고자 한다. 이에 비해 형벌의 기능이 범죄인의 반사회적 성격을 개선하게 하는 데 있다고 보는 특별예방주의는, 범죄자에게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범죄자의 성격 자체를 교화시켜 다시는 범죄행위를 할 의사를 갖지 않도록 예방하는 다분히 교화주의적인 형벌이론이다. 따라서 특별예방주의는 형벌을 범죄자에 따라 개별화하고 구체적인 동기와 상황을 참작해 각자의 성격 개선에 알맞은 형을 부과할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공자는 법이 아무리 잘 정비돼 있어도 개개인이 인격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범죄행위는 근절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교화적 형벌이론은 범죄자의 반사회적 성격 그 자체를 개선해 궁극적으로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을 만들려는 완성주의(perfectionism)의 특색을 보인다.

法源과 법 해석에 있어서 유가와 법가의 차이
‘덕치’라는 개념이 통치 방법으로서 도덕적 교화 과정에 주안점을 둔다면, ‘인치’는 지도자의 도덕적 자질 및 품성에 착안한 용어다. 그러나 실질 내용에 있어서 덕치와 인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공자는 정치에 대해 묻는 季康子에게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 그대가 솔선수범해 몸을 바르게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겠는가?”라고 답하고, 또 “윗사람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백성이 행하고, 몸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명령해도 따르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윗사람이 모범을 보일 때 아랫사람도 본받기 마련이라는 유가의 인치 이념에 대해, 법가 사상가들은 강력하게 반대한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교화되기를 기대할 수 없는 불신의 사회 그리고 덕스런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할 수 없는 정치 풍토에서는, 仁義라는 도덕적 품성은 고사하고 최소한 법만이라도 준수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바람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법가의 인성에 대한 회의, 통치자와 정치가에 대한 불신, 그리고 엄격한 任法사상은 오늘의 현실에서도 일정 부분 수긍이 간다. 그러나 법가가 말하는 임법사상은 입법의 근원이 되는 法源의 문제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유가와 법가는 법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도 견해를 달리한다. 유가에서는 판관이 법 목적에 대한 사려깊은 숙고를 통해 법조문을 신축성 있게 해석할 수 있도록 재량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 법가는 법조문을 엄격하게 해석하도록 하여 판관의 자의적인 판단을 방지하려는 데 역점을 둔다. 유가가 불문법주의와 자유재량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자칫하면 판관의 자의적인 법 해석으로 인한 刑罰專斷主義로 흐를 위험이 있는 반면, 법가는 성문법을 절대적으로 숭상하고 그 해석에 있어서도 엄격성과 평등성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 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만약 법의 논리적 자족성만을 맹신하고 법이 가진 원래의 목적을 소홀히 하면 법 해석이 현실에서 유리되거나 유연성을 상실하여, 법관은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자동판매기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법 해석과 관련된 유가의 재량주의와 법가의 형식주의는 상호 비판 혹은 상호 보완의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현대사회에 던지는 시사점
유가의 ‘덕치’ 이념은 법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에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가. 유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무리 법이 지배하는 사회라 하더라도, 법치는 사회 구성원들의 ‘덕’에 의해 보완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형식적인 법조문만 구비됐다고 해서 사회의 안정성과 건전성이 자동적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법치는 법을 제정하고 운용하고 준수하는 사람들의 덕성에 의해 보완되지 않는다면,  통치자의 지배 도구로 전락하거나 강자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타율적 강제력에 불과하게 되고 말 것이다. 아무리 법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법조문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판결하는 사람들의 공정성과 합당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법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법치의 실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법의 제정으로부터 시작해서 법의 해석과 판결 그리고 적용과 준수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관여된 모든 사람의 덕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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