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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통일 논의 불지펴 … ‘사람의 통일’ 이끌 융복합적 접근 필요하다”
“포스트 통일 논의 불지펴 … ‘사람의 통일’ 이끌 융복합적 접근 필요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5.10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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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연구네트워크 국제학술대회’ 마친 김성민 건국대 인문학연구원장(통일인문학연구단장)

 

▲ 김성민 건국대 인문학연구원장은 건국대 문과대학장과 뉴욕주립대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2009년부터 건국대 인문학연구원장과 통일인문학연구단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대학인문한국(HK)연구소협의회장을 역임했다. 사진 최익현

통일에 대한 철학적 기획 내지 인문적 기획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 통일담론이 정치경제를
포함한 체제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뤄왔다면 상대적으로 ‘사람의 통일’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음은 분명했다.

통일 논의 혹은 통일을 어떻게 하자는 담론은 무성했다. 대개 사회과학 부문에서 제기된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통일은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고민할 수 있는 주제는 분명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예술, 축산, 산림, 전력 등 다양한 분야가 통일을 주제로 내면화해서 연구를 심화할 수 있다. 이점에서 지난달 22일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진행된 ‘포스트 통일, 남북협력의 과제와 미래’는 시사적이었다. 우선,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여러 부문에서 머리를 맞댄 ‘네트워크’ 형태를 지향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통일 이후의 관점’을 현재화함으로써 통일담론을 구체화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27일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단장실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기획·진행한 김성민 건국대 인문학연구원장(철학, 사진)을 만났다.

△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을 포함해 8개 연구기관에 하나의 전공 학과가 결합해 진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일단, 전체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대학 단위에서 한반도의 통일 문제와 남북교류에 대한 연구네트워크를 구축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건국대는 사립대학으로서 이런 시도를 처음 시도했고, 네트워크에 참여한 연구소와 전공학과들 역시 자발적인 의지로 참여했다. 각 분과의 발표 주제는 대회 주제인 ‘포스트 통일, 남북협력의 과제와 미래’에 유기적으로 결합되도록 협의를 통해 선정하고 구성했다. 이번 행사는 실질적이고 자발적으로 8개의 연구단체가 연대했다는 데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자발적인 연대 의지로 인해 곧 이번 학술대회가 개별전공과 학제간 구분을 뛰어 넘는 융복합적인 연구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가 포스트 통일이라는 점이었다는 사실 역시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통일 문제를 대체로 통일이 된 지점, 결과물로서의 통일에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통일 이후의 사회 통합이나 사람들의 통합은 매우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통일 이후의 문제까지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번 대회는 기존의 통일 관련 연구 활동에서 한 걸음 앞서고 있다고 자평하고 싶다.

통일 연구를 본다면, ‘학제적/다학문적’ 연구에서는 각 분과를 나눠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그냥 나열해서 결합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하게 분과학문을 벗어난 연구라고 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이 같은 연구는 각 분과학문이 가지고 있는 ‘연구전통’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연구 결과가 상호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해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통섭/융합’적 연구는 다르다. 예를 들어 남북 에너지의 경우, 과학기술적 관점에 따를 때, 효율성으로 따르기 때문에 생태파괴적인 화학에너지에서 원자력까지 포함될 수 있다. 미래의 통일한반도가 어떤 가치를 구현한 사회이어야 하는 지를 생각한다면, 녹색 가치에 기반한 친환경에너지와 생태농법에 대한 연구가 가능할 수 있다. 이런 가치 정향이나 관점의 전환에는 ‘과학기술적 효율성’에 대립하는 ‘가치’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인문학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의 정치경제적 제도와 남쪽 내부에서의 법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따라서 통일연구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각 학문의 분과체계와 연구전통에 따른 틀을 벗어나 때론 상호 충돌하는 문제들을 격렬하게 토론하면서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런 작업을 시작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 제1부 기조발표가 눈에 띄었다. ‘포스트 통일,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러시아 국적의 북한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가 발표를 했다. 학술대회 기획자의 관점에서, 기조발표 내용을 추후 어떻게 발전시킬지 궁금하다.
“란코프의 발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열어 놓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과 통일 이후 최대한 사회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에서 대북지원 및 남북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란코프 교수는 ‘북한의 인프라 개발 지원’이라든가 ‘연방제’와 같은 안들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통일 연구를 하는 데, 어느 한쪽의 방향이나 시나리오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열어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흡수통일을 보면서 그것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모든 것은 경로 의존적이기 때문에 미래는 결정돼 있지 않다. 우리는 최대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향에서 현재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게 ‘포스트 통일’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의미다. 통일 이후를 상상한다는 것이 통일 이후에 할 정책들이나 내용들을 연구한다는 것이 아니다. 통일 이후를 상상하면서 현재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연구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시나리오를 열어 놓고 최대한 한반도의 통일이 우리에게 행복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즉 통일이 주는 후유증이 보다 적고 남북의 결합이 보다 더 많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미래를 지금부터 준비하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권헌익 석좌교수의 「포스트 통일: 무엇을 준비할까?」는 매우 유익한 발표였다.

권헌익 교수의 ‘포스트 통일’ 개념에 대한 이해는 우리와 동일하다. ‘포스트냉전’은 유럽에서 ‘독일통일’과 ‘포스트사회주의’라는 체제변환을 가져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서구 이론을 가져와서 그대로 적용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동북아에서 탈냉전은 유럽과 다르다는 점이다. 여기서의 ‘탈냉전’은 한반도의 통일도, 동유럽식의 포스트사회주의도 가져오지 않았다.
남북은 냉전과 탈냉전이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며 동시성의 비동시성이다. 아시아의 사회주의는 민족해방운동이라는 탈식민의 역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권헌익 교수는 이런 점만이 아니라 주로 한쪽의 입장에서만 체제전환을 다루는 관점을 벗어나 ‘상호 전환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또한 우리가 제시하는 통일의 패러다임인 ‘차이와 소통’ 및 ‘민족 공통성 창출’과 잘 연결돼 있다. 앞으로 우리 연구단은 이를 발전시켜 유럽의 냉전-포스트냉전과 동북아의 차이, 유럽의 포스트사회주의 체제전환과 동북아에서의 체제전환의 차이, 차이를 통한 소통과 상호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포스트통일 연구를 진전시켜 나갈 것이다.”

△ 세부적으로는 법제협력, 에너지 분과 발표가 의미 있었다고 본다. 법제협력은 이데올로기와 제도의 문제가 중층적으로 결합된 사안이라 복잡하지만, 남북에너지 협력은 사실 경직된 남북관계에 어떤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는 사안 아니겠는가?
“통일이라는 게 결국은 남과 북이 하나의 헌법을 가진 국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헌법과 법률에 관한 연구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통일 이후 채택하거나 제정해야 할 법이 통일 이후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북교류협력 과정 자체가 남북이 법제 협력을 통해서 만들어가야 하는 것들이다. 특히, 개성공단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남북교류협력 자체가 새로운 교류협력법 및 상호 공통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남북에너지협력은 현재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분야다. 모두 4편의 논문이 발표됐는데, 과거 남북전력협력 방안에 대한 검토에서 시작해 현재 김정은 정권과의 남북전력협력 방안까지 논의됐다. 특히 박종배 건국대 교수(전기공학과)는 북한의 전력공급과 관련해 전력거래방안을 남북한 전략계획 최적화 및 거래가격을 시뮬레이션으로 그려내면서 매우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또한, 이날 토론에서는 남북한 전력협력을 동북아의 전력협력정책과 연계해 한반도를 동북아의 에너지 허브국가로 발전시킨다는 구상 하에서 ‘남북한 전력협력 및 통합 전력산업체제 구축 마스터플랜 수립’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윤재영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의 발표를 두고 많은 토론이 이어졌다.”

△ 4부 라운드테이블 ‘리부팅 코리아,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는 참여자가 독특했다. 양호승 한국월드비전 회장, 김성재 통일준비위원회 사회문화분과 위원장, 이종석 前 통일부장관이 패널로 참가했다. 통일 이후의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오갔다. ‘통일 이후 한반도 상황’이란 게 실은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가와 맞물린 의제일텐데, 이것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논의가 추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통일 이후 한반도 상황’은 현재 우리가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고 만들어 가는가에 따라 다르다는 게 중론이었다. 사람들은 한반도의 통일이 어떻게 이뤄질 것이라고 예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결정돼 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통일 상황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토론자들은 대북정책을 짜고 있는 남쪽의 정책당국자들이 과연 북을 알고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실효성이 있는 대북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을 잘 알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또한, 한반도의 통일은 좌우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벗어나 있는 코리언 전체의 민족적인 과제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에서는 대북정책 및 통일정책이 정치적인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토론자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정책 및 통일 비전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이거나 북이 아니라 남과 북이라는 한반도 전체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는 데 입장을 같이 했다. 그리고 이런 한반도 전체라는 관점에서 분과학문적 연구를 넘어선 통섭적이고 융합적인 연구 및 인문학에 기반하고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 원장님 본업은 ‘철학’이다. 2009년부터 ‘통일인문학’ 연구에 매진해왔다. 철학이 통일담론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철학자로서, 그리고 통일인문학 연구단장으로서, 통일의 의미를 정리한다면? ‘실효적 대안 제시’라는 점에서 남북 정책담당자들에게 던질 수 있는 메시지가 있을텐데.
“내 전공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서양 정치·사회철학이다. 그런데 요즘 나의 연구영역은 한반도 분단극복과 통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내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누누이 이야기하는 게 있다. 우리들이 하는 철학이 칸트가 이야기했던 ‘강단철학’이 아니라 ‘철학함’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지금, 이곳에 대한 문제의식을 관통했던 것이 바로 한국의 분단상황과 통일이었다. 개인적으로 2007년 연구년일 때 ‘통일인문학’에 대한 구상을 한 후, 연구년을 끝내고 돌아와 몇몇 연구자들과 통일인문학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켜왔고 현재에 이르렀다.
지적한 것처럼 철학, 그리고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이 한반도 통일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크다. 통일에 대한 철학적 기획 내지 인문적 기획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 통일담론이 정치경제를 포함한 체제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뤄왔다면 상대적으로 ‘사람의 통일’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독일통일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통일의 핵심과 완성은 ‘사람의 통일’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학문이 곧 ‘인문학’의 의미일 때 인문학 역시 통일담론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지금 우리들은 통일한반도를 어떠한 이념과 가치들이 새롭게 마련되는 미래적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인문적 기획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인문학자들이 실질적인 정책대안까지 만들어 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건 아주 실무적인 전문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둘이 전적으로 개별적인 분야들이 아닌 것 같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많이들 이야기 하는 ‘콜래보레이션’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통일이념과 가치들을 우리가 제시하면, 실제 정책담당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다면 ‘1+1=2’가 아니라 ‘1+1=3’이라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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