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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게임으로서의 인간의 삶
언어게임으로서의 인간의 삶
  • 류근조 중앙대 명예교수·시인
  • 승인 2016.05.0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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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류근조 중앙대 명예교수·시인
▲ 류근조 명예교수

일설에 의하면 태초에 식물에겐 든든한 뿌리가, 그리고 동물에겐 대지와 수평을 이루는 네 발이 주어졌으나 불안한 직립의 인간에겐 대신 언어능력이 주어진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와 관계없이 실제 우리 인간 존재와 언어의 문제는 현대에 이르러 언어가 존재의 규정이나 사유의 틀을 만드는 기능적 의미를 넘어 언어비판 자체가 현대 철학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 점이 곧 언어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언어학자 하야카와의 일반의미론의 대표적인 개론서에는 인간의 언어와 사고와 행동사이의 깊은 성찰과 연구관계가 주로 정서적 기능과 함께 그 통달적 기능에 맞춰져 있으며 “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방법으로서 마술적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멸시하는 것처럼 곧잘 ‘다만 언어의 문제다’라고 말하지만 말은 사람의 사고를 형성하고 감정을 통해 의지와 행동을 인도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행동과 성격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세상에 관해 논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의 성질에 의해 결정 된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베갯머리 송사에 약하다는 것은 아내의 감정호소가 주효하다는 정서적 기능을 의미하고 우리별 1호는 어떻게 지구를 돌며 그 과정을 송신해 줄 것인가의 문제는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과학적 표현을 전제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경제 진단이 빗나가는 경우 역시 그 언어로써의 통달적 기능의 오류 탓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종합해 보면 흔히 오해와 충돌이 횡행하는 인간사회에서 이를 테면 전기와 전류, 풍요와 풍부, 빈곤과 빈한 등의 단어가 지닌 차별적 어의가 제대로 쓰이지 않을 경우 사소한 것 같지만 그 중복 누적의 폐해가 가져올 가공할 혼란 그 결과에 대하여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럼 여기서 한 단계 높여 과학의 언어와 시의 언어의 다른 점을 알아보기로 하자.
“쌀값이 얼마인가?” “교통사고가 났어”와 같이 과학의 언어의 경우는 개념표시에 의존해 실제적 관심과 보고의 성격을 지녀 직접적이고 비개인적인 말의 뜻 논리에만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학 언어의 경우는 이와 달리 “그 꽃 참 곱군!” “그 녀석 눈이 샛별 같아”처럼 말의 함축성을 중시, 느낌 태도 해석에 의존하고 있어서 간접적이고 개인적이면서도 비약적이고도 날카로운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전자의 경우는 사물과 기호의 관계가 1:1의 관계로 성립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사물과 기호의 관계가 1:무한대로 까지 그 의미 확장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같은 “국화”라는 단어를 예로 들 경우 과학의 언어로서의 사전적 의미와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의 경우를 대비시켜 보면 그 차이를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어떤 경우라 해도 기호의 의미는 사물과 달리 하나의 체계를 지닌 텍스트를 전제로 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하야카와의 주장에 의하면 모든 종류의 독서는 기호적 경험(대상경험:내재적 기호의 세계-책속에서 타인의 인생을 산다)의 성격을 지니는 바, 성숙한 독자일수록 다양하면서도 수준 높은 이런 간접경험으로서의 독서를 통해서 깊은 통찰력은 물론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의미론』의 저자 하야카와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독서가 인물형성의 관계로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이기도 한 것 바, 여기서 유의해야 할 두 가지 문제는 독서의 대상인 책의 질과 양에 관한 것으로써 특히 이 시대에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인터넷의 발달로 지식의 쓰레기가 넘쳐나고 우리는 현재 얼마든지 지식의 재생산이 가능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바, 여기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한 번은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 즉 이는 이를테면 문학의 경우 베스트셀러라 해서 반드시 문학적 가치와 병행하지 않고 그 자체를 산업적인 차원의 기호품으로 분류 시효성에 맞춰 소위 문학관리자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극작가 이오네스크의 말대로 우리가 TV를 즐기지만 TV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드문 상황에서 인기프로가 조작될 수 있다고 한 경우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도 좋으리라.

류근조 중앙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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