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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떼와 품지고 갚는 소담스런 꽃
개미떼와 품지고 갚는 소담스런 꽃
  • 교수신문
  • 승인 2016.04.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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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53. 제비꽃
▲ 제비꽃
사진출처= 블로그 펜펜의 나홀로 여정(http://leeesann.tistory.com)

필자의 자드락밭둑 여기저기에도 제비꽃이 올망졸망 소담스럽게 피었으니 그들을 볼 때마다 봄이 무르익어 감을 느낀다. 제비꽃(Viola mandshurica)은 쌍떡잎식물,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種小名(specific name)인 mandshurica는 滿洲(Manchuria)에 어원이 있다. 대학 2학년 식물분류학 시간에 남산제비꽃, 금강제비꽃, 알록제비꽃 하면서 식물이름을 외웠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영노 은사님의 도타운 덕을 기리면서 이 글을 쓴다. 尊師愛弟를 되새기게 하는 분이셨다.

겨울나러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음력 삼월 삼짇날 무렵에 꽃을 피운다고 ‘제비꽃’, 꽃이 필 즈음에 오랑캐가 자주 쳐들어왔기 때문이라거나 꽃잎 뒤에 붙은 꿀주머니 생김새가 오랑캐의 머리채를 닮아서 ‘오랑캐꽃’, 키가 작아 앉아있는 것 같다고 ‘앉은뱅이꽃’, 꽃반지를 만든대서 ‘반지꽃’, 병아리처럼 귀여워서 ‘병아리꽃’라 부른다고 한다. 저명한 사람은 별명이 많다더니만.

제비꽃屬 식물은 세계적으로 500~600종이 되고, 한국에도 40여종이 자생한다고 한다. 알다시피 우리주변에 많이 심어진 팬지(pansy)도 제비꽃일종으로 북유럽원산 삼색제비꽃(V. tricolor)을 개량한 것이라 한다. 제비꽃은 동아시가 원산지로 한국·중국·일본·시베리아동부·몽고 등지에 분포하고, 노란색·흰색·보라색 꽃이 주종을 이룬다.

제비꽃(violet)은 전국의 밭들이나 산자락에서 우북수북 나고, 양지나 반음지의 물 빠짐이 좋은 건땅에 잘 자란다. 식물체는 10cm 남짓 크기로 잎은 길이 3~6㎝, 폭 1~2.5㎝이고, 긴 타원형(바소꼴)이며, 가장자리에 얕고 둔한 톱니(鋸齒)가 있다. 또 진짜줄기(true stem)가 없고, 잎과 꽃대는 땅속뿌리줄기(根莖,rhizome)에서 솟는다.

꽃은 4∼5월에 잎 사이에서 꽃자루(花梗)가 나 그 끝에 한 송이씩 달린다. 꽃빛깔은 진보랏빛인데 ‘보라색(violet color)’이란 말은 ‘제비꽃(violet flower)’에서 딴 이름이라 한다. 5장의 커다란 꽃받침(sepal)과 꽃잎(petal)이 있고, 꽃잎은 각각 2장씩 좌우대칭이며, 가운데 아래에 가장 넓고 둥근 잎 하나가 달렸다. 벌 나비들이 날아 앉기 편하게 아래를 향하고 있으며, 꽃의 뒤쪽으로는 ‘오랑캐의 머리채’ 닮은 길쭉한 꿀샘이 든 꿀주머니(꽃뿔, spur)가 튀어나와있다. 보통 꽃잎은 진보라색이지만 사는 장소(환경)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타원형인 열매는 6~7월경에 익고,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며, 뿌리줄기나 종자로 번식한다.

제비꽃은 봄철에는 꽃을 피워서 곤충을 끌어드려 타가 수정인 開花受精을 하지만 여름과 가을에는 꽃잎이 피지 않고, 곤충의 도움 없이 자가 수정인 閉花受精을 한다. 이렇게 꽃잎을 열지 않고 씨앗을 맺는 꽃을 ‘닫힌꽃(閉鎖花)’이라 하는데 건조·저온·빛의 부족 등의 비할 데 없는 악조건에 대한 적응현상인 것이다. 이런 폐쇄화는 제비꽃속말고도 괭이밥속, 물봉선속, 닭의장풀속 등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제비꽃이 있는 곳에는 꼭 개미떼가 옥시글댄다. 제비꽃과 개미는 서로 품지고 갚으니 동식물이 서로 돕는 멋진 본보기다. 제비꽃열매는 무르익으면 3조각으로 쩍 벌어지는데, 열매꼬투리가 마르면서 탁 터져 20~30개의 자잘하고 똥글똥글한 씨알을 멀리 수 미터까지 퉁긴다. 그런데 제비꽃종자 한편 끝에는 개미들이 좋아하는 젤리상태의 푸짐한 영양덩어리인 엘라이오솜(elaiosome)이 엉겨붙어있다.

elaiosome의 elaion은 그리스어로 기름(oil), soma는 덩어리(body)라 뜻으로 엘라이오솜이란 ‘기름 덩어리’란 뜻이다. 이것은 많은 꽃식물(顯花植物,flowering plant)들이 씨앗에 미끼로 붙여놓은 것으로 지질과 단백질이 주성분이다. 개미는 노상 그것을 물어다 새끼(개미유충)에게 먹인다. 새끼들이 엘라이오솜만 똑 따먹고 나면 어미개미는 나머지를 쓰레기장에 내다 버리니 거기에서 새싹을 틔운다. 이런 식으로 종자를 퍼뜨리는 것을 ‘개미 씨앗 퍼뜨리기(myrmecochory)’라 하는데 이는 훌륭한 동식물의 共生(symbiosis)인 것. 이런 영리한 꽃식물(종자식물)에는 제비꽃·금낭화·애기똥풀·피마자 등 세계적으로 족히 1만 종이 넘는다.

그런데 요샌 알록달록한 꽃잎을 먹는 것이 유행이다. 우리가 어릴 적엔 아무리 주려도 진달래꽃잎 정도를 따 먹었는데 말이지. 예부터 삼짇날에는 제비꽃화전을 붙여먹었고, 제비꽃의 어린 잎(순)은 나물로 데쳐먹었다. 요새는 꽃잎은 샐러드나 시럽으로, 잘 말려 차로, 또 뿌리는 삶아 잘게 썰어서 밥에 섞고, 갈아서 초를 만들어서 먹는다. 또한 꽃잎은 자주색 꽃물을 들이는 염료로도 사용했고, 로마여성들은 꽃 물감으로 눈 화장을 했다한다. 그리고 이오논(ionone)이 있어서 향수의 원료로도 쓰인다.

한방에서는 全草를 해독·소염·지사·이뇨 등에 썼다한다. 잎으로 만든 차는 불면증에, 꽃잎에는 14가지가 넘는 안토시안(anthocyan, 花靑素)이 있어서 항산화제(antioxidant)로 좋다한다. 게다가 당뇨·천식에 효과가 있고, 쿠마린(coumarin) 성분이 많아 뼈엉성증(骨多孔症)에 좋다하며, 앞으로 여러 약제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흔히 하잘것없는 잡풀정도로 여기는 식물들에 보약·치료제인 생약성분이 그득 들었다. 이렇듯 세상에 딱히 약 안 되는 푸나무(草木)가 없으니 야생식물을 잘 가꾸고 보존해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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