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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취업 중심 대학구조조정, 믿을만한 길일까?
정부의 취업 중심 대학구조조정, 믿을만한 길일까?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6.04.25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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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4주년 특별좌담_ ‘교수들, 대학개혁을 말하다’

‘취업절벽=대학교육 실패’ 성급한 결론에 학문 붕괴…정부의 대학정책도 평가해야
정부의 재정지원은 결국엔 학생·학부모가 낸 돈 “수요자 중심 대학개혁 당연하다” 

대학은 지금 두 가지 측면에서 학생·학부모와 정부·기업으로부터 강력한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학생 1인당 연간 1천만원을 웃도는 학비(연간 평균 등록금 667만원, 생활비 포함)를 쓰고 있지만 졸업 후 절반 가량만 취업하는 청년실업 문제와 급격히 줄어드는 학령인구가 그것이다. 전자는 대학의 재정 확보 방안으로, 후자는 대학의 기능 변화라는 측면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2010년 전후 ‘대학구조개혁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대학의 정원 감축과 학교 폐쇄 등을 추진하고 있다. 

쟁점은 대학개혁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추진해야 대학과 학문에 발전적인 미래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다. 그간 정부가 주도해 온 취업 중심의 대학구조조정은 대학을 획일적으로 변화시키는 동시에 학문공간을 취업공간으로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교육·연구를 담당하는 교수들은 이러한 방식의 대학개혁은 서류 생산작업에 그칠뿐 아니라 학문 기반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수신문>은 창간 24주년을 맞아 취업과 구조조정이라는 대학개혁의 두 가지 딜레마에 집중했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는 교수들을 초청해 정부 주도 대학구조조정의 실태를 진단하고, 대학의 발전적인 미래를 모색했다.

●일시: 2016년 4월 20일 오전 10시 30분
●장소: 서강대 R관
●토론: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 박승찬 가톨릭대 교수(철학), 박승철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총장(전 대학구조개혁위원)
●사회: 이덕환 <교수신문> 논설위원(서강대·화학)
●사진·정리: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이덕환(사회): 정부 주도의 취업 중심 대학구조조정, 현장에선 어떻게 느끼고 있나?

박승찬: 대학개혁이 필요하다는 덴 동의하지만, 걱정스런 부분이있다. 지금 정부나 사회에서 말하는 대학개혁은 교수나 대학을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을 당해야할 객체로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취업난은 전공 쏠림 현상 등 대학교육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가? 혹은 구조조정을 하면 취업난은 해결되는가? 물론 강제적으로 개혁이 불가피한 부분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모든 문제의 원인이 대학과 교수들에게 있다는 식의 정책은 발전적인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김종영: 대학가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혼란스럽다. 나는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정의’가 저마다 다르다는 데 주목한다. 많은 대학교육전문가들을 만나보고, 관련 자료를 살펴봐도 대학구조개혁에 관한 전략, 비전, 상상력이 모두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한국의 대학이 기존에 품고 있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구조조정이란 정책으로 단번에 해결해버리려고 한다. 그간 대학은 지방-서울로 나뉘었고, 대학 간 서열화가 심각했다. 대학별로 차별화를 찾아보기 어렵고, 사립대 비율은 80%에 달한다. 정부의 대학재정은 턱없이 부족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 테니 그 전에 구조조정부터 하겠다는 건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전략이다. 여기에 능동적인 창조전략이 없다. 장기적인 비전이 없다. 요즘 모든 교육정책이 돈 줄 테니 3개월, 6개월 안에 계획서 내라, 이것 뿐이다. 교수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스스로 내놓고 학생·학부모 등 대학구성원들과 대토론을 해야 한다. 

교수들, 전체 그림 보면서 대학 현실 진단해야

박승철: 대학이 스스로 변화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해온 측면이있다. 예컨대 스탠퍼드대에서 공과대학 학생들의 46.2%가 소프트웨어를 전공하고 있다. 서울대는 6.5%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스마트 소사이어티 등 거의 모든 세계의 생활과 경제, 사회현상의 중심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그만한 인재를 미국은 (특정 대학의 예이지만) 46.2%가 공부하고 있다. 이것은 교수들이 자기 전공을 쿼터로 정해놓고 사회와 학생들의 요구를 외면해온 탓이다. 많은 대학에서 자연스러운 변화와 혁신, 구조개혁이 이뤄져야 하는데 대학 스스로 못해 온 게 사실이다. 게다가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에 위기가 온다는 건 불보듯 뻔하다. 교수들이 전체 그림을 보면서 대학의 현실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대다수 대학이 문을 닫게 된다면 어떻게 교수들의 교권이 보호될 수 있겠는가. 선제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덕환: 대학위기의 책임이 상당부분 교수에게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교육부의 정책이 사회적 합의와 창조적 비전이 전무한 상태로 구조조정이 상당기간 진행되면서 대학이 길을 잃고 있다.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을 따라가려는 대학이 있는 반면, 마지못해 조용히 눈치만 보는 대학, (정부 정책을) 아예 포기한 대학도 있는 것 같다. 바뀌어야 한다는 개혁의 필요성은 인식하는 반면, 누구도 개혁 방안을 모르는 상황이다. 1990년대 초반 정부에서 선정한 ‘우수학과’의 소속교수들이 안식년을 가는데 교육부가 지원금을 줬다. 교육부가 이런 정도의 지원 역할에서 2000년대 국민의정부부터 ‘대학원중심대학’이란 말이 나오면서 정부가 대학을 구조조정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대학은 근래 20년 을 정부 주도 개혁에 발맞춰 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이 과정에서 대학의 자율성, 자생력, 능동적인 자세 이런 것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학 나름대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수시로 쏟아지는 교육부 정책에 맞춰가는 데 집중해 온 탓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이 못하니까 정부라도 나서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반면 정부가 너무 개입을 해서 대학이 자생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김종영: 대학사회에서 주도적으로 대안들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대안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한국 대학 시스템 자체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학부모들은 ‘교육지옥’이라고까지 말한다. 정부도, 교수들도 막상 대학개혁의 아이디어가 별로 없다. 그래서 대학은 자원(자본)을 가진, 정책을 가진 정부에 이끌려갈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대선주자들이 고등교육에 수백조원을 투입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고등교육정책을 장기적으로 내놓거나 대규모 자원을 투자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덕환: 박승철 총장님은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정책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박승철: 이제는 다른 측면을 봐야 한다. 전국의 수많은 교수의 급여, 대학 운영 자금은 학부모에게서 나온다. 정부 재정도 학부모가 납부한 세금의 일부다. 그런데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절반은 (졸업 후) 직업을 가지지 못한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건 재정 소스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대학이 정부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된다. 정부도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재정지원사업에 수월성을 강조하고,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려 할 것이다.

박승찬: 물론 재정의 많은 부분은 학부모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미국의 대선주자들이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지원하겠다고 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독일의 대학정책도 마찬가지다. 대학교육 투자해서 국가에 기여할 인재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에서는 철저한 국가 통제가 이뤄지긴커녕 대학에 자율성을 준다. 대학교수들이 입안할 수 있는 교육정책, 교육효과들을 자칫 정부가 확인되지 않는 방식으로 제한하는 순간 결과도 제한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거다. 나는 오히려 대학을 평가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추진된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을 평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정부의 어떤 사업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 어떤 실패를 했는지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덕환: 우리 대학의 현실에 관한 지적들이다. 많은 교수들은 현재의 대학개혁이 교육부가 추진하는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라고 보는 반면, 소수의 교수들은 책임이 대학에 있다고 말한다. 교육부의 대학정책,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박승찬: 교육정책 목표와 대학 현장의 괴리는 굉장히 크다. 학부제는 정부 주도 대학개혁 중 대표적이다. 대학이 준비 되지 않았는데, 학부제를 강행하다보니 실제 교육현장에선 ‘방조’하는 형태로 운영됐다. 지금은 더 진화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신 당근(지원금)으로 대학을 경쟁시킨다. 정부의 재정지원사업들은 얼핏 보기엔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 같지만, 사업에 선정되지 못하거나 교육성과를 내지 못하면 개별 대학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정부는 지원만 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책임에서 자유롭도록 설계돼 있다.

“정책 과잉의 사회에 주목하자”

이덕환: ‘정책 과잉의 사회’를 주목한다. 정책을 만드는 정부의 의도와 정책의 영향을 받는 국민 사이의 괴리가 큰 것이다. 대학개혁도 마찬가지다. 구조개혁법을 통과 시키지 못한 채 대학을 구조조정하고 있는 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책 의도와 현실이 맞지 않는 현실은 심각한 과제인 것 같다. 최근 대학에 요구되는 핵심 화두는 ‘취업률’이다. ‘사회맞춤형’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학구조조정이 취업 중심, 사회맞춤형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진단해 본다면?

박승찬: 최근 <교수신문> 설문조사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대다수 교수들은 취업 중심의 구조조정정책엔 반대했지만 학생들의 취업은 돕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다. 나도 취업 지도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언론에서 자주 지적하는 것이, 대졸자들이 기업에서 일하려고 하는데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게 대학개혁의 방향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학은 전문대학이다. 전문대학에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반대학에 취업을 요구하는 게 맞는 걸까? 기업은 곧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 달라고 대학에 요구한다. 그것도 ‘맞춤형’으로 말이다. 이런 인재가 변동성이 강한 현대 산업사회에 맞는 모델인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해서 곧바로 회사의 일원으로 쓰일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이 기업은 과연 좋은 기업일까? ‘맞춤형’으로 교육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5년 후면 산업의 중심이 바뀔 텐데, 5년 전에 양산된 학생들에 맞춰서 정책을 가져간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 같은 시대에 어느 누가 10년 후 취업시장을 예견할 수 있나?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대학은 기초교육을 탄탄하게 해야한다. 수학을 비롯한 인문학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학생들은 어떤 상황·조직·사회에서도 그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다. 이게 안 되면 대학이 ‘A/S’(애프터 서비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박승철: 문제는 지금과 같은 학과 체제 안에서는 기초인문교육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학부제 땐 그나마 수월했지만, 지금과 같은 학과제에서는 힘들다. 맞춤형 교육은 전문대 영역이 아니냐는 논의도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전문대에 가야할 학생의 상당수가 일반대에 진학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국력과 산업역량 등을 고려할 때 200개 대학이 학문중심으로 간다는 건 무리다. 사회 수요와 맞지 않다. 현실적으로 대학이 맞춤형 교육을 안 할 수가 없다. 최근 다보스포럼에서는 5년 안에 일자리 750만 개가 없어진다고 했다. 이건 한국과 직결된 문제다. 10년 전 세계 10대 기업과 지금의 10대 기업은 완전히 다르다. 구글, 페이스북이 생산한 것들이 손으로 만져지는 것인가? 대학이 스스로 변화해서 인재를 배출한 대학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정부가 ‘돈’ 준다고 쫓아다니는 대학도 있지만, 받을 건 받으면서 결국엔‘자기 것’을 해야 한다.

이덕환: 이렇게 쉽고 명쾌한 걸 대학들이 왜 못하는 건가?

김종영: 대학은 오른쪽과 왼쪽이 있다. 오른쪽이 국가 인력 배출이라면, 왼쪽은 학문의 전당이다. 10년 전 기업은 지금의 기업 아니지만, 우수한 대학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다. 수백년의 경쟁에도 살아남은 조직이 대학이다. 이는 대학이 보편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1년, 10년 단위의 잣대를 대면 대학은 기업처럼 무너질 것이다. 우리의 미래와 인류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대학의 사명이 존중돼야 하는 이유다. 오른쪽은 국가의 미래, 인재 창출이다. 1970년대는 10%, 80년대는 25%, 지금은 85%가 대학에 진학한다. 학력과잉은 그 자체로 위협이라기보다 저성장이라는 경제적 측면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덕환: 지금 젊은이들은 취업절벽에 서 있는데, 이게 과연 대학이 딱딱하게 가르치고,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론 ‘취업절벽=대학교육 실패’라는 도식은 너무 성급한 결론인 것 같다. 사회맞춤형, 취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문과·이과가 떠오른다. 예를 들어 은행직원은 문과를 나와야 할까, 이과를 나와야 할까? 그렇다면 맞춤형 교육이란 건 무엇을 의미할까? 더 와닿는 예를 들어보겠다. 원자력발전소에는 대체로 원자력 전공자가 취업한다. 기상청은 대기환경공학과 학생들이 간다. 교육부는 교육전공자들이 간다. 이건 ‘맞춤형’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조직은 같은 그룹 간의 결탁, 이른바 ‘마피아’문제를 양산했다. 자칫 이런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력 수급 미스 매치’에 관해 이런 통계도 있다. 국내 대학의 디자인 전공 졸업자가 관련분야에 취업하는 숫자는 미국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설문조사 결과로 돌아가보자.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교수들이 현재 대학의 현실인식은 심각하다고 인지하고 있지만, 이에 관한 논의나 비판엔 침묵키로 했다는 것이다. 최근 교수들이 우리 스스로를 위해 혹은 학생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나 싶다.

김종영: 교수들도 ‘마피아’다. 사회학과 출신 학력 전수조사 했는데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 70%이고, 대부분이 미국 유학파였다. 여기서 사회적 폐쇄 이론을 말하고 싶다. 지금 한국사회는 사회적 폐쇄가 다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학력에 의한 사회적 폐쇄, 직업(대기업-중소기업), 빈부격차, 남녀 차이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가 폐쇄적이다. 이걸 ‘일극체제’라고 부른다. 다원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잦고,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 것이다. 이를 테면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살길 원하고, ‘명문대학’에 진학하길 원한다. 이런 의식 자체를 깨야 한다. 그럼 왜 교수들이 침묵하게 됐을까. 이건 (현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대안이 없고, 나서봤자 풀릴 것 같지 않다는 심리 탓일 것이다. 교수들이 보기엔 지금 자신에게 닥친 문제가 ‘풀 수 없는 문제’처럼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연구·교육에 취업까지 하라고 하니 다들 자기 일이 바쁘다.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는 비전, 상상력을 연구해야 하는데 전문가들조차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럴 땐 ‘상상력’이 필요하다. 

교수들의 변화와 대학의 힘 회복 중요

박승찬: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교수를 기대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 교수들도 그렇게 교육 받아오지 않았다. 특정 분야에서 한해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 때문에 전체를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바뀔까? 작은 대학은 장점이 있다. 식사하고 운동할 때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제의식을 깨어간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면서 다 사라졌다. 이제는 교수들끼리 대화를 못한다. 비판적인 현실인식을 가진 분들도 얘기했다가 결국엔 안 된다는 열패감에 휩싸이고 있지 않나. ‘쓸모없는 비판자’로, 대학 안에서조차 내몰린다면 교수들은 입을 닫을 것이다. 교수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줘야 한다. 또, 외부적 요인으로 교수들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신중히 고민해볼 문제다. 예컨대 교수업적평가를 수월하게 충족시키는 방법을 아는 교수들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문 닫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교수들이 많아지면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란 거다. 대학 당국자들은 어떻게 하면 교수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건 국가가 방향성만 제시해줘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일방의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나 다양한 목소리를 원천차단하는 구조라면, 교수들은 스스로 더 공고하게 문을 닫아버릴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교수들조차 비판을 포기한다면 학생들이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 교수들도 고민해야 한다.

이덕환: 교수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정답을 요구하는데, 대학 안에는 정답을 낼 수 있는 교수가 없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더 중요한 건 ‘정답이 하나인가’에 관한 것이지만 말이다. 지금 대학은 다양성이 제한받고 구속되고 있다. 무한경쟁에 내몰리다보니 박승찬 교수의 말처럼 같은 학과 교수들과도 얘기할 기회가 없다. 정책 중심의 조급한 무한경쟁, 모든 교수들이 눈 앞의 것을 찾아먹기 위해서 내몰리는 상황이다. 이걸 정책 당국에서 보기엔 ‘정책성공’이라고 느끼지 않을까? 하지만 교수들도 대학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엔 공감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합의’라는 건 어떤 것일까? 누구나 동의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말이 사회적 합의다. 이를 테면 전국대학교 교무처장협의회와 교육부가 합의하면 사회적 합의인가? 대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풀어야할 사회적 합의는 무엇인가?

박승찬: 학부모들이 속은 게 있다. 자신들이 못간 대학이라서 자녀를 진학시키고 막대한 교육비용을 투자했다. 예전엔 대학은 못가도 취업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을 설명해야 한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은 굉장히 좋은 얘기고 민주적일 테지만, 내심은 다들 변호사, 의사 만들어서 떵떵거리면서 살게 하고 싶은 것이다. 수요자의 뜻을 반영해 의과대학, 법학대학을 많이 만들면 이게 과연 민주적인 사회일까? 이렇게 되면 역으로, 모든 시민이 범죄자와 환자가 돼야만 수요-공급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회와 대학은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몇 가지 샘플을 만들어주길 청한다. 정부가 부실대학을 인수해서 ‘산업수요 맞춤형’으로 모델화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탁월한 기획력을 가진 교수들을 파견해서 성공시킨다면, 오히려 차별되는 정책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당장 취직을 원한다면, 정말 국립대답게 저렴한 여건 속에서 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런 걸 보여줘야 대학과 교수들에게 설득이 된다.

이덕환: 우리 대학이 어려운 상황인 건 확실하고, 학생·학부모의 요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바뀌어야 하는 건 사실인데, 정책을 입안해서 수용하는 정부 입장과 받아들이는 대학의 온도차가 심하다. 선별적으로 하는 사업이니 대학이 알아서 따라와 달라는 얘기는 지난 20년의 경험으론 안 맞는 것 같다. 지금은 평가를 통한 꼬리표 붙이기, 낙인 찍기식 정책이다. 정부사업에 선정된 대학은 좋은 대학, 탈락하면 나쁜 대학이다. 가장 중요한 건, 교육기관에 낙인 찍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의 다양성, 차별화 이런 가치들이 ‘정책홍수’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젠, 대학의 힘을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과제인 것 같다.

박승철: 대학 스스로 당당해져야 한다. BK, CK, 링크, 프라임, 코어사업…. 대학이 스스로 설립이념과 교육철학에 맞는 것을 취사선택해서 교육철학을 구현해야 한다. 대학이 재정적으로 궁핍하다보니까, 재정사업이란 재정사업은 모두 끼어드는 게 현실이다. 대학이 무분별하게 모든 사업에 관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스스로 당당해지고, 스스로 개혁하자.

김종영: 대학도 장기적인 전략이 있고, 단기적인 전략이 있는데, 생존이 급하다보니 단기적인 전략에 매몰돼 있다. 교육부도 단기적인 전략에 매몰돼 있다. 대학은 생존의 공간이 아니고, 개혁의 공간도 아니다. 대학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보편적인 기능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균형잡힌 장소로서 사회적으로 보호해줘야 한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지금, 대학은 위기다. 그간 양적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개혁은 당연히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공평하면서 효율성 있는 개혁에 대한 사회적 대토론을 제안하고 싶다. 대학 위기에 교수, 학생, 학부모 모두의 분노가 한계치에 다다랐다. 다양한 의견과 지혜를 모아서 실질적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게 개혁을 장기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이덕환: 공정성도 필요하고, 효율성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건, 다양성 아닌가 싶다.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을 만드는 과정에서 교육부와 대학이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다양성에 관한 혜안을 찾아내는 게 시급하다. <교수신문>과 같은 언론이 대학교수들의 자성의 목소리를 담아냈으면 한다. 교육부의 달콤한 유혹정책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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