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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적 기억은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켜 … 탈영토화된 ‘기억의 연대’ 필요”
“국가주의적 기억은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켜 … 탈영토화된 ‘기억의 연대’ 필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4.12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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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_ 6강. 임지현 서강대 교수의 ‘지구화 시대 국가주의와 기억의 정치’

 

▲ 임지현 서강대 교수(사학과)는 지난 9일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제2섹션의 첫번째 강연에서 ‘지구화 시대 국가주의와 기억의 정치’를 주제로 강의했다

‘윤리와 인간의 삶’을 주제로 한 ‘문화의 안과 밖’ 시즌3이 제2섹션 ‘정치의 목표와 전략’ 강연을 시작했다. 2섹션 ‘정치의 목표와 전략’은 시즌3의 전체 주제 가운데 ‘윤리’보다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주제다. 바람직한 삶은 언제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갈등하는 개인과 집단 간의 문제와 공통분모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9일 2섹션의 첫 번째 강연은 임지현 서강대 교수(사학과)의 ‘지구화 시대 국가주의와 기억의 정치’로 진행됐다. 임 교수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바르샤바대와 크라쿠프사범대를 오가며 연구했고 포츠머스대 소속 연구모임 ‘유럽의 민족주의와 민족적 정체성’의 특별연구원,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초청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또한 베를린 고등학술원 펠로우와 팔그레이브·맥밀란 출판사의 『Mass Dictatorship』 시리즈(총 5권) 에디터를 지냈다. 저서로는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그대들의 자유, 우리들의 자유: 폴란드 민족해방운동사』, 『이념의 속살』 등이 있다.

임 교수는 “국가주의와 기억의 복합적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의도라는 위로부터의 의도주의적 관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국민화된 기억의 전쟁터인 동아시아에서 국경을 넘는 기억의 연대를 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제2섹션 일정은 6강 지구화 시대 국가주의와 기억의 정치(임지현 서강대, 4/9), 7강 제국, 국가, 민족(이삼성 한림대, 4/16), 8강 정치와 정치 전략(박명림 연세대, 4/23), 9강 법치와 덕치(이승환 고려대, 4/30) 순이다. 이날 임지현 교수의 강연 주요 부분을 발췌했다.
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국가는 기억을 관리할 수 있는가?
국가 권력이 기억에 개입한 최초의 사례는 기원 전 403년 아테네 민주정이다.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직후 승전국 스파르타의 간섭 아래 수립된 ‘30인 참주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정을 막 회복한 터였다. 아테네 민주정의 첫 행보는 뜻밖에도 모든 시민들이 참주정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수십 년간 아테네 민회가 이 시대의 기억을 둘러 싼 정치적 다툼과 수사적 갈등으로 얼룩진 것을 보면, 망각을 강제했던 아테네의 정책은 별반 성공적이지 못했던 듯하다. 2차대전 이후 냉전적 국제 관계를 지배한 ‘기억의 정치’ 역시 망각과 침묵의 공조로 요약된다.

탈냉전 이후 진영논리에서 해방된 기억의 역사는 ‘민족적 기억’에서 벗어나 ‘초국적 기억’으로 발전해왔다. 지구화의 방점이 상상력에서 기억으로 이동한 21세기에 들어서는 기억의 탈영토화가 급격히 진전됐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테러와 나치의 범죄를 등가로 놓는 ‘프라하 선언’(2008)과 홀로코스트의 상대화에 반대하는 ‘70주년 선언’(2012)의 대립에서 보듯이, 트랜스내셔널한 기억 공간에서 탈영토화된 기억들이 다시 경합하고 재영토화되기 시작한 것도 지구화 시대의 일이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불가역적 해결’을 표방한 2015년 12월 28일의 한일 합의 역시 그러한 사례로 주목된다.

그러나 개개인의 내밀한 기억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는 게 얼마나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국가가 ‘기억’을 관리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무지와 오만이 가장 큰 문제다. 기억에 대한 현 정부의 무지와 오만은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사업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기억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국사 교육을 독점해서 ‘비판적 역사학’을 ‘기념비적 역사학’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밑으로부터의 ‘민간 기억’을 국가가 관리하는 ‘공식 기억’으로 대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과거를 기억할 때, 그 기억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역사적 지식의 프레임이다. 역사 교육 뿐만 아니라 대중적 문화공간을 지배하는 역사적 서사는 과거에 대한 개개인의 사유와 기억, 그리고 발화를 유도하고 구성하며 구조화하는 ‘서사적 틀’로 작동한다. 국정교과서가 문제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민족 서사와 기억의 국민화
전후 일본의 기억이 포스트제국이 아닌 포스트식민지의 위치에 놓이자,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타이완은 물론 중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일본에 침략당한 아시아의 고통은 일본의 기억에서 쉽게 지워졌다. 이러한 ‘기억의 국민화’는 전후 유럽에서도 널리 퍼진 현상이었다. 자기 국민이나 민족이 아닌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은 어디에도 설 땅이 없었다. 사회주의 동유럽에서 형성된 기억의 지형도 자본주의 서유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두 진영은 모두 ‘기억의 국민화’라는 서사 모델을 채택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건국 시기의 이스라엘에서조차 홀로코스트는 의도적으로 잊혀졌다. 동아시아에서도 인종, 민족, 젠더, 이데올로기 등에 따라 차별적인 기억과 배상이 이뤄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부장사회에서 가장 먼저 배제된 것은 소수자였던 여성들의 고통에 대한 기억이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고발이 있기까지 군 위안부의 고통은 한반도의 식민지 기억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
기억의 국민화가 불러 온 가장 큰 역설은 다양한 소수자들을 기억에서 지우는 대신 가해자들을 피해자로 둔갑시켰다는 점이다. 일부 우익 민족주의자들은 심지어 유대인과 일본인을 백인 우월 인종주의의 대표적 희생자로 간주해왔다.

기억의 탈영토화와 초국적 연대
‘기억의 정치’에 대해 지구화가 미친 가장 큰 영향은 기억의 탈영토화를 촉발했다는 점이다. ‘움직이는 기억’, ‘여행하는 기억’, ‘이주하는 기억’ 등등의 수사에서 보듯이, 2차대전 이후 대규모로 발생한 피난민, 강제 추방자, 귀향민, 재정착민, 이주민들이 들고 온 짐 보따리에는 그들만의 고유한 기억이 있었다. 원래의 장소성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이주한 다양한 기억들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만나 서로 대면하고, 공존하고, 화해하고, 경합하면서 ‘트랜스내셔널 기억문화’, ‘글로벌 집단 기억’, ‘코스모폴리탄 기억’, ‘다방향적 기억’들을 만들어 냈다. ‘내적 지구화’라 일컬어지는 기억의 지구화 과정 속에서 2차대전의 기억은 탈영토화되고 국민국가 단위로 구성된 집단 기억은 탈국민화되기 시작했다.

대체로 ‘기억의 국민화’가 자기 변호적 집단 기억을 지향한다면, 탈영토화된 기억은 국민국가를 단위로 한 집단 기억에 비판적이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비판적 집단 기억이 등장한 계기는 1960년대의 베트남 반전운동과 68혁명이었다. 그러나 역시 지구적 기억 공간에서 홀로코스트와 식민주의에 대한 기억이 자국의 경계를 넘어 기억의 연대를 도모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냉전체제의 붕괴가 있다. 냉전체제의 붕괴는 그 동안 공산 진영이냐 반공 진영이냐 하는 진영 논리에 갇혀 소외되고 억눌렸던 기억들이 해방되는 계기였다.
국경을 넘는 기억 공간에서 탈영토화된 비판적 기억의 대표적인 예는 다른 무엇보다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여성 국제 전범재판’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러셀법정’의 선례에 따라 세계적 시민법정의 형식으로 열린 이 재판에서 군위안부 관련 기억의 운동가들은 일본국과 히로히토 천황을 ‘반인간적 범죄’ 혐의로 기소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일본군 성노예제의 참상에 새삼 세계 여론의 눈길을 끌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지구적 차원에서 비판적 기억의 주요 테마가 된 것이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것은 비판적 기억만이 아니다. 트랜스내셔널한 기억 공간에서 기억의 재영토화는 기억의 탈영토화 못지않게 자주 발견된다.    
          
기억의 연대
인류 역사에서 국경을 넘어 연대하려는 노력은 다양하게 있어 왔다. ‘근대’가 세계사적 규모로 전개된 19~20세기에는 코스모폴리타니즘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국경을 넘는 연대를 서로 다른 사회적·이념적·문화적 기반 위에서 추구해왔다.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것은 고통과 희생의 연대다.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와 유럽의 반인종주의 활동가, 맨하탄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나눔의 집의 군위안부 할머니, IS 및 보코 하람에 납치된 성노예들과 인신매매의 희생자들, 보스니아의 인종청소 희생자들과 르완다의 투치족,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희생자들과 유럽의 반유대주의 희생자들이 공유하는 것은 이념도, 종교도 아닌 고통과 희생의 기억인 것이다.

문제는 기억의 충돌과 모순이 아니라 그 갈등의 성격이다. 서로 공생하고 같이 갈 수만 있다면, 오히려 개별적 기억의 차이는 과거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상상력의 지평을 넓힐 것이다. 국가주의적 기억이 위험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전지구적 기억 공간에서 기억의 국민화를 추구하는 국가주의적 기억은 기본적으로 경쟁하고 싸우는 적대적 기억으로 자리 잡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화해냐 갈등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탈영토화된 기억인가 재영토화된 기억인가 하는 점이다. 기억을 재영토화하기 위한 화해는 탈영토화된 기억들 간의 갈등과 모순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국가 권력이 기억을 재현하는 ‘서사적 틀’로서의 민족 서사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독점 사업자로 나서려는 시도가 위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화된 기억의 전쟁터인 동아시아에서 국경을 넘는 기억의 연대를 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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