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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학자들은 우리식 ‘학술용어’를 사용하지 않을까?
왜 우리 학자들은 우리식 ‘학술용어’를 사용하지 않을까?
  • 교수신문
  • 승인 2016.04.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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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글학자의 「다시 생각해보는 ‘우리말로 학문하기’」

 

 

우리 지식인들 가운데는 일본 사람이 서양말을 번역한 용어는 그대로 받아쓰면서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우리 학자가 우리말로 번역하거나 지어 쓰면
어색해 하는 이가 많다. 일본이나 중국 학자는 그들 식으로 외국 용어를 번역해
써도 되고, 우리는 우리말 식으로 번역해 쓰면 안 되는 것일까?

조재수 겨레말큰사전 상임이사는 사전편찬에 밝은 한글학자다. 그런 그가 오래전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한 집담회에서 「국어사전을 통해 본 학술용어」를 발표한 건 2006년 2월의 일이었다. 아카데미의 ‘학술용어’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당시 ‘우리말로 학문하기’라는 주체적 학문 활동의 의미망에서 제기된 중요한 비판이었다. 그가 최근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가 매월 온라인으로 펴내는 <겨레말 칼럼>에 「다시 생각해보는 ‘우리말로 학문하기’」라는 글을 발표했다. 물론 2006년의 글을 일부 고치고 더한 것이다. 2006년의 글이 2016년의 상황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의 글 주요 부분을 발췌해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의미를 성찰해본다.

‘우리말로 학문하기’란 세계의 온갖 지식을 우리말과 글로 이해할 수 있게 연구하고 교육하는 일이다. 우리가 외국 지식을 다루되 한문, 일본어, 영어 등의 표현으로 이해하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이해하고 가르치는 바탕을 닦자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외국에 유학도 가고, 전문 지식의 원전을 섭렵해야 하는 일은 별개 문제다. 제 나라 학문의 근본과 교육의 보편성을 생각할 때 지켜야 할 언어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지식 사회는 서양의 온갖 주의와 사상을 담은 말과 글이 넘치고 있다. 또 온갖 외래 종교가 들어와 성공하는 나라가 이 나라다. 서양의 주의나 사상의 옷을 입은 지식인이라야 대접을 받는다. 중국 사대주의 그늘에서 그랬듯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의 학문과 문화 터전은 흔들리고 있다. 일제 시대에 일본어를 가르치던 초등학교에 이제는 영어 수업, 한자 수업의 소리가 높다. 곳곳에 영어 마을, 영어 특구가 생긴다. 한문의 이해가 곧 지식이었듯이, 이제는 영어로 하지 않는 학문은 인정을 못 받는다. 주시경(1876~1914) 선생이 걱정했던 현실이 되풀이되고 있다.
선생이 말한 ‘國性’이 바로 나라의 고유한 특성을 이르는 말이니, 겨레의 정체성과 다른 말이 아니다. 국성을 지키는 바탕이 겨레의 말과 글이라면, 국성을 키우는 힘은 겨레의 말과 글로 이뤄지는 학문이다.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의 학문을 수용하되 우리의 말과 글로 받아들이고 가꾸자는 것이다. 세계화 속에 우리 학문의 바탕을 내버릴 것이 아니라, 우리 학문 속에 세계의 학문을 포용하자는 것이다.

사전과 학술용어
사전에 올려 풀이하는 어휘를 ‘올림말(표제어, 등재어)’이라 한다. 올림말의 분야에 따라 사전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주로 일반 어휘를 다루는 ‘언어사전’과 온갖 지식 어휘를 다루는 ‘백과사전’, 전문 분야 어휘를 다루는 ‘전문용어사전’이 있다. 언어사전이면서 보편적인 전문 학술 분야 용어를 함께 다루는 종합적인 사전도 있다. ‘전문 학술 분야 용어’를 줄여서 ‘전문용어·전문어’라 한다. 전문용어를 포함한 국어 종합 사전으로는 중간 규모의 것으로 『조선어사전』(문세영, 1938)이 첫 출판물이었고, 『큰사전』(조선어학회, 1929~1957)이 당시로서는 큰 규모의 종합 사전이었다. 문세영은 18분야, 큰사전은 49분야, 북의 『조선말대사전』(1992)은 46 분야, 『표준국어대사전』(1999)은 51 분야의 전문 학술용어를 실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모두 50여 만 올림말 가운데 19만의 전문 학술용어(고유명사 포함)를 올렸다. 국어사전 속의 학술용어는 주로 과학 기술, 인문 사회, 예술, 종교와 신화, 의학, 스포츠, 기타(사람 이름·책이름·땅이름·고적 등) 분야의 용어들이다.

전문성이란 특수성과 통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분야에 통용되는 언어도 꼭 전문적이고 특수해야만 할까? 특수한 지식이나 학문도 잘 이해되고 소통되려면 말(용어)이 어렵지 않고 분명해야 한다. 말이 특수하고 어렵다는 것은 이해와 전달에 부담이 된다. 그러나 대개의 전문어에는 어렵거나 낯선 외국어들이 많다. 그래서 나라마다 이 문제를 고민하면서 쉬운 말과 자국어 표현 용어로 다듬는 일을 꾀해 왔다. 전문용어와 일상용어를 비교한 한 통계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전문용어 언어공학 연구센터’의 자료를 보면, 전문용어와 일상용어의 괴리가 미국은 40%, 일본은 60%에 비해 한국은 80%이다. 한국의 어른들이 얼마나 집단 내부의 끼리끼리 의사 소통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외부와 담을 쌓고 있는지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최용석, 「어른들이 가르치는 ‘나쁜 영어’」, <한겨레신문>, 2002. 1. 28.)

위의 ‘전문용어와 일상용어와의 괴리’ 비율에서 ‘%’ 수치를 거리 단위인 ‘리’로 바꾸어 보면, 미국은 40리, 일본은 60리에 비해 우리나라는 80리나 동떨어져 있는 셈이다. 전문용어라 하여 일상의 언어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일반인과 전문가(또는 학자) 집단과의 의사 소통은 퍽이나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언어에서도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특권층이 군림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중심 집단은 일반 언어 대중이다. 전문가와 학자들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집단이기는 하나 일반 언어 대중을 무시하고 자기 위주의 언어만 쌓아 간다면 사회의 중심 언어는 발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날로 고유한 어휘와 표현들은 무시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어대사전』(2009년)에 ‘탯줄피·탯줄혈액’을 이르는 의학 용어로 ‘제대혈’을 올렸다. ‘탯줄피·탯줄혈액’은 의학 용어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전문 지식인과 종사자들 중에는 새끼고기를 ‘치어’, 자란고기를 ‘성어’라 하는 이들이 많다. ‘고기잡이’를 ‘어로작업’, 쳐놓은 고깃그물을 거두는 ‘그물추기·그물올리기’를 양망작업이라 한다.  ‘들풀’, ‘들꽃’, ‘들짐승’을 ‘야생초’, ‘야생화’, ‘야생조수’라 한다. 이러한 우리말과 한자어의 이중 올림말로 우리 사전은 많이 어지럽다.

‘텃새’에 ‘(留鳥. a permanent resident bird)’를 병기하고, ‘길 잃은 새’에 ‘(迷鳥. vagrant)’를 병기해 글을 쓴다. ‘길 잃은 새’를 한 단어로 ‘길잃은새’라 하지 못했다. 국어사전에 없고, 우리말로 음절이 여럿이면 한 단어가 되지 못하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사전에 없는 우리말 학술용어는 사전 편찬인들보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먼저 만들어 써야 사전에 올려질 수 있다. ‘길잃은새’도 그렇다. 참고로 ‘길잃은새’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1992)과 북의 『대사전』(1992) 같이 표제어로 올린 사전도 있었다. 한자 학술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만들어서 쓰게 된 말들이다.

우리말 학술용어는 만들면 안 되는가?
우리는 우리말로 학술용어를 만들면 안 되는가? 우리 지식인들 가운데는 일본 사람이 서양말을 번역한 용어는 그대로 받아쓰면서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우리 학자가 우리말로 번역하거나 지어 쓰면 어색해 하는 이가 많다. 일본이나 중국 학자는 그들 식으로 외국 용어를 번역해 써도 되고, 우리는 우리말 식으로 번역해 쓰면 안 되는 것일까? 그래서, ‘사전’은 ‘말모이’나 ‘말거울’이 되지 못하고, ‘문법’은 ‘말본’이 되지 못했으며, ‘명사·동사’는 ‘이름씨·움직씨’가 되지 못했다. ‘기체’를 ‘김몬’, ‘고체’를 ‘굳몬·얼음몬’, ‘액체’를 ‘묽몬·물몬’, ‘시계’를 ‘때알이’, ‘그녀’를 ‘그미’라 하는 것은 어색하다고 돌아보지도 아니했다.

어느 나라고, 말은 민중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생겨나기도 하며, 또 전문 지식인들이 생각하고 다듬고 지어 쓰게 되는 말들이 있게 마련이다(일본, 중국에서처럼).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위해서는 우리 민중들의 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우리 식으로 말을 다듬고 짓기도 해야 한다(일본, 중국의 지식인들처럼).

우리의 근대 선각자들도 이 문제를 지나치지 않았다. 주시경과 그 제자 김두봉, 최현배는 말본 용어를 우리말로 지었고, 김두봉은 언어학자로서 과학 용어의 일부인 물리학 술어(384개), 수학 술어(108개), 화학 술어(39개) 등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 얼마나 기억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두봉이 지은 과학 용어 몇 개를 보자. “몬결갈[物理學]. 되결갈[化學]. 힘갈[力學]. 몬바탕[物質]. 몬몸[物體]. 낱자리[單位]. 굳몬[固體]. 묽몬[液體]. 피몬[氣體]. 굳됨[凝固]. 김됨[氣化]. 물됨[液化]. 섞됨[中和]. 풀림[溶解]……”(<한글>1권 4호, 1932.9)
우리말 어근을 이용한 뛰어난 조어들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읽으면 그 뜻바탕이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말들이다. 이에 비해 오히려 뜻글자라고 하는 한자로 된 용어는 우리에게 그 뜻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말 어근을 이용한 위와 같은 조어들은 살려 써도 좋을 말인데 억지로 지은 용어라며, 또 당장에 쓰이지 않는 말이라며 외면되고, 사전에도 실리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에서 만들어 쓴 한자 용어들은 받아들여 처음부터 우리 과학계의 공식(?) 용어로 국어사전에 빠짐없이 다뤄온다.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기본 방향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위해서는 학문 활동에서 되도록이면 우리말 용어를 쓰고, 외래 용어는 우리말로 다듬거나 지어 쓰는 일에 뜻을 모아야 한다. 우리말 어휘 부려쓰기(구사)는 그 바탕을 잃고 있다. 국어교육을 한자교육으로 착각하는 교사가 있다. 논설이나 논문에 한자를 많이 섞어 써야 좋은 점수를 주는 교수들도 있다. 언젠가 교육부 관련 소식에 ‘비문해자’가 늘어 ‘문해교육’을 해야 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우리 지식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사자성어를 즐겨 쓰고 한문식 말만들기에 집착하다 보니 ‘글모르는이’, ‘글깨치기교육’ 같은 말은 용어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비문해자’라는 식의 한자 낱말은 만들어도 되고, ‘글모르는이’ 같은 우리 낱말 만들기는 꺼리는 언어 인식에 문제가 있다.
우리말로 학문을 하려면 우리 말법에 맞는 말하기, 글쓰기를 닦아야 한다. 문법에도 맞지 않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표현들은 잘 읽힐 수 없다. 지식인들에게도 국어를 바르게 부려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저기 쏟아내는 전문가·지식인들의 글을 볼 때마다 느끼는 일이다.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위해서는 지식인들의 국어가 바로 서야 한다. 지식인들이 우리말을 아끼고 가꾸는 노력이 있어야 국어가 제대로 살고 우리 정신이 피어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기 높은 사람이 나오면 곧잘 ‘국민’ 인물로 일컫는다. ‘국민가수’, ‘국민배우’, ‘국민타자’ 등이 나왔다. 여기에 더해 우리말로 학문하기로 유명한 ‘국민교수’도 있으면 좋겠다.

 

조재수 겨레말큰사전 상임이사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 수석 편찬원과 편찬위원, 한글 새소식 주간,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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