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8:45 (토)
과거에서 소환한 기억과현재의 교차점 ‘공간’
과거에서 소환한 기억과현재의 교차점 ‘공간’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4.06 15: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의 말, 말, 말_ 코끼리의 방: 현대미술 거장들의 공간|전영백 지음|두성북스|292쪽|26,000원

공간 혹은 장소의 문제는 포스트모던 미학에서 주체의 공감각과 연관된 가장 중요한 화두다. 모더니즘의 미학, 특히 그 주체 중심적 시각 체계를 비판하고 그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공간적 체험이자 장소에 대한 강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더니즘의 주체는 ‘작가’(저자, Author)를 말한다. 이에 비해 포스트모던 주체는 ‘관람자’(독자, Reader)다. 따라서 공간과 장소는 저자에서 관람자로 그 중심축이 옮겨가는 것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공간에 대한 감각, 즉 공간감은 주체(저자) 중심의 미학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오늘날 관람자 주체에게 중요한 것이 기억이다. 공간에 대한 주체의 ‘기억’은 공간에 대한 인식 및 지각과는 다르게, 시간에 따른 개념적 과정을 거친다. 기억이란 언제나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불러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에 소환된 과거가 특정 공간에서 재연될 때 주체가 느끼는 공간 감각이다. 같은 공간에서 겹쳐지는 과거와 현재는 기억의 메커니즘에서 조정되고 종합되는데, 개념미술은 이 부분을 주목한다.

서양 철학에서 공간에 대한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Timaios)』다. 거기에 ‘코라(Chora)’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플라톤은 코라의 본성을 ‘모든 생성의 수용체’, ‘유모’ 혹은 ‘모체(Matrix)’에 비유했다. 데리다가 「플라톤의 약국(Plato’s Pharmacy)」(1968)에서 말했듯이, 장소를 의미하는 코라는 ‘누군가에 의해 점유된 장소’다. 즉 코라는 장소 혹은 공간으로,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과 구별되면서 항상 점유돼 있다. 때문에 단순히 추상적 공간이나 빈 공간 혹은 기하학적 공간이 아니다.

공간은 비록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없는 게 아닌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공간은 기억으로 가득 찬 삶의 창고다. 그것이 가슴 벅찬 행복한 추억이든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고통의 기억이든, 공간은 비어 있지만 동시에 가득 차 있기도 하다. 현재의 자각과 과거의 기억이 만나는 공간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시간의 플랫폼이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 (예술학과·미술사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