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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불안하다
봄은 불안하다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6.04.0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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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김정규 시인

결코 불온하지 않은 불안이다. 아니 불온할 수도 있겠다. 견고했던 길고 긴 겨울을 깨뜨리는 대지의 꿈틀거림은 높은 산마저 불안의 기색을 드러내게 한다. 새벽의 뽀얀 안개가 그것이며 도처의 새싹들이 또한 그 일환이다. 이 불안들은 거대한 압력으로 상승기류를 일으켜 변덕스러운 봄바람을 나지막하게 혹은 거칠게 호명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를 되새기게 해준 건 101세로 대한민국 화단 최고령인 김병기 화백의 개인전 인터뷰 기사였다(<매일경제>, 2016.3.16.). 폴 발레리 詩의 이 한 구절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행로를 바꿔 놓았을까. 이 기사를 읽고 뜬금없이 생각난 것은 임진왜란 등 전쟁통에 불안해진 민심을 위로하기 위해 이지함이 지었다고 알려진 일년 신수 예언서 『토정비결』에 나오는 ‘枯木逢春終見開花’다. 마른 나무가 봄을 맞이하니 끝내 꽃피는 영화를 보리라.

김 화백의 이 불안감은 성공적으로 승화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불안이 파괴적으로 발현된 사건이 우연치 않게 연이어 터졌다. 부모에게 학대를 받다가 살해당한 아이들 이야기 말이다. 인천에서 벌어진 11세 아이 학대사건을 계기로 전국 교육청이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하면서 확인된 결과다. 청주에서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엄마에 의해 살해당해 암매장된 4세 아이도 있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아동 학대는 친부 친모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76%에 달했고, 신고 건수는 2011년에 1만146건이었는데 2015년에는 1만9천209건으로 5년 사이에 90%나 급증했다.

이런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많다. 그 중 레나타 살레츨이 『불안들』(박광호 옮김, 후마니타스, 2015)이라는 책에서 주장한 내용을 살펴보자. 범죄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구하는 그녀는 이 책에서, 탈근대적 주체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를 ‘불안’에 대한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을 빌려다가 설명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전쟁, 테러, 바이러스, 자연재해 등 각종 공포의 대상을 스크린에 펼쳐 놓으며 우리의 불안을 이용하고 있다. 제약회사는 각종 불안 증상을 치료해 준다는 특효약들을 광고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패닉상태에 빠진 우리 사회의 이면과 불안한 우리 마음에 대해 누구에게 그리고 무엇에 책임이 있는지 묻는다. 불안은 권위가 부재하기 때문인가 과도하기 때문인가? 미디어는 불안을 보도하는가 만들어 내는가? 약은 불안의 치료제인가 원인인가? 진정한 내 모습을 찾지 못해 불안해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처럼 되지 못해 그런가? 불안은 정말로 행복을 가로막는 궁극의 장애물인가?

특히 5장과 6장에서 모성과 부성의 불안에 대해 다룬다. 5장에서는 자녀 다섯을 욕조에 빠뜨려 익사시키고도 교도소 의사에게 아이들의 죽음이 그들이 아닌 자신에 대해 벌을 내린 것이며 어머니로서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푼 것이라고 말한 앤드리아 예이츠의 사례를 들어, 신경증적인 어머니와 정신병적 어머니가 양육에 대해 느끼는 불안의 차이를 보여 준다. 분만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와 연관 짓는 정신의학 이론에 의지해, 이른바 ‘편집증적 양육’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문화에서 어머니가 특히 새로운 상징적 역할에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고 양육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왜 느끼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자신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온갖 양육서들을 탐독하는 것, 즉 ‘대타자’에 신경을 쓰는 게 전자라면, 후자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대타자에 무지하고 법 테두리 밖에 있으면서 사회적 금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정신병적 주체에게 실재는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목소리나 응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새 남친에게 ‘진짜 여성성’(결여)을 드러내기 위해 자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소유물을 포기하는) 이혼녀 등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최근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 ‘알파고’(AI)는 진화할 것이다. 지적 인공체인 ‘안드로이드’는 이미 여러 SF영화에서 형상화된 바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블레이드 러너」를 거쳐 「바이센테니얼맨」에서는 불멸의 로봇이 드디어 인간이 된다. 인공지능이 웬만한 스트레이트 기사는 이미 쓰고 있고, 시나 소설도 쓰게 될 거라고 한다. 설교하는 인공지능에 인간 신자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벌써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하나의 불안이 시작됐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우주조차도 그러하다. 따라서 변화무쌍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불안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 불안을 패륜의 부모처럼 표출할 게 아니라 101세의 노 화백처럼 창조적으로 사용할 일이다.

『불안들』에서 불안을 없애려는 과도한 시도가 오히려 더 불안을 초래한다고 결론을 내린 레나타 살레츨의 주장에 동의한다. 햇살이 뿌려 놓은 금싸라기 같은 개나리를 볼 수 있는 오늘은, 이렇게 마음먹고 싶다. “꽃이 핀다. 잘 살아야 한다.”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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