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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천문·언어학 등 다방면의 성과 깃든 ‘세종학’ 깊이 보자
음악·천문·언어학 등 다방면의 성과 깃든 ‘세종학’ 깊이 보자
  • 교수신문
  • 승인 2016.03.30 16: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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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시대, ‘세종학’을 제안한다
▲ 훈민정음과 이를 해설한 해례본. 1446년(세종 28년)에 정인지 등의 집현전 학자들이 세종의 명에 따라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 해설서다.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며, 국보 제70호로 지정돼 있다.

학자들조차 世宗을 위대한 임금으로는 기억하지만 위대한 학자나 사상가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필자는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문자가 당대 최고 수준의 학문이나 사상 배경 없이 창제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때서야 훈민정음을 진짜 세종이 혼자서 창제한 것인가부터 세종의 학문 수준이 어느 정도였냐는 등에 대해 되묻곤 한다. 어찌 보면 세종학은 세종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깨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람들은 훈민정음을 세종이 혼자 창제했다는 사실보다 사대부들과 함께 창제했다는 공동 창제설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식(?)인데도 오히려 비상식을 더 신뢰하곤 한다. 세종이 단독 창제했다는 많은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설마 그러한 문자를 혼자 만들었을 리가 있겠느냐고 세종을 영웅시하지 말라며 어설픈 민중사관을 들이댄다. 그 당시 사대부들에게는 한자 이외 문자를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라서다. 세종은 10여년 이상을 비밀리에 연구한 끝에 1443년 12월에 기본 문자 28자를 공표하고 이 문자를 통해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소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중국이 천 년 이상 고민해온 한자음을 정확히 적는 것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두 달쯤 뒤에 올라오는 최만리 외 6인의 훈민정음 반포 반대 상소에서조차 훈민정음의 그러한 놀라운 기능이 ‘신묘’하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결국 세종은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 등 8명의 사대부 학자들을 끌어들여 새 문자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어 1446년에 간행 반포한다. 이 책이 세종 외 8인의 공저이다 보니 공동 창제설이 널리 퍼졌다. 그들이 세종이 시켜서 해설서 공동 집필에 참여했음을 기록으로 남겼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필자가 나름대로 생각한 새로운 논리가 있다.
그건 이 여덟 명조차 개인적으로는 한글 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머리로는 훈민정음이 위대한 문자임을 받아들이되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필자는 더 충격적인 논리를 들이댄다. 한글 반포 300년쯤 뒤의 박제가(1750~ 1815), 박지원(1737~1805), 정약용(1762~1836)과 같은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들조차 한글 사용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깜짝 놀라곤 한다. 결국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한자 이외 문자를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며 훈민정음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그 신묘한 기능을 인정하되 학문이나 공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이 망할 때까지 철저히 이류 문자로 묶어 뒀다.

▲ 훈민정음 해례본을 번역하고 주석을 단 언해문 서문 ⓒ 김영조

필자는 이러한 시대적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조선시대 언문의 제도적 사용 연구』,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 『조선시대의 훈민정음 발달사』라는 세 권의 학술서를 저술했지만 세종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새롭게 도입한 설득 논리가 현재 인류 역사상 최고 인기 있는 학자인 소쉬르, 촘스키, 들뢰즈와 세종을 비교하는 일이다. 소쉬르는 『일반 언어학강의』를 통해 근대언어학과 탈근대 학문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소쉬르의 구조주의적, 보편적 언어관을 발전시킨 이가 촘스키이며 소쉬르의 탈구조의적 언어관을 발전시킨 이가 들뢰즈다. 소쉬르와 촘스키, 들뢰즈를 싸안으면서도 이들을 뛰어넘은 사상가가 세종이다. 필자는 십여 년간 세 사람을 연구한 끝에 뒤늦게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났고 또 이 책을 십여 년 연구한 끝에 그런 확신을 얻게 됐다.
사실 소쉬르가 기가 막힌 이분법으로 설명한, 체계적·보편적인 랑그 속성과 맥락에 따라 개별적이고 다름을 보여주는 파롤적 속성인 언어의 양면적 속성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훈민정음과 같은 과학적인 문자 창제는 불가능하다.

해례본은 언어학서가 아니라 융복합 학문으로 접근해야만 이해가 가능한 책이다. 국어국문학과에서만 가르쳐서는 안 되는, 학제적 연구와 통합 교육 차원에서 필요한 책이다. 세종학은 결국 세종이라는 인물 연구뿐 아니라 세종이 이룩한 다양한 업적과 사상을 연구하는 학제적, 통섭적 학문 분야다.
훈민정음 문자에 대한 편견과 해례본을 통해 세종학의 필요성과 큰 흐름을 얘기했지만 사실 세종의 업적은 54세에 운명하기 4년 전인 50세에 반포한, 생애와 통치 막바지 업적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22세에 왕위에 올라 음악학, 천문학, 철학, 성운학 등 온갖 학문 연구를 바탕으로 해례본을 저술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의학, 농업학 등 다양한 학문과 업적을 함께 조명하기 위해서라도 세종학이 필요하다. 
다행히 유럽 사회언어학회장을 지낸 마가렛 토마스는 2011년에 펴낸 『Fifty Key Thinkers on Language and Linguistics』라는 책에서 세종을 언어와 언어학에 관한 50대 사상가 반열에 올려놓은 바 있다. 이제는 세종융합학회가 필요한 때다. 세종학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제대로 된 국제 학회와 연구소가 있어야 하고 대학원도 세종학 전공을 만들어야 한다.

 

김슬옹 인하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국어학
필자는 상명대에서 훈민정음 발달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동국대에서 맥락 연구로 국어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말글 관련 저서를 51권(공저 28권)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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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2016-05-06 15:01:58
최만리 외 6인의 훈민정음 반포 반대 상소문에서 핵심적인 반대 이유는 신라 설총이 집대성하여 9경을 이두로 번역하여 훈해하였고 조선시대 초기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법전인 "원육전"을 이두로 작성하여 관청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종은 기존에 사용하던 한글인 이두를 버리고 따로 문법에 맞지도 않는 조잡한 언문을 만들어 시행하려는 것은 비유하자면, 진기한 약재인 소합향(蘇合香)을 버리고 풍뎅이가 굴려 만든 똥 덩어리인 당랑환(螗螂丸)을 취하려는 것이라며 가혹한 비평을 하며 결사반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