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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국가의 현대적 시사점은 ‘德治’다
유교국가의 현대적 시사점은 ‘德治’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3.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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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_ 4강. 이상익 부산교대 교수의 ‘유교 윤리와 국가’
▲ 조선왕조의 성리학적 이념은 건축물에도 투영돼 있다. 창덕궁 인정전은 국왕의 덕치를 강조하고 그 중추를 ‘인’에 뒀음을 짐작하게 한다.

‘문화의 안과 밖’ 시즌3의 1섹션은 ‘국가와 윤리’다. 이미 ‘윤리와 인간의 삶’(김우창), ‘희랍 고전시대의 국가와 윤리’(박성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주경철) 등의 강연이 진행됐다. 지난 26일(토) 진행된 4강은 동양철학을 전공한 이상익 부산교대 교수(윤리교육과)가 ‘유교 윤리와 국가: 유교의 국가론과 통치 윤리’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이 교수는 성균관대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육군사관학교 교수, 영산대 교수를 거쳐 현재 부산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로 있다. 주로 중국과 한국의 윤리사상을 강의하고 있으며, 주요 관심 분야는 주자학(성리학)의 인성이론과 사회·정치사상이다.
저서로는 『인권과 인륜』, 『영남성리학연구』, 『사람의 길, 문명의 꿈』, 『유교전통과 자유민주주의』, 『유가 사회철학 연구』, 『역사철학과 역학사상』 등이 있다.
이날 진행된 강연에서 이 교수가 던진 질문은 한 마디로 ‘유교적 국가론이 오늘의 정치에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일까’로 요약된다. 이 질문을 놓고 그는 유교 국가의 기원, 통치 윤리, 현재적 시사점을 정리했다.

이 교수는 유교 국가의 기원과 관련 “일반 백성들이 자연 상태로서는 혼란을 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늘이 총명한 사람을 군주와 스승으로 삼아 백성을 올바로 가르치고 다스리게 했다”라고 지적하면서, 유교의 국가론은 바로 이 자연 상태의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을 천명사상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통 유교에서는 ‘民心이 곧 天心’으로 사실상 ‘백성이 곧 주권자’라는 관념이 성립하게 된다고 설명하면서 “고대 천명 사상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차츰 민심론으로 대체 됐다”고 읽어냈다.
이 교수는 이 대목에서 통치자와 백성이 감응하는 정치를 강조했다. 알려진 것처럼 유교에서는 이상적인 통치를 ‘왕도정치’ 또는 ‘仁政’으로 불렀다. 이는 “인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자유와 풍요를 누리게 되면, 젊은이들은 여가시간에 효제충신을 닦아서 어른을 공경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 교수는 이를 가리켜 “유교에서의 인정은 한마디로 ‘통치자와 백성이 서로 感應하는 정치’”라고 설명을 보탰다.
그렇다면 유교의 통치 윤리는 무엇일까. 修己治人論과 正名, 德治에 주목한 이 교수는 “통치자가 덕을 쌓고 실천하면, 나라가 저절로 다스려진다는 것으로서, 수기치인론 자체가 곧 덕치론이었던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쯤에서 이 교수가 제시한 ‘현재적 시사점’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원인으로 ‘도덕성의 결여’를 강조한 것, 나아가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의 환골탈태가 중요한 바 유교의 수기치인론에서 그 원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 부분에서 쉽게 확인된다.

조금 익숙한 목소리이지만 이 교수 역시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정치’에 방점을 쳤다. 유교에서의 정치의 일차적 과제가 ‘養民’에 있음을 주목한 지적인 셈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정치가의 본분은 일차적으로 ‘爲民과 民本’에 있으니 자신의 본분을 각성해 민생을 돌보고 고락을 같이 해야 한다”라고 이 교수가 말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의 강연에서 눈길 끈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인권’뿐만 아니라 ‘인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환기했다는 사실이다. ‘사람다움’의 의미에 주목한 그는 “오늘날의 정치에서는 경제발전이나 인권만 강조하고 인륜을 외면한다”고 비판한 뒤, 인륜은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라고 강조하면서 “인권과 인륜의 상함성과 상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양자를 함께 추구해야 인륜을 통한 ‘사람다움’을 실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유교 질서로부터 ‘성숙한 자유’의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이다. “자연의 이법을 계승해 인간의 규범체계를 정립하는 ‘계천입극론’과 ‘성숙한 자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무해원칙과 공평원칙’에 자연의 이법으로부터 도출된 ‘조화와 균형, 절제와 희망’이라는 원칙을 가미한다면, 우리는 ‘보다 성숙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즌3 윤리 강연의 1섹션은 오는 2일 5강 ‘국가의 현실, 개인의 현실’(최장집)으로 끝나고, 이어 제2섹션 ‘정치의 목표와 전략’이 이어진다. 제2섹션은 6강 ‘국가주의와 기억의 장치’(임지현), 7강 ‘제도, 국가, 민족’(이삼성), 8강 ‘정치와 정치 전략’(박명림), 9강 ‘법치와 덕치’(이승환)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상익 교수 강연 요약문(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국가의 기원
유교의 국가론은 ‘天命 사상’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늘’에 대한 유교의 이해는 큰 변화를 겪었다. ‘천명사상’에 대한 해석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요컨대 先秦儒敎에서는 자연 상태의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을 天命論에서 찾았다. 정치의 영역에서 천명론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다. 하나는 ‘특정한 인물이 천명을 받았다’는 관념으로 그의 통치권을 정당화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통치자에게 ‘천명의 위탁 사항을 올바로 실천하라’는 의무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朱子는 선진 유학의 이러한 관념들을 계승하면서도 ‘繼天立極’이라는 새로운 관념을 제시했다. 그런데 천명론에서 말하는 ‘하늘’과 계천입극론에서 말하는 ‘하늘’은 성격이 다르다.
천명론에서 말하는 하늘은 ‘이 세계의 인격적 주재자’를 뜻하는 반면, 계천입극론에서 말하는 하늘은 ‘우주와 자연의 理法’ 또는 ‘이 세계의 존재 원리’를 뜻한다. 주자학의 전반적인 논조는 분명 계천입극론으로 옮겨간 것이다. 욕망을 지니고 있음은 인간의 이기적 본능에 해당하고, 혼란을 싫어함은 도덕적 본성에 해당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교는 국가를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고 혼란을 억제하기 위한 기구라고 인식했다.

유교의 주권론: 天命과 民心
전통적으로 유가는 ‘국가의 주권은 하늘 또는 백성에 있는 것이요, 결코 군주에게 있지 않다’고 설명해왔다. 요컨대 전통 유교사상에서 군주는 통치권자에 불과했던 것이요, 결코 주권자가 못됐던 것이다. 유교의 천명사상은 그 자체가 곧 ‘하늘이 국가의 주권자’라는 관념을 담고 있다.
문제는 하늘의 ‘명령’ 또는 ‘뜻’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전통 유교에서는 ‘민심이 곧 천심’이라고 주장하게 됐는데, 이로부터 사실상 백성이 곧 주권자라는 관념이 성립하게 됐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군주는 가벼운 존재라고 규정했다. 또 민심의 지지를 얻어야만 군주가 될 수 있다고 했으니, 바로 주권자는 군주가 아니라 백성이라는 주장일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사실은, 민심이 천명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등장하면서 동시에 민심에 대한 회의도 싹트게 됐다는 점이다. 宋代에는 마침내 ‘公論’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됐다. 공론이란 간단히 말해 ‘민심 가운데 그 정당성이 확인된 것’이다. 요컨대 ‘민심 가운데 천리와 부합되는 것’, 다시 말해 ‘민심 가운데 편파적인 부분을 제외한 것’이 바로 공론이다. 유교에서는 공론은 ‘자유롭고 공개적인 논의(언론의 자유)’를 통해서 정립된다고 봤다.

유교의 통치론: 王道와 仁政
유교에서는 통치자의 책무를 養民과 敎民으로 설정했다. ‘양민’이란 백성의 생업을 보장해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것이며, ‘교민’이란 백성에게 인륜을 교육해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양민과 교민 가운데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양민이요,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교민이라고 봤다. 양민이 교민보다 우선하는 까닭은, 맹자의 말대로 恒産이 없으면 恒心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백성의 생업을 보장한 다음의 과제는 인륜을 교육하는 것이다. 의식주의 충족만으로는 ‘사람의 사람다움’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사람다움의 근거는 인륜에 있다는 것이 유교의 지론이었다.
유교에서는 이상적인 통치를 ‘왕도정치’라고도 했고 ‘仁政’이라고도 했다. 맹자는 인정의 핵심을 ‘형벌을 줄이고 세금을 가볍게 함’으로 설명했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정은 한마디로 ‘통치자와 백성이 서로 감응하는 정치’라 할 수 있다. 통치자와 백성 사이의 감응은 정서적 차원에서도 이뤄질 수 있고, 도덕적 차원에서 이뤄질 수도 있다.

유교의 통치 윤리: 正名과 德治
유가의 통치윤리는 『대학』의 修己治人論, 즉 ‘삼강령과 팔조목’으로 대변된다. 삼강령을 살펴보면 ‘명덕을 밝힘(明明德),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 親民), 지극한 선에 머묾(止於至善)’이다. 통치자는 먼저 자신의 명덕을 밝히고, 이를 미뤄나가 백성들을 새롭게 진작시키며, 마침내는 지극한 선의 경지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팔조목은 삼강령을 실천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것으로서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다. ‘격물, 치지’는 ‘이 세계의 객관적 理法을 탐구하자’는 것이며, ‘성의, 정심’은 ‘자신의 주관적 의지를 순화하자’는 것이다.
수기치인론과 함께 유교의 통치윤리로서 흔히 거론되는 것이 ‘정명과 덕치’다. 정명이란 ‘명분을 바로잡는다’는 말로서,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름(名)에 따르는 몫(分)을 제대로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덕치란 금령과 형벌에 앞서서 ‘덕으로 다스린다’는 말로, 공자는 법치의 근원적 한계를 설파하면서 덕치를 옹호했다.

유교적 국가론의 시사점
유교적 국가론이 오늘날 우리 한국의 정치에 시사하는 점들을 정리해 보기로 하자. 첫째, 정치인들이 솔선수범하는 정치다. 유교에서는 법치는 피상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라며, 법치를 폄하하고 덕치를 옹호했다. 오늘날 민주국가·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의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극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불신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까닭은 ‘도덕성의 결여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적인 수기치인론으로부터 원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다.
둘째, 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 백성과 고락을 함께 하는 정치이다. 유교에서는 정치의 일차적 과제를 ‘養民’이라 했고, ‘民生을 돌보는 정치’를 ‘백성을 위하는 정치’ 또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정치’라 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본분을 각성해 민생을 돌보고 고락을 같이 할 때, 자연스럽게 백성의 신뢰도 회복하고, 백성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 가족 주도의 복지제도다. 유교에서는 ‘항산의 보장’을 통해 모든 가족이 스스로의 복지를 책임지게 하고, 鰥寡孤獨과 廢疾者 등에 대해서만 국가가 복지를 지원하라고 했다. 이러한 가족주도 복지 모델은 오늘날의 개인책임 모델이나 사회책임 모델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족주도 모델의 근본적 의의는 가족은 이기적 본능과 도덕적 본성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넷째, 인륜을 통한 ‘사람다움’의 실현이다. 유교에서는 인륜을 ‘사람다움의 보루’요,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라고 본다. 그런데 오늘날의 정치에서는 경제발전이나 인권만 강조하고, 인륜을 외면한다. 흔히 말하듯이, ‘인권’이란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에 누려야 하는 권리’요, ‘인륜’은 ‘인간이 존엄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도리’이다. 이제 우리는 인권과 인륜의 상함성과 상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양자를 함께 추구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계천입극론과 ‘성숙한 자유’다. 계천입극이란 자연의 이법을 계승해 인간의 규범체계를 정립한다는 뜻이었다. 자연의 이법은 우리에게 ‘조화와 균형, 절제와 희망’이라는 삶의 자세를 권한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설파한 ‘무해원칙과 공평원칙’에 자연의 이법으로부터 도출된 ‘조화와 균형, 절제와 희망’이라는 원칙을 가미한다면, 우리는 ‘보다 성숙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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