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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발전론·식민사학 뛰어넘을 새로운 ‘지평’ 필요”
“내재적 발전론·식민사학 뛰어넘을 새로운 ‘지평’ 필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3.30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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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연구회 <역사와 현실> 100호 기념 기획발표회 ‘한국 역사학의 위기: 진단과 모색’

한국역사연구회 편집위원회가 마련한 이번 기획발표회는 각각 기획 의도를 반영한 논문들로 구성됐다. 제1발표 「최근 한국상고사 논쟁의 본질과 그 대응」(송호정, 한국교원대), 제2발표 「‘내재적 발전론’ 이후에 대한 몇 가지 고민」(최종석, 동덕여대), 제3발표 「역사 대중화와 역사학―역사의 향유와 모독 사이」(오항녕, 전주대), 제4발표 「19C 말~20C 초 동아시아 세력 재편기 경험의 산출과 미래읽기-중립화론을 통해 본 ‘균형외교’의 허상」(신주백, 연세대), 제5발표 「한국근현대사 연구 위기의 심층-정치의 위기인가, 역사학의 위기인가?」(이신철, 성균관대)에서 알 수 있듯 ‘한국상고사 논쟁’, ‘내재적 발전론 이후’, ‘역사 대중화’, ‘균형외교’, ‘역사 연구의 위기’ 등을 키워드로 삼았다.
흔히 그렇듯 ‘위기’와 맞서 이를 돌파하려는 자리에는 응당 ‘성찰’이란 비장의 무기가 동원되기 마련이다. 이 경우 성찰은 ‘역사학 내부’를 응시하는 시선일 것이다. 이러한 성찰이 결여된 자리라면 이것은 진정성이 없는, 타자 비판으로 이어지는 동시에 동어반복된 담론의 제자리걸음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학계가 자신의 안팎에서 자라난 ‘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 논의를 어떤 방향으로 심화하고 있는지 전체를 조명하기 위해 이날 발표 논문들 가운데 ‘내재적 발전론’, ‘역사 연구의 위기’와 관련된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내재적 발전론’ 이후에 대한 몇 가지 고민」(최종석, 동덕여대)
내재적 발전론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듯싶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내재적 발전론은 역사 이론 내지 방법론으로 보기 어렵고 내재적 발전을 지향하는 관점과 태도에 해당한다. 내재적 발전론이 내재적 발전을 지향하는 관점과 태도라고 한다면, 이것은 한국의 역사를 대상으로 질서 내지 구성을 만들어내는 작업과 다소 무관하다. 이 사실은 내재적 발전론을 토대로 연구를 해 온 동안 어떠한 질서 내지 구성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연히 한국의 역사를 대상으로 한 질서 내지 구성은 있었는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극복 대상이었던 식민사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즉 ‘네이션’을 역사 주체로 놓고 현재(근대)의 가치를 기준으로 해서 마련된 자율/타율, 발전/정체의 개념을 무엇보다 중시하면서 ‘네이션’의 일원적인 역사발전 트랙에서의 단계적 경과를 포착하고자 한 방식이―식민사학에서도 구사된 방식― 전제되고 있었다. 결국 내재적 발전론에 있어서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는 기왕의 것이 무의식적으로 활용됐고 내재적 발전을 지향하는 관점과 태도가 중시됐다. 그렇게 되면서 내재적 발전론의 세계에서는 지적 고민 내지 역량보다는 지적 태도 내지 이에 부합하는 성과가 중시됐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활로 모색의 차원에서 한국사학계의 학문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구성력’ 면에서 비약적인 도약이 필요하다. 식민사학·내재적 발전론이 구성해 온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면서도 설득력 있게 ‘한국사’를 구성하고자 하는 각종 고민과 모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론, 안목, 문제의식, 방법론 면에서의 진전이 수반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바다.

한국사학계의 학문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익숙하게 여겨져 왔던 것들을 낯설게 만들 수 있는 지적 역량의 강화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연구자가 살아가는 시대와 그 시대의 인식체계를 상대화, 역사화할 수 있는 지적 역량이, 연구자가 탐색하고자 하는 시대를 역사화하고 낯설게 만드는 지적 역량이 구비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어떠한 지적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낯설게 만들고 나서 손을 놓는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감각에서는 낯설게 보이는 것이 그 시대에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으로 작용할 수 있게 하는 당대의 맥락을 포착하고자 고심해야 할 것이다. 이 시도는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가 자신을 감싼 에피스테메에서 빠져 나와 이질적인 에피스테메에 다가서는 고난도의 지적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어려운 만큼 보상은 크지 않을까, 학문적 역량 강화의 측면에서 말이다.

 

「한국근현대사 연구 위기의 심층-정치의 위기인가, 역사학의 위기인가?」(이신철, 성균관대)
2015년 국정화 논쟁은 비록 정치화된 진영논리에 갇혀 충분한 학술적 논의로 발전되지 못했지만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에 수많은 본질적 과제를 안겨줬다. 2000년대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계기로 활성화되던 학계 내부의 다양한 논쟁과 시도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국가권력이 개입한 정치화된 역사논쟁이 시작되면서 중단되다시피 했다. 역사교육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려는 시도가 학술적 위기마저 불러일으킨 것이다. 또한 그러한 과도한 정치화는 2000년 초반에 포스트모더니즘적 인식과 혼재돼 있던 뉴라이트적 역사인식(한국근현대사를 자본주의 발달사로 인식하고 그 ‘승리’의 역사를 새로운 절대가치로 삼아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수립하려는 시도)의 정치적 본색을 드러내게 했다. 그 같은 과도한 정치화는 국정화 결정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하고 역사학계 전반을 적대시하고 안보논리로 불온시해 연구자들의 입마저 막아버리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국정화 반대론자들조차 진영논리에 빠져 본질적인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다시 문제는 학술적인 규명만이 역사교육의 정치화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그 같은 결론에서 학계에 주어진 과제는 먼저 한국 근현대사를 더욱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인식틀의 마련이다. 반식민주의와 민족주의, 민중사학적 역사인식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화시킬 평화와 인권과 같은 새로운 가치에 입각한 역사인식과 서술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임시정부 법통론과 건국시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분법이 가지는 문제 등 다양한 과제들에 대한 본질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들 과제와 관련해서 현재의 시점에서는 보수 진보의 진영을 떠나 논리구조가 뒤틀리고 왜곡돼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과제는 역시 국가권력의 직접개입에 의한 역사교육의 정치화를 막아낼 수 있는 독립적 구조를 어떻게 마련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다. 이 문제는 사회의 민주화 정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문제이지만, 당장의 민주화 역행을 직접적으로 막아낼 수 없다면, 그것을 돌파하는 시작은 과도화된 정치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학술적 논의구조의 확립만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에서 칸막이 없는 역사학, 분과학문의 벽을 넘는 역사학, 시기구분의 벽을 넘는 역사학의 모습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더불어 국가의 제도 안에 묶여 있는 연구자들의 삶의 물적 토대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지에 대한 전방위적인 고민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역사학은 국가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것을 분리할 수 없다는 개입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지만, 과도하게 정치화된 역사논쟁 속에서 제출된 많은 학술적 과제들에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것만이 바로 그러한 정치적 개입의 길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연구자들을 감싸고 있는 학술외적인 정치적 억압이 사라질 수 있는 역사교육의 독립과 중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조차도 학술적 접근만이 실현 가능성을 열어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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