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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일상이 된 공부 … ‘네 번째 박사학위’는 가능할까?
멈추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일상이 된 공부 … ‘네 번째 박사학위’는 가능할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3.22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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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에도 공부 멈추지 않는 김영태 전남대 명예교수

그는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말 대신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다’는말을 내놨다. 정년 이후의 삶은 반드시 의욕과 계획대로 진행되진 않는다.
조건과 상황이 뒷받침 돼야 한다.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
그런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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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조남재 한양대 교수(경영학부)가 진행한 「한국연구재단의 우수원로연구자지원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교수 77.5%가 “정년 후에도 전공 분야와 관련한 학술활동을 계속할 의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56.6%는 “다른 전공분야에 대해 배우거나 학술활동을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 국내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 5천300명이 응답한 결과다. 그러니까 이 연구는 결국 ‘학자에게 퇴임은 있어도 은퇴는 없다’는 말을 증명한 셈이다.
전남대에서 2009년 8월 정년퇴임한 김영태 명예교수(71세, 사진)에겐 이 말이 꼭 맞다. 일찍이 전북대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1989)를 받은 그는 전남대 사범대학 윤리교육과에서 가르치면서 틈틈이 공부해 서울대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1997)를 취득했다. 정년을 2년 앞둔 2007년 9월, 김 명예교수는 이번엔 ‘신학’에 눈을 돌려 성공회대 신학전문대학원 공부 길에 나섰다. 그리고 지난 2월 18일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퇴임 7년차인 그는 요즘 2주에 한 번씩 무등산을 오르고 있다. 그의 건강비결이기도 하다. 하루 3~4시간은 어김없이 책을 펼쳐 공부하고 있는 그는 매일 1시간씩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영어성경 강좌에 참가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적게는 2회, 많게는 5회 정도 외부 강의가 잡혀 있다. 또 그의 일정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그룹스터디다. 김 명예교수는 매주 화요일 7~8명이 모여 영어 원서로 된 심리학, 종교철학 관련 그룹 공부를 계속해오고 있다. 세 시간가량 진행되는 이 그룹스터디에서 김 교수는 종교철학을 맡고 있다. 매주 토요일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서양철학사(원전) 독해 모임을 이끌기도 한다.
그의 지적 관심은 종교와 도덕, 악의 문제에 걸쳐 있었다. 그가 윤리학을 비롯해 종교학, 신학 박사공부를 계속한 이유도 이와 관련된다. 구체적으로는 칸트와 도덕종교론, 퀘이커 신비주의, 실용주의에 그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이런 토양 위에서 김 교수는 2011년부터 함석헌에 좀 더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16년 2월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제출한 논문도 「함석헌의 종교사상과 그의 영성적 삶에 대한 종교-신학적 연구」(지도교수 권진관)였다.

함석헌 사상을 두고 “함석헌의 철학사상은 철저하게 합리성을 추구하지만 순 형이상학이나 현학적 인식론보다는 실질적인 가치론 및 삶의 철학(실존철학 혹은 생철학)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한 그의 지치지 않는 지적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김 명예교수는 퇴임 직전 <교수신문>에 정년 이후 계획을 살짝 소개한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퇴임 이후에도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계획대로 그는 정년퇴임 후 곧바로 20평정도 되는 사무실을 세 내어 연구실과 집 서재에 있던 장서 가운데 6천여 권을 옮겨다 놓고 새로운 둥지를 텄다. 그의 말대로 이 사무실은 ‘공부도 하고 지인들과 담소도 나누는’ 사랑방이다.

사실 그는 ‘서양사상’에 오래 머물렀던 학자였다. 그런 그가 ‘함석헌’을 조명해 박사학위를 한 것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종교적 존재인 듯하다. 나는 윤리문제와 종교문제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기울여왔는데,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구체적으로 신학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그래서 종교적·신학적으로 잘 살다 가신 함석헌 선생의 삶에 주목하게 됐다.” 그는 말을 아꼈지만, 이 대답 속에는 동서 사상의 융합이 깔려 있다. 그는 이번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함석헌의 사상은 얼핏 보면 원만한 종합의 사상처럼 보이지만 그의 사상에는 치열하고 격렬한 저항정신이 깔려 있고 변화와 모순을 포착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함석헌의 사상이 포용성과 종교적 깊이를 지녔으면서도 역사와 사회에 대한 투철한 책임의식과 비판정신을 지닌 것은 동양정신과 서양정신이 만난 결과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인 혼으로 서양사상과 기독교정신을 소화해 낸 함석헌의 사상은 분명히 한국 사상사의 맥락을 잇고 있다. 왜냐하면 원효, 최치원, 최제우처럼 회통, 묘합, 융합적 사유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로 본다면, 그가 단순히 윤리-종교-신학 공부의 연장선에서 함석헌을 응시한 것은 아닌 듯하다. 정년퇴임 이후 지적 관심 속에서 형성된 ‘동양 사상’에 대한 탐구 욕망은, 그간 강단에서 학자로 연구하고 강의해온 知의 실행에 대한 모종의 자기 성찰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서양 윤리학, 서양종교철학,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집중해왔다. 그건 동양철학, 한국철학을 거의 도외시했다는 말과도 같다. 이제 동양사상과 한국철학을 다시 공부한다는 것은 힘들 것 같아서 서양과 동양을 아우름과 동시에 그 사상들을 실천적으로 살아낸 사상가에 주목하고 싶었다. 그래서 함석헌을 들여다보게 됐고, 그를 나의 역할 모델로 삼고 싶었다.” ‘함석헌’이 그의 삶에 어떤 형태로 ‘역할 모델’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오랜 시간 서양사상의 밭을 갈던 한 학자가 늦은 나이에 모국어로 사상의 길을 개척한 문제적 인물에 주목한 것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이로 일흔 둘.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젊다. 요즘 학계 일각에서는 교수 정년제를 재고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일고 있다. 젊은 지식과 성숙한 지혜의 조화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김 교수도 이런 정년제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정년 후에도 6년간 「종교와 이해」라는 교양과목(주 3시간)을 강의해왔는데, 1년 전 자의반 타의반으로 중단됐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나로서는 굉장히 아쉬웠다. 열정과 힘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더 할 수 있었는데 정년이라는 제도와 그 뒤 몇 년의 강의 기회의 예우라는 조건이 나로 하여금 한계를 느끼게 만들었다”라고 말하는 그는 “일률적으로 노교수들을 밀어낼 것이 아니라 개인차를 고려해 융통성 있게 명예교수들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정년을 앞둔 후배 교수들에게도 그들의 지혜와 지식이 계속해서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와 장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세 번째 박사학위’에서 멈출까. ‘윤리학-종교학-신학에 이어 더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지나치게 인문학만 매달려 왔기 때문에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따라서 사회과학으로서는 정치철학과 자연과학으로서는 생물학을 좀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다.” 그는 ‘더 공부하고 싶다’라는 말 대신에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다’라고 우회적으로 말을 내놨다. 정년 이후의 삶은 반드시 의욕과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러려면 조건과 상황이 뒷받침 돼야 한다.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 그런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지만 김 교수는 어쩌면 정치철학과 생물학 공부에까지 원대한 지적 장정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의 중심이 ‘공부’에 맞춰져 있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체력과 의지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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