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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영남’ 강세 … 외국어·취업 연계 ‘선정률’ 높였다
‘수도권·영남’ 강세 … 외국어·취업 연계 ‘선정률’ 높였다
  • 이재 기자
  • 승인 2016.03.21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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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코어사업 선정대학 16곳 보니

선정대학 15곳에 ‘외국어 학과’ 포함
지역학 개념 포괄할 교과목 설계 과제

‘코어사업(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은 ‘위기의 인문학’을 구제할 수 있을까? 지난해 기본계획이 발표된 뒤 2개월여 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교육부 코어사업 선정이 마무리되면서 관심은 이 사업이 대학의 인문학에 미칠 영향으로 쏠리고 있다.

교육부는 17일 대학의 인문분야 교육프로그램에 재정을 지원하는 코어사업 선정대학 16곳을 발표했다. 수도권에서 서울대와 고려대, 성균관대 등 유명대학 7곳이 선정됐고 지방에서는 경북대와 부경대, 전남대, 전북대, 충북대 등 국립대 5곳이 포함된 9곳이 선정됐다.

선정된 대학 16곳을 살펴보면, 국립대의 선전이 눈에 띈다. 1곳 가운데 서울대(수도권)를 비롯해 경북대, 부경대, 전남대, 전북대, 충북대(이상 지방) 등 지역거점대학 5곳이 포함돼 37.5%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서울대는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초점을 맞춘 사업계획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는 기초학문심화모델과 대학자체모델로 사업에 지원해 고려대와 함께 최고액인 37억원을 배정 받았다.

지역분포를 보면 수도권과 영남지역에 선정대학이 몰렸다. 경북과 경남, 대구, 부산에서 경북대, 계명대, 동아대, 부경대, 부산외대 등 5곳이 선정됐다. 반면 호남권에선 전남대와 전북대 단 두곳이 이름을 올렸다. 충북에선 충북대가 선정됐지만 충남과 강원에선 한 곳도 선정되지 못했다. 제주 역시 코어사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평가·선정을 도맡은 한국연구재단 측은 ‘지역쏠림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박재간 한국연구재단 팀장은 “인문학과 분포 자체가 수도권과 지방 비율이 4.5대5.5 수준이다. 수도권이나 특정 지역 쏠림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인문학계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인문학 학회들의 모임인 인문학총연합회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위행복 인문총 대표회장(한양대 교수)은 “이번 사업을 통해 인문학 기초학문 영역을 더 강화하고, 국가와 사회의 요구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확대하는 사업으로 되길 바라며 성공적인 수행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려가 없지 않다.

일부 인문학 전문가들은 이 사업이 외국어에 기반한 학생취업 사업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에 선정된 16개 대학 가운데 교양대학 개편으로 가닥을 잡은 가톨릭관동대를 제외하면 모든 대학의 사업단에 각종 외국어학과들이 포진했다.

글로벌지역학 모델과 기초학문심화 모델, 인문기반융합 모델 등 3개 부문에 지원한 고려대는 독어독문학과 노어노문을 비롯해 일어일문, 서어서문, 국어국문, 영어영문, 불어불문, 중어중문 등 8개 언어관련 학과가 참여했다. 이밖에도 철학과 한국사학, 사학, 한문학, 언어학 등 인문학 분야가 코어사업에 참여했다. 글로벌지역학 전공으로는 독일과 러시아, 스페인, 일본의 지역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냈고, 인문기반융합 전공에선 라틴아메리카지역학사와 아시아지역학사 등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기초학문심화 전공으로도 번역학과 ‘국문학 국제화’ 등 언어역량과 밀접한 연관을 둔 전공들을 발달시키겠다는 계획을 짰다.

이처럼 코어사업 선정이 ‘외국어’와 ‘취업’에 쏠려 있는 것은 코어사업의 목표 자체가 지역학과 학생취업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사업 설계 초기 단계였던 지난해 10월 교육부의 코어사업 공청회 자료를 보면 인문학계의 문제로 “시대변화와 사회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꼽고 있다. 과거 대학수가 팽창하면서 인문학과도 사회수요와 상관없이 양적으로 팽창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 때문에 기존 대학의 인문학과들이 학생들의 다양한 사회 진출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한계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사회수요에 부응하는 인문학 육성’을 화두로 제시하고 “국가경영전략 차원에서 세계 각 지역의 언어·문화·역사·사회·경제에 정통한 글로벌 지역전문가 중점 육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사업설계에서부터 외국어 중심의 취업교육을 요구한 셈이다. 이번에 선정된 한 대학은 ‘인문기초 전문인재’와 ‘인문기반 실용인재’를 양성하겠다며 노골적으로 ‘10년 이내 취업률 15% 향상’을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최병구 인문학협동조합 총괄이사는 “코어사업은 프라임사업과 같은 기조의 사업인데, 결국 사회수요에 맞춰 취업률을 제고하겠다는 프라임사업의 골격을 그대로 가져온 모양새다. 2개월 동안 각 대학에서 급박하게 진행돼 선정된 대학 내부에서도 여전히 혼란이 지속되는 모습이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지역학에 ‘올인’하면서 학문후속세대가 설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병구 이사는 “기초인문학 분야를 연구해 학위를 받은 현재 학문후속세대는 지역학이 대두되고 대학 인문학이 응용인문학에 쏠리게 되면 일터를 잃게 된다”며 “글로벌 인재양성이 인문학의 열쇳말이라곤 하지만 기초인문학과 전공자의 설자리가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화두로 떠오른 지역학은 대학 인문학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엔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주문이다. 언어전공자를 양성하고 지역의 문화현상을 짚어내는 현재 코어사업 계획 수준으로는 지역전문가 양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지역학의 형성이 인문학이 아닌 사회학적 고민의 결론인 만큼 지역의 실질적인 정치·사회·경제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전공지식과 교과목의 개발이 절실하다.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지역학도 그와 같은 개념에서 연구돼야 하나는 목소리가 높다. 인문학을 전공한 한 교육전문가는 “교육부가 코어사업을 설계한 것은 구조조정을 통해 취업률을 높이고 재정을 빌미로 대학을 옥죄겠다는 의도에 그쳤지만 실제로 코어사업을 수행할 대학과 교수들은 그를 뛰어넘는 고민이 필요하다”며 “학문후속세대의 기초인문학과 지역전문가 양성을 위한 사회학적 접근이 모두 가능한 형태의 학제간 연구의 틀을 마련하는 데 코어사업의 성패가 달렸다”고 지적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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