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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주주의자 플라톤, 민주주의에 처방을?
반민주주의자 플라톤, 민주주의에 처방을?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3.15 17: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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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_ 2강. 박성우 서울대 교수의 ‘희랍 고전시대의 국가 이념’

 

▲ 박성우 교수

‘윤리와 인간의 삶’을 대주제로 내건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강연은 모두 7개 섹션으로 이어진다. 전체 5강으로 꾸며진 1섹션은 ‘국가와 이념’을 주제로 「윤리와 인간의 삶」(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희랍 고전시대의 국가 이념」(박성우, 서울대), 「유교 윤리와 국가」(이상익, 부산교대), 「국가의 현실, 개인의 현실」(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으로 진행된다. 12일 열린 2강은 박정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박성우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대정치사상, 국제정치사상, 현대정치이론 등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혼 돌봄의 정치: 플라톤 정치철학의 기원과 전개]』(2014)가 있고, 共著로  『서양 고대·중세 정치사상사』(2011),  『한국 민주주의의 도전과 극복』(2013),  『보편주의』(2016) 등이 있다.
박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아테네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아테네의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런 국가 이념을 형성하는데 아테네의 데모스와 엘리트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봤다. ‘윤리’를 조명하기 위한 사전 작업인 셈이다.


“국가이념은 넓은 의미에서 국민의 의식 속에 내재하는 국가 정체성, 나아가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적 정체성에 반영돼 있다”고 지적한 박 교수는 “희랍 고전시대의 중심에 있던 아테네 민주정에 한정”해 강연을 열어나갔다. 여기서 그가 중점적으로 살펴본 인물은 플라톤이다.
그는 플라톤이 당시 아테네의 민주적 국가이념을 존중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졌을 것으로 봤다. 즉 ‘플라톤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의 처방’을 설명한 셈이다. “플라톤은 전통적으로 반민주적 입장을 견지했기에 플라톤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처방을 제시했다는 것은 꽤 낯선 주장”으로 비쳐질 수 있다.

▲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강연이 본격 장정에 나섰다 플라톤을 중심으로 아테네 민주주의를 진단한 박성우 교수

박 교수는 “플라톤은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관용이 범죄자에게까지 허용되고 도덕 교육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다고 지적”하며 “무질서한 시민성이 민주정체의 특성이라고 간주한 바 있다”고 읽어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플라톤 발언의 진의에 주목하고자 했다. 박 교수에 의하면, “플라톤의 대중 폄하 발언의 진의는 역설적으로 자신과 같이 대중에게 그들의 결함을 지적하는 엘리트들의 견해를 대담하게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면서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자정능력이 있다고 보고, 정치철학과 철인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나아가 철학자의 역할도 민주적 국가이념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는 플라톤이 민주주의 이데올로기 안에서도 철학자의 긍정적인 역할을 제시했다는 것으로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그렇다면 아테네 민주주의가 국가 이념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박 교수는 ‘인간적 덕성’의 견인을 지적했다. 이어 민회, 위원회, 배심원 법정 등 아테네 정치참여의 경로를 설명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의 높은 정치 참여도는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민주적 정체성을 제공하는 국가이념으로 기능했을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그는 또 “다수 대중에 해당하는 데모스가 소수 엘리트를 상대로 실질적인 우위를 차지하면서도 적절한 합력이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이념을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가 지적한 데모스와 소수 엘리트 사이의 ‘적절한 협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적인 부분이다.
반면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긍정적으로만 작동했던 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전쟁이 어떻게 아테네의 민주적 국가 이념을 타락시켰는지 ‘투키디데스의 진단’과 이를 긍정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플라톤의 처방’을 설명했다.
‘투키디데스의 진단’으로 엘리트의 연설과 이에 대한 데모스의 반응을 기술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어떤 경우에 아테네의 민주적 국가이념이 선순환적으로 작동하고, 타락했는지 살펴낸 박 교수는 “아테네 제국의 쇠퇴가 특정 엘리트와 데모스의 타락 때문이 아니라, 민주적 국가이념이 전반적으로 쇠퇴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의 처방’과 관련해서는 투키디데스가 주목한 미틸레네 사례를 동원했다. 주지하다시피 ‘미틸레네 사례’는 퍽 흥미로운 논쟁을 담고 있다. 미틸레네인들이 반역의 조짐을 보이자 이에 발끈한 아테네인들은 미틸레네의 주민 중 성인 남자 전부를 사형에 처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삼으라는 판결을 내렸다. 얼마 뒤 이 가혹한 판결을 재고해달라는 항소가 이어졌다.
이러한 여론에 따라 아테네 민회가 처벌을 완화할 조짐을 보이자, 클레온은 아테네인들을 격렬히 비난하면서 ‘반역의 대가는 죽음’임을 만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일벌백계로 미틸레네인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디오도토스는 “양식 있는 사람들인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바로 그들(미틸레네인들)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이익이다. 우리는 법정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시민의 의회 안에 있다. 그리고 문제는 정의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미틸레네인들을 아테네의 유익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라고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박 교수는 바로 이 미틸라네 사례를 “아테네 민주주의의 국가 이념이 플라톤적 처방을 수용 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플라톤의 선언적 처방을 실천하기 위해 데모스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박성우 교수 강연 요약문(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플라톤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처방을 제시했다는 것은 꽤 낯선 주장이다. 전통적인 플라톤 해석은 플라톤이 반민주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본다. 그의 정치철학은 아테네 민주정과 조화를 모색하는 동시에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희랍고전시대’란 기원전 510년경 클레이스테네스의 민주적 개혁(혁명)부터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의 시점까지 대략 두 세기를 일컫는다. 대체로 ‘희랍고전시대’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는 것과 달리 ‘국가이념’이 무엇인가가 대해서는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국가이념이란 국가운영의 기본원리에 근거를 제공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국가이념은 국가 권력의 주체는 누구이며, 그 권력은 어떻게 행사돼야 하고, 어째서 이러한 권력행사가 정당한지에 대한 이념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아테네 민주정의 국가이념에 한정했다. 아테네가 희랍고전시대에 중심에 서 있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시사점을 제공할만한 민주적 국가이념을 선택하고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지배적인 국가이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근대 이후 아테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기원으로서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다. 재밌는 것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가 시대와 사상가의 관점에 따라 매우 상반된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무모함, 변덕스런 욕구, 이에 편승하는 엘리트의 인기영합주의를 경계하는 이들에게 아테네 민주주의는 타락한 정치의 표본이다. 반면 대중의 정치 참여를 기반으로 민주적 심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들에게 아테네 민주주의는 현대 정치가 지향해야 할 정치상이다.

국가이념으로서의 아테네 민주주의
아테네 민주주의는 다수 대중인 데모스가 정치 제도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정체를 의미한다. 아테네가 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삼았다는 것은 다수가 실질적으로 지배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더불어 다수의 지배가 정치공동체 안에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테네의 모든 시민들은 나이가 되면 아테네의 주요 권력 기관에 해당하는 민회(20세), 위원회(30세), 배심원 법정(30세)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테네 민회는 아테네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 기관으로서 약 6천~8천명의 시민이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민회 못지않게 아테네 시민들이 정치참여의 경로로 삼은 것은 500인의 시민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였다. 아테네의 배심원 법정도 빼놓을 수 없는 정치 참여의 장이었다.
아테네 시민들의 높은 정치 참여도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단지 제도적 장치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에게 민주적 정체성을 제공하는 국가이념으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테네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데모스가 엘리트를 상대로 실질적인 우위를 차지하면서도 엘리트와 합력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이념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기원전 5세기 후반(기원전427년~415년경)부터 도입된 그라페 파라노몬이라는 것이다. 이 제도에 따라서 아테네 민회에서 칙령안을 제안한 사람은 추후 그것이 민주적 헌정질서에 위반되거나 아테네 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판명될 때, 법정에 기소될 수 있다. 민회에서 칙령안을 발의하는 사람은 주로 정치 엘리트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제도는 아테네 데모스들이 자신들의 비전문성을 보완하는 동시에 엘리트를 견제하기 위한 기발한 조치였다. 법률제정자의 구성이 새로워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들인데, 과거 솔론과 같은 전통적인 입법자들이 만든 법을 정리하는 역할과 함께 새롭게 법률을 제정할 수도 있는 권한도 부여받았다. 그 밖에 대중이 실질적으로 지배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제도로 도편추방, 공적 부조와 재산교환, 자격검증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엘리트 견제의 민주적 제도가 어떻게 국가 전체를 통합하고 시민들이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국가이념으로 연결될 수 있었는가? 기본적으로 데모스 우위를 바탕으로 한, 데모스와 엘리트의 적절한 합력이 중심에 있었다. 아테네의 국가이념이 엘리트의 기능을 활용하면서도 데모스의 우위를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평등을 유지할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적 권력 기관에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고, 심의 과정에서 어떤 발언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이 데모스의 자신감의 원천이다. 요컨대,데모스와 엘리트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민주적 국가이념을 통해 엘리트는 재력과 전문적 지식 등을 가질 수 있었고, 데모스는 엘리트의 장점을 민주 국가의 유지에 활용할 수 있었다.


아테네가 이렇게 데모스의 우위를 인정하며 엘리트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이념을 안정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었던 요인으로 국제정치적 변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모두 아테네인들로 하여금 자유의 추구가 단지 국내적으로 민주주의 정체를 유지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그 정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이러한 경험은 아테네인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삼아 아테네에 대한 충성심을 고무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즉 국가이념으로서의 아테네 민주주의는 데모스의 방종과 변덕을 자극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충성과 이에 걸맞은 절제, 경건함, 질서, 용맹, 즉 광범위한 의미의 ‘인간적 덕성’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국가이념으로서의 아테네 민주주의가 이와 같이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동했던 것은 아니다. 전쟁은 때때로 민주적 국가이념을 위반하는 엘리트가 데모스의 지지를 얻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투키디데스는 전쟁이 아테네의 민주적 국가이념을 어떻게 타락시켰는가를 역사적으로 예시한다. 반면,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적 국가이념의 자기파괴적 속성을 극복하고, 엘리트와 데모스의 선순환적 관계를 통해서 긍정적 측면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를 처방했다.

투키디데스의 진단과 플라톤의 처방
플라톤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처방을 제시했다는 것은 꽤 낯선 주장이다. 전통적인 플라톤 해석은 플라톤이 반민주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본다. 플라톤의 텍스트는 이런 해석을 쉽게 뒷받침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관용이 범죄자에게까지 허용되고, 도덕 교육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다고 지적한다. 또 지나친 욕구의 추구로 인한 무질서한 시민성이 민주정체의 특성이라고 간주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플라톤이 당시 아테네의 민주적 국가이념을 존중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해 보고자 하는 의도를 가졌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플라톤의 입장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런 해석은 기존 해석과는 배치되므로 논증이 필요하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플라톤의 대중 폄하 발언의 진의는 역설적으로 자신과 같이 대중에게 그들의 결함을 지적하는 엘리트들의 견해를 대담하게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이 어떤 엘리트를 선택해야 하고, 또 정치엘리트는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는가를 설득하고자 했다. 이런 설득 과정에서 플라톤은 정치와 거리를 둔 철학자의 역할도 민주적 국가이념 안에 포함시켰다. 결론적으로 플라톤 정치철학은 아테네 민주정과 한편으로 조화를 모색하고, 다른 한편으론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조화의 측면에서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어느 정도 자정능력이 있다고 보고, 이를 보완하는 것으로의 정치철학의 필요성, 철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나아가 정치철학의 본질 속에는 불가피하게 민주주의와의 갈등이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강조는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잠재적 철학자들을 위한 것이다. 아테네 민주주의 이데올로기 안에서도 철학자의 긍정적인 역할을 제시했다는 것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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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흥선 2016-03-25 15:49:44
'신이 우월하냐, 인간이 우월하냐, 아니면 신을 안 믿냐, 어떤 신이 좋으냐, 그런 희노애락 개입이 필수인 담론들 간 경쟁 위에 인간 판단들이 켜켜히 쌓였던 것이 '희랍 고전 시대'이니 만큼, 문자를 만들고 농업을 전파하고 철기를 다루고 폭군을 없애는 천진함: 황제,나 문자를 만들고 법을 만들고 농업을 전파하고 부족을 통일하는 엄격함: 단군,처럼 정체성과 담론에 관한 설명을 함께 하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판단이죠. 정체와 국체 설명을 '희랍 시대'부터 한다'는 건 역사학이 필수인데 '청자에게 너무 과중하다'는 의미죠. (그렇니까 어떤 인간성이 사태에 개입했냐?는 '소크라테스'적 설명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