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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역사학·헬조선 등 시의적 주제 포착, 그리고 ‘기념호’의 풍경
사이비 역사학·헬조선 등 시의적 주제 포착, 그리고 ‘기념호’의 풍경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3.15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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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봄호 리뷰

 

기자의 책상에 네 권의 계간지가 도착해 있다. <역사비평> 114호, <오늘의 문예비평> 100호, <창작과비평> 171호, 그리고 <황해문화> 90호다. 이 가운데 <오늘의 문예비평>과 <창작과비평>은 탄생의 기념비를 내세워 표지까지 싹 바꾸는 시도를 했다. <역사비평>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140주년을 맞아 특집을 꾸렸다. <황해문화>는 작금 세태를 관통하는 ‘헬조선’을 놓고 특집 글을 모았다. 둘 다 시의적인 접근을 한 셈이다.

<역사비평>은 ‘특집: 조일수호조규와 개항에 대한 다양한 시선’ 아래 다섯 편의 논문을 묶었다. 역사, 국제법, 국제정치, 경제사의 관점에서 조일수호조규와 개항을 분석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비평>의 좀 더 흥미로운 글은 ‘기획1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에 수록된 글들이다. ‘기획1’이라고 했고, 또 박태균 편집주간이 「책머리에」에서 “앞으로도 고대사 관련 기획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듯, 이 기획은 후속까지 계산 또는 고민한 것이 분명하다.
“경희대에서 진행 중인 고대사 연구자들의 워크샵에서 발표된 원고들을 수정해 기획으로 엮”은 세 편의 글은 <역사비평> 「책머리에」 표현된 ‘부드러운 수사’와 달리 ‘돌직구’를 던진다. ‘재야사학자들’은 어느 새 ‘사이비 역사학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표적은 특정인으로 좁혀진다.

기경량 강원대 역사교육과 강사는 「사이비 역사학과 파시즘」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사이비 역사학이 대중들에게 수용되는 양상을 보면 특이한 지점이 확인된다. 명백하게 파시즘을 기반으로 한 주의·주장임에도 보수우파뿐 아니라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조차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기경량은 곧바로 ‘최근 사이비 역사학을 퍼뜨리는 첨병 역할을 하는 유명한 대중역사저술가’을 겨냥해 이렇게 비판한다. “(2015년 4월 17일 국회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에서 동북아역사지도연구 책임자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와 이덕일간 대질 문답) 그 결과 수십 명의 역사학자들이 참여하고 8년 간의 연구 기간과 47억원의 세금이 투입된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은 사업 자체의 무산, 혹은 사이비 역사학계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일정 부분 반영된 왜곡된 결과물을 도출해야 하는 위기에 놓이게 됐다. 만약 이러한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한국은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한국 역사학계의 학문적 수준에 대한 평판도 큰 손상을 입고 말 것이다.”

위가야의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인가」도, 안성준의 「오늘의 낙랑군 연구」도 기경량이 겨냥한 ‘문제적 인물’을 향한다. 위가야는 이덕일의 오류(동북아역사지도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비판했지만, 이것은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 현도군에 붙어있는 ‘郡’을 고구려에 붙여 읽어, ‘고구려군’이라는 행정구역으로 착각한 것)를 지적하면서, “(이덕일은) 우연히(하지만 실수로) 중국이 고구려의 전 역사를 중국사로 포함시키기 위해 조작한 증거인 ‘고구려군’을 찾은 것, 아니 찾았다고 믿은 것이다. 역사해석에 대한 이런 태도는 이덕일, 그리고 그와 입장을 공유하는 사이비 역사학의 많은 주장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역사해석을 편협한 동시에 비합리적으로 만드는 일종의 강박이다. 이 강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들의 역사학에 ‘사이비’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는 날은 요원해 보인다”라고 결론짓는다.

<역사비평>이 영토주의와 국수주의에 바탕을 둔 상고사 해석자들을 경계해 이러한 기획을 마련한 것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접근에도 불편한 대목은 있다. 중량감을 따질 필요는 없지만, ‘젊은 연구자’들을 앞세웠다는 것이 그렇다.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했지만, ‘사이비 역사학자’ 죽이기 쪽으로 가닥 잡은 것도 모양새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실은 이런 문제라면 편집위원 쪽이나 중견 연구자들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가는 게 맞다. 또 하나, 이 파상적인 비판 속에 ‘재야사학자’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병렬적으로도 배치했어야 했다. 재야사학을 일순간 사이비 역사학으로 규정했다면, 그에 걸맞은 편집 책임도 뒤따르는 게 옳다. <역사비평>의 고대사 기획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집: 헬조선 현상을 보는 눈’을 들고나온 <황해문화>의 접근은 김명인 편집주간의 말대로 “한갓 유행어 차원이 아니라 가장 혹독한 악성의 형태로 신자유주의시대의 말기를 통과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심중한 경고의 메시지라고 한다면 이것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에 대한 올바른 응답을 모색하는 것은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 특집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위기-탈조선의 사회심리학」(류동민) 등 다섯 편의 글을 실었다.

특히 다양한 통계와 예화를 통해 작금의 한국사회를 ‘신계습사회’로 규정한 오찬호 강사의 시각(「신계급사회가 정말로 두려운 이유」)은 ‘헬조선 현상학’ 진단으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그는 한국사회가 이미 “불평등의 간격이 그나마 회복이 가능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를 지나가버린 사회”가 됐으며, 구성원들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이탈’ 아니면 ‘순응’을 택하거나 나아가 같은 처지의 구성원들의 일부를 경쟁에서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진단한다.
한편 펑크음악가 손이상(「껍데기는 가라」)은 ‘헬조선 현상’이 알맹이 없음을 감추기 위해 적대자를 만드는 한국사회의 관행 중의 하나이며, 헬조선 담론은 분노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올바른 저항은 아니며 오히려 체념과 내면화를 낳는 집단 동일시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고 판단한다. 그의 이런 판단은 ‘헬조선 현상’에 대한 의미심장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저널리스트 박권일 역시 헬조선론은 사회모순을 인지하면서도 주체의 적극적인 개입과 시정을 배제하는 혐오와 자기모멸의 담론으로 보면서(「‘헬조선’, 체제를 유지하는 파국론」), “시스템의 민낯을 폭로하고 붕괴를 예언하는 통렬한 묵시록처럼 보이지만, 실은 체제의 결함과 오류를 어쩔 수 없는 재난의 스펙터클로 만들어 위악적으로 소비하는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을 던진다.
‘창간 50주년’이란 역사의 무게를 지닌, 그리고 진보 담론의 텃밭을 지켜온 <창작과비평> ‘창간50주년 기념호’는 그간의 표지 양식을 버리고 새로운 옷을 입었다. ‘50주년 특별기획 창비에 바란다’와 ‘특집: 대전환, 어디서 시작할까’를 마련했지만, 지나온 50주년에 대한 성찰, 그리고 앞으로 50년을 향한 ‘도전의 열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늘의 문예비평>도 지령 100호 특집으로 봄옷을 새롭게 입었다. ‘특별기획: 오문비와 나’, ‘특집 문예지의 존재론’이 표지와 함께 ‘새로운 지역 문예지’로서의 자기갱신을 보여주는 기획이라면, ‘정론과 문화’는 이 잡지가 어떤 결기를 가지고 문학과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시금 확인해준다. 안원하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고현철 교수의 죽음으로 돌아보는 대학 구조조정의 문제점」과 문학평론가 박형준의 「비평의 시좌: 신경숙 사태를 보는 다른 곳」이 특히 그렇게 읽힌다.

오히려 흥미롭게 읽힌 부분은 ‘대화: 한국의 보수세력을 점검한다①: 한국 종교의 보수성을 어떻게 볼까’였다.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와 강인철 한신대 교수(종교문화학과)가 대화를 주고 받았다. 과거 크리스쳔아카데미에서 발행하던 <대화>의 냄새가 살짝 나긴 했지만, 이 기획 자체가 ‘한국의 보수세력’ 점검에 방점이 놓여 있기 때문에, 논의가 축적된다면 ‘보수’ 이해에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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