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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신경생물학, 철학적 인식론의 의문에 대답하다
인지신경생물학, 철학적 인식론의 의문에 대답하다
  • 박제윤 인천대 기초교육원·철학
  • 승인 2016.03.15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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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뇌 중심 인식론 플라톤의 카메라』 폴 처칠랜드 지음|박제윤 옮김|철학과현실사|439쪽|20,000원

플라톤 이래로 철학자들은,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기 위해서 그 인식 대상에 대한 개념을 선험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심상에 떠올려지는 개념의 표상을 말하면서도, 지금껏 그것이 무엇일지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처칠랜드는 신경망 활성화의 원형이 바로 개념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인 폴 처칠랜드와 그의 부인 페트리샤는 각각 연결주의 인공지능과 인지신경생물학의 최신 연구를 분업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해 철학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대담한 대답을 내놓는다. 이 책에서 폴은 딥 러닝(deep learning)으로 알려진 최근 인공지능 연구에 근거하여 철학의 인식론의 의문에 대답한다. 이렇게 철학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태도를 자연주의(naturalism)라고 부른다.


자연주의 태도가 전통 철학을 계승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철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해도 되는 것일까? 처칠랜드 부부의 연구 태도와 방법은 전적으로 콰인(Quine)의 자연주의 철학을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뇌과학과 인공지능이 요즘처럼 발전하기 이전부터 결정돼 있었다. 콰인은 논문, 「자연화된 인식론」(1969)에서, 지금까지 영미철학의 주류 연구 방법이었던 (언어)분석이 지식의 정당화에서 그리고 방법론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체론(holism)의 입장에서 철학이 다른 학문과 같은 수준에 있다는 의미에서, “제1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런 배경에서 과학 속에 철학을, 그리고 철학 속에 과학을 탐구하라고 제안한다. 그러한 콰인의 기본 입장을 처칠랜드가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현대 주변 학문들의 성과에 주목한다는 측면에서, 그의 철학은 도발적이긴 하지만 전통 철학의 주류를 계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처칠랜드는 어떤 철학적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플라톤 이래로 철학자들은,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기 위해서 그 인식 대상에 대한 개념(concepts)을 선험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심상에 떠올려지는 개념의 표상을 말하면서도, 지금까지 그것이 무엇일지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처칠랜드는 신경망 활성화의 원형(prototypes)이 바로 개념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철학자들은, 예측하고 설명하는 기능으로서 일반화(generalizations)를 강조해왔다. 그렇지만 누구도 일반화, 또는 가설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만족스런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처칠랜드는 그것 역시 신경망 활성화의 원형에 의한 작용이라고 말한다. 그의 입장에서 개념과 일반화는 구분되지 않는다. 즉, 중력의 개념과 중력의 법칙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인지 기능의 기초는 언어가 아니라 신경망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이 생각(의식)을 가지기 위해 언어가 필수적이라는 전통적 입장은 거부되며, 언어 분석이 철학의 유력한 방법이라는 입장도 거부된다.


여기서 진리 접근 가능성 문제가 의문으로 제기될 수 있다. 외부 세계에 대한 것이든, 내적 심상에 대해서든, 우리가 가지는 표상이란 신경망의 활성화 패턴에 의한 것들이다. 우리의 신경망은 하등동물의 신경계에서 진화해온 결과물이며, 포유류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신경망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런 진화론적 관점에서 만약 신경망이 세계에 대해 적절히 표상해내거나 대응하지 못한다면, 자연선택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미 형성된 신경계 내의 일부 신경망들이 세계를 적절히 표상해내지 못할 경우에, 그것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신경망들 사이의 상호 연결과 소통이다. 명확하지 않은 후각 정보는 시각 정보로 보완될 수 있으며, 뇌 내부의 영역들 사이의 상호연결을 통해서 내적 정보들은 서로 보완되고 수정됨으로써, 유기체들은 생존에 유리함을 가질 수 있다.


그런 배경에서, “우리가 실재(reality)를 알 수 있는가?”라는 회의적 의문에 대해서, 처칠랜드는 과학적 실재론(scientific realism)에 긍정적 입장에 설 수 있다고 대답한다. 우리가 실재에 다가서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신경망의 활성 원형에 담겨지는 과학 이론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일순간에 새로운 가설을 제안할 수 있을까. 병렬로 연결되는 신경망은 계층 구조를 이루면서, 추상적 개념의 점진적 계층, 즉 여러 추상적 정도를 산출한다. 또한 상위 층이 하위 층으로 재귀적 회로를 방사적으로 연결함으로써, 하위 층의 일부 입력 정보만으로도 상위 층의 신경망 전체를 발화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재귀적 구조에 의해서 신경망은 다소 부족한 입력 정보를 가지고도 충분히 인식하고 예측할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구조가 갖는 기능이 바로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고안하게 만드는 은유(metaphor) 혹은 가추추론(abduction)을 가능하게 해준다. 뇌의 부분적 여러 신경망들은 상호연결을 통해서, 본래적 기능과 다른 정보 처리에 활용될 수 있다. 이것을 ‘개념의 재배치(redeployment)’라고 부른다. 어려서부터 우리가 학습을 통해서 습득한 신경망의 원형들, 즉 개념과 일반화(가설) 등은, 이러한 재배치를 통해서 지금까지 적용하지 않았던 신경망 원형들과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재배치를 통해 우리는 이전과 다른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볼 눈을 가질 수 있으며, 새롭게 예측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의문은 또 제기된다. 새로운 이론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용인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위의 개별 뇌의 이야기를 여러 뇌들 사이의 관계로 확장해서 바라보자. 신경망들 사이의 연결과 소통이 유기체의 유리한 생존 전략이었다면, 개별 뇌를 넘어 집단적 뇌들 사이의 연결과 소통 역시 사회적 존재들의 유리한 생존 전략이 된다. 사회 속의 개별 뇌들이 각기 특정한 기능에 특화되고, 그것들이 총체적으로 연결을 이뤄 통합적 (구조적) 기능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한 기능들을 총칭해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물론 뇌들 사이의 연결과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언어다. 뇌들 사이의 구조적(기능적) 동형성이 모여 하나의 문화를 이룬다. 그러한 집단적 연결의 새로운 재전개는 이전과 다른 설명력으로 전체 집단에 설득력을 얻는다. 이것을 토머스 쿤(Tomas Kuhn)은 ‘과학혁명’ 혹은 ‘패러다임 전환’이라 말했다.


끝으로 저자와 그의 책은 ‘통섭적 연구’에 대해서도 시사한다. 에드워드 윌슨은 『통섭(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에서, 뇌로부터 문화까지 관통하는 지식의 대통합을 주장하면서, 통섭이 창의성을 유도한다고 주장했다. 처칠랜드는 인지신경생물학, 연결주의 인공지능, 물리학의 동역학 개념, 과학사의 여러 사례들 등을 통섭적으로 연구하는 철학자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를 통해서 학문들 사이의 부합(consilience)이 어떻게 가능한지도 해명한다. 신경망들의 연결과 개별 뇌들의 연결은, 서로 거리가 멀게 보이는 여러 학문들 사이에 부합하는(consilient) 개념체계를 산출한다. 다른 분야의 지식체계를 신경망에 담아내면서, 서로 부합하지 않는 신경망들의 재전개 혹은 새로운 연결을 통해, 이전과 다른 인식과 예측 기능을 갖춘다. 통섭적 연구는 학문들 사이에 부합을 조장하며, 따라서 학문들 사이에 환원, 수정, 제거 등이 일어난다. 이것을 처칠랜드는 ‘이론 간 환원(intertheoretical reduction)’ 또는 ‘부합(consilience)’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 학문의 창의적 발전을 위해 ‘통섭적으로 연구하라’는 그의 충고는 설득적이다.

 

 

 

 

박제윤 인천대 기초교육원·철학
필자는 인하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처칠랜드(폴·패트리샤) 부부의 철학을 연구하며, 번역서로 『뇌처럼 현명하게: 신경철학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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