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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하게 얼음깨고 피어나는 억척스러움
성급하게 얼음깨고 피어나는 억척스러움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6.03.02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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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49. 복수초

 

▲ 복수초사진출처: 함께 나누는 교육이야기 박광일(www.mybaram.co.kr)

해마다 봄이라 말하기엔 한참 이른 2월 이맘때면 우아하고 고혹적인 샛노란 꽃망울을 매단 봄의 전령 福壽草가 맨 먼저 차디찬 눈 속을 빼족 비집고 고개를 내민다. 뼈가 시린 송곳 추위도 아랑곳 않고 이렇게 설치니, 말해서 턱없이 억척스럽고 검질기다.
복수초(Adonis amurensis)는 미나리아재빗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로 해발고도 800m이상의  낙엽활엽수림에서 볼 수 있다. 美少年이란 뜻의 아도니스(Adonis)屬 식물은 세계적으로 20~30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복수초·가지복수초(A.ramosa)·세복수초(A.multiflora)가 있으나 계통분류학적으로 논란이 많다한다. 한국이나 일본, 만주를 원산지로 여기며 한국·중국 동북부·일본·러시아 동북부·시베리아 등 극동지역에 자생한다.

福壽草란 일본식 한자명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 꽃이 황금색 술잔처럼 생겼다고 側金盞花, 새해 설 무렵에 핀다고 元日草, 눈 속의 연꽃 같다해 雪蓮花라 한다. 또 우리말로는 꽃 둘레가 에어 낸 듯 녹아 틈새가 똥그랗게 생긴다고 ‘얼음새꽃’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각처의 비탈진 산지숲속그늘 후진 곳에 자라고, 키가 10∼30cm 남짓이다. 잎은 3갈래로 갈라지고, 끝이 둔하며, 깃꼴겹잎(羽狀複葉)으로 어긋나고, 잔잎(leaflet)은 깊게 째진다. 짧고 굵은 뿌리줄기엔 흑갈색의 잔뿌리가 우북수북하다. 원일초는 2월께 이미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해 3~4월에 꽃을 피우고, 5월이면 벌써 이운다. 지름 4~6cm쯤 되는 꽃은 원줄기 끝에 1개씩 달리고, 꽃대가 올라오면서 마침내 진노랑 꽃잎이 펴지기 시작한다. 20∼30개의 꽃잎이 낱낱이 수평으로 좍 퍼지고, 많은 암술은 옹기종기 오붓이 가운데 자리하며, 여러 개의 긴 수술대를 가진 수술이 암술 둘레를 뺑 둘러싼다. 짙은 녹색 꽃받침조각은 8~9장이고, 꽃잎보다 좀 길다. 열매는 탱글탱글한 별사탕처럼 생긴 것이 포실하게 송이지어 달린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 열심히 살아온 설련화는 딴 식물들이 이제 막 新綠을 즐길 5월 즈음이면 홀연 송두리째 떨어버리고 休眠에 든다. 하긴 아름다운 죽음은 없다지. 암튼 한 걸음 빨리 왔다가 일찌감치 사그라지는 얼음새꽃이로다. 여름 되면 枯死하는 夏枯現象(summer depression) 탓에 잎줄기는 쇠잔하고 지하부만 남는다.
일본에서는 사랑을 받는 식물이라 여러 관상 용품종이 개량됐다한다. 영근 종자를 화분이나 화단에 뿌리거나 포기나누기(分株)를 해 번식시킨다한다. 그러나 들꽃을 옮겨 심으면 얼추 죽고 만다고 봐야 한다. 모름지기 野生花는 들에 살아야 제격인 것을….
복수초는 일출과 함께 꽃잎을 살포시 펼쳤다가 오후 3시쯤이면 꽃잎을 닫는다. 또 식물답지 않게 열을 내어 잔설을 녹이기에 ‘난로식물’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런데 날벌레가 나댈 리 만무한 그 추운시절에 서둘러 용쓰며 꽃을 피우려드는 까닭이 참 궁금했다. 아마도 곤충의 힘을 빌려 受粉(꽃가루받이)하자는 것만이 목표가 아닐 터다. 분명코 잎 넓은 나무(闊葉樹) 밑에 살기에 넓은 잎을 펼쳐 짙은 그늘이 지기 전에 바삐 이른바 광합성을 실컷 하자는 셈이리라. 또 암술과 수술을 한 꽃에 가진 兩性花로 곤충들이 수분을 시키지만 자가수분도 한다.

그 예쁜 복수초에 맹독이 들어있을 줄이야. 예쁜 장미에 고약스럽게 가시가 있듯이 말이지. 복수초는 아도니톡신(adonitoxin)이나 유도화(夾竹桃)에 많은 시마린(cymarin) 같은 독성물질을 가진 독성식물이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는 법! 한방에서는 全草를 진통·강심·이뇨제로 쓴다.
복수초 말고도 꽃이 필 때면 식물체에서 열을 듬뿍 내는 가당찮은 식물들이 더러 있다. 확실하지 않으나 식물이 내는 뜨뜻한 열을 내 꽃냄새를 풍기게끔 해 곤충들을 끌어드려 수분(pollination)을 돕게 하고, 凍害를 예방하며, 다른 식물보다 빨리 발아, 움틈을 위함이라 본다.
발열식물을 대표하는 연꽃(Nelumbo nucifera)은 기온이 10°C인데도 불구하고 꽃잎 온도는 무려 30~35°C라 한다. 이것은 냉혈동물인 꽃가루매개자(pollinator) 곤충을 안으로 끌어들여 꽃가루받이를 하자고 그럴 것이다. 신통방통한 일이다. 

그리고 보통 발열하는 식물은 몸체가 크고 독성이 센 天南星과식물들이다. 우리나라에도 나는 앉은부채(Symplocarpus renifolius, skunk cabbage)나 남미 산 덩굴성인 lacy tree(Philodendron selloum), 고기 썩는 냄새를 내는 dead-horse arum lily(Helicodiceros muscivorus), elephant ear(Philodendron selloum), carrion flower(Amorphophallus titanum)와  필리핀 등 동남아에 사는 메스꺼운 향을 내는 elephant yam(A.paeoniifolius)등이 있다.
사실 정온동물인 조류와 포유류를 제외한 다른 변온동물들이나 식물들은 하나같이 기온변화에 따라 체온도 함께 변한다. 그런데 딱히 보잘 것 없는(?) 식물인 發熱植物들은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의 세포호흡(cellular respiration)으로 열을 내는 것은 확실하다. 동물에서는 지방이나 당을 태워 열을 내지만 식물은 그 양이 너무 적어 불가능하다고 하고, 또 복잡한 신경계나 호르몬계가 없는데 어떻게 열은 내는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일이라 한다. 그래서 지금껏 연꽃과 앉은부채를 주 대상으로 발열연구가 진행 중이라 한다. 분명 여기 이야기한 복수초도 연구할 가치가 있을 터.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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