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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외면하지 않은‘곁의 시인’”…그는 지금도 위로와 눈물로 악수를 청한다
슬픔을 외면하지 않은‘곁의 시인’”…그는 지금도 위로와 눈물로 악수를 청한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2.23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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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읽어낸 시인 윤동주_ 김응교의 윤동주 읽기를 말하다
▲ 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그린 영화 「동주」.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5만 관객이 이 영화를 받아들였다. 시인 김응교의 책 『처럼: 시로 읽는 윤동주』(문학동네)도 이 영화와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김응교는 시인 윤동주가 지금도 넓고 깊게 읽히는 시적 매혹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매혹의 비밀을 풀어냈다.

“윤동주를 만들어진 우상쯤으로 함부로 봤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한 편 한 편 읽고 나서 어설피 말했던 내 시늉이 남세스러워졌다. 지리멸렬한 시대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던 큰 고요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질긴 사랑이 지금 필요하기 때문이다.”
『씨앗/통조림』을 쓴 시인 김응교가 먼 시인 윤동주를 이렇게 말했다. 이건 윤동주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 윤동주를 어떤 편견의 틀에서 읽어냈던 자신의 어설픔에 대한 성찰이다. 그런데 이 ‘어설피 말했던 내 시늉’은 어쩌면 시인 김응교 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가 자동으로 연상된다면, 그리고 그런 詩句가 적힌 시집 한 모퉁이에 노란 은행잎을 끼워넣고 책장 어딘가에 모셔둔 기억이 있다면, 그런 우리도 ‘어설피 말했던 내 시늉’에 얼굴 뜨거운 부끄러움을 느낄지 모른다.

마침 5억 원이란 저예산으로 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조명한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 제작 ㈜루스이소니도스)가 개봉돼 입소문을 타고 있다. 2월 18일자로 5만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숙명여대 리더십교양학부 교수로 있는 시인 김응교의 책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문학동네, 520쪽, 20,000원)은 영화 「동주」와 함께 왔다. 시인이 시인을 만나고, 그의 시를 깊이 읽어내는 일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5억 원의 예산도, 관객 5만도, 김응교의 책도 어쩌면 ‘시인 윤동주’에 관한 우리시대의 어정쩡한 어떤 시선을 보여주는 ‘소문’일 수 있다. 시가 불편해진 시대에 윤동주는 그렇게 다시 걸어 나왔다.

김응교의 말로 되돌아간다. “이십년이 넘도록 시를 쓰고 가르친답시고 시늉해왔으면서도 ‘윤동주’라는 이름만 나오면 무지르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서시」)라는 구절이 슬며시 제 영혼에 깃들었어요. 찬란히 빛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금 여기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답니다. 이 문장에는 계급도, 정치도, 학문도 없고, 오직 ‘슬픔 곁으로 다가가는 마음’만 있었습니다.” 시가 외면받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 김응교는 이 순간 마음 문이 조금 열렸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슬픔 곁으로 다가가는’ 윤동주의 마음이 헤아려지는 순간, 김응교는 “시 한 편 한 편에서, 단어 하나하나에서 빛깔이 튕기고 소리”를 들었고, 영혼 한쪽이 무너지는 소리까지 들었다. “윤동주의 시를 대하면 영혼에 미묘한 근육이 생깁니다. 무엇보다도 행복이 무엇인지,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라고 그가 말했을 때, 이건 흔한 레토릭이 아니라 그 자체 ‘진심’이 된다. 그걸 견인하는 것은 ‘슬픔 곁으로 다가가는’ 시인 윤동주의 마음결과 마주침이리라. 어쩌면 이 책을 단순한 평전이나 전기로 묶이지 않게 만든 힘도 여기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

까마득한 후배 시인 김응교는 다시 이렇게 묻는다. “윤동주의 시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호흡 속에서 계속 살아나고 있습니다. 현대적이며 창조적인 의미와 만나면서 ‘윤동주’라는 텍스트는 안팎을 회통하며, 한국문학의 경계를 넘어 세계문학의 유산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만난 윤동주의 시에는 어떤 매혹이 있기에 이렇게 독자들 마음에서 회감되고 있는지요.” 김응교는 윤동주 시에 깃든 ‘어떤 매혹’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이 매혹을 다섯 가지로 풀어낸다.

첫째, 윤동주의 시는 자기와 존재를 투시하는 ‘성찰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자화상」),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서시」),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참회록」),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쉽게 쓰여진 시」)와 같은 대목들에서 김응교는 “자신을 깊이 응시하며 모든 존재의 슬픔을 통찰하는” 윤동주의 내면적 언어를 찾아낸다.
둘째, 윤동주의 시는 기억해야 할 것을 ‘한글’로 기록한 ‘기억의 집’이라는 사실. 시인이 자신의 모국어로 시를 상상하고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윤동주의 ‘한글’로 쓴 많은 시는 “식민지 시대를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했던 조선인들, 자신의 아픔을 표현할 수 없었던 서벌턴의 고통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식민지 시절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영원한 동경이나 한계를 말한다. 그 때문에 윤동의 시를 아직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윤동주가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곁의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부분은 시인 김응교의 섬세한 독법이 거둔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응교에 따르면, 윤동주는 어느 편에 서 있기보다 고통받는 이의 ‘곁’에서 그 마음을 전해주려고 했던 시인이다. 윤동주는 슬픈 ‘곁으로’ 가려 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팔복」)라며 슬픔 곁에 있으려고 했고, 병든 여자가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병원」)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눈물 곁’에 있으려 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서시」)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따뜻한 손길처럼 이 땅의 젊은이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으며, “그의 시에서 마지막 눈물은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쉽게 쓰여진 시」)라며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

넷째, 윤동주의 사랑은 낮지만 ‘거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사랑은 “죽어가는 모든 것”(「서시」)을 사랑하는 사랑이다. 김응교는 이를 가리켜 ‘우주적 사랑’이라 명명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시인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이다. 윤동주는 쓸데없는 사물들, 꽃들, 당나귀도 중심으로 생각한다. 이 때문에 그는 단순한 ‘민족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인으로 다가 온다.
다섯째, 윤동주의 시는 실천을 자극하는 ‘다짐의 시’이기 때문이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幸福)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십자가」 중에서) 이렇듯 윤동주는 관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실천을 예고하고 있다. 김응교는 이 대목에서 윤동주를 ‘처럼’의 시인으로 재해석해냈다.

“국익이라는 헛것으로 보편성을 강요하는 파시즘 시대에 윤동주의 문학은 만들어진 보편성에 흠집을 내고 그 한계를 깨뜨리는 저항의 언어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문학은 친일 문학 같은 굴레에 갇힐 수 없었습니다. 문학은 한계와 제약으로 구속해서는 안 되고, 구속할 수도 없다는 자유에 그는 목숨을 걸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릴 희생을 각오했고, 그 결단의 순간을 위해 그는 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서시」)며 다짐하며 살았습니다. (……) 하늘의 선물처럼 그는 다짐의 정점에서 온몸으로 시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윤동주 시의 깊은 매혹을 풀어낸 김응교 역시 천성 시인이다. 그는 시인으로서 윤동주를 호명했고, 그리고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윤동주는 철저한 자기성찰로부터 출발해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제시했습니다. (……) ‘윤동주’라는 이름은 우리 자신과 이 사회를 조용히 혁명시키는 큰 고요입니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그의 자세는 끔찍한 빈곤과 온갖 자연재해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의 시는 ‘어진 사람들’(「간판 없는 거리」)을 호명하며, 위로와 눈물로 여전히 우리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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