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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문학계 내부 동력 상실 우려돼 … 포럼이 인문학 진흥에 활용될 수 있어야”
“한국 인문학계 내부 동력 상실 우려돼 … 포럼이 인문학 진흥에 활용될 수 있어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2.16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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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육’ 강조하는 손동현 제4회 세계인문학포럼 추진위원장

"공동의 인문학적 주제를 놓고 함께 하는 걸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교수가 되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논문 쓰기 바빠졌다. 뭔가 목소리를 내고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하질 못하고 있다. 지금 대학은 다 직업학교로 전락했다. 사회가 요청하는 것 이상의 인문학적 소양을 발신하는 게 어려워졌다."

세계인문학포럼은 2011년 9월 항도 부산에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교육부와 유네스코, 부산시 삼자의 합작품이었다. 이후 세계인문학포럼은 부산에서 한 차례 더 진행됐다. 2013년 한 해 건너뛰고, 2014년 대전에서 세계인문학포럼이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 2016년 10월 세계인문학포럼은 개최지로 경기도 수원시를 최종 낙점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세계인문학포럼의 흥행성적 추이다. ‘흥행 성적’이라고 선정적으로 말했지만, 이 행사 자체가 인문학과 대중의 만남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참여 인원은 고민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제1회 1천800여명, 2회 7천100여명, 3회 2천5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라면 규모면에서 ‘세계적인’ 학술포럼이라고 할 수 있다.

2회에 정점을 찍고 3회에서는 거의 3분의 1수준으로 참여 인원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줄어든 이유는 뭘까? 내용면에서도 ‘세계인문학포럼’은 세계적인 수준일까? 학회들이 점점 참여를 꺼리고 있고 이 ‘포럼’을 두고 뒷말도 무성하다. 누구를 위한 세계인문학포럼이냐는 힐난도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한국교양기초연구원 원장인 손동현 성균관대 명예교수(철학, 사진)가 제4회 세계인문학포럼(이하 인문포럼) 추진위원장을 맡게 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난해 7월 ‘세계인문학포럼 위원회 위촉식’에선 분명 변창구 서울대 교수가 위원장이었다. 변창구 교수는 중도에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그러니까 손 명예교수는 일종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셈이다.

10억 규모의 예산이 들어가는 세계인문학포럼. 과연 한국 인문학 ‘향연’의 자리로 손색이 없을까? 점점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한국 인문학계에 어떤 ‘진흥’의 마당이 될 수 있을까? 지난 4일 서울 금천구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손동현 위원장을 만난 건 이런 질문 때문이었다.

그는 변창구 위원장의 중도 하차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왜 그만뒀는지를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짐작만 할 뿐이라고 손 위원장은 말했다.

“아마 교육부나 한국연구재단에서 플랜을 다 세워놓고 들러리나 서라는 식으로 했다면, 누구도 위원장직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면 할 수 없다. 연락받기로는 어렵게 됐으니 도와달라는 거였다.”

그렇게 말하는 손 위원장은 올해 인문포럼의 주제를 추진위원회와 논의해 ‘희망의 인문학’으로 내걸었다. 조금 거창해 보이지만, 이게 또 시사적이다. 중의적이란 뜻이다. 한국 인문학계가 내부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희망’이라니? 반문도 가능한데, 그 점이 역설적이다. 그가 보기에 인류가 오늘 직면한 각종 위기의 근저에는 ‘인문학적 성찰과 사유의 부재’가 도사려 있다. 이점에서 인문학은 희망의 메타포가 될 수 있으며, 대학 학과 중심의 인문학 재생산 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인문학적 교육을 모색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그렇다면 인문학계가 자신들의 잔치라고 할 수 있는 인문포럼 참여에 미온적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손 위원장은 의외의 설명을 내놨다. 일단 인문포럼은 교육부와 연구재단의 손을 타고 있다.

“인문포럼이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인문학자들이나 인문학회가 참여를 꺼려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이들이 참여를 주저하는 것은 참여할 동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 우리 인문학계가 너무 피폐해져 있다는 거다. 외국서 공부하고 온 인문학자가 자살했고, 교수들은 연구 프로포잘 쓰느라 바쁘다. 인문학계의 활력이 떨어져 있어서 인문포럼에 며칠 참여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고심하는 게 이 부분이다. 이왕 만들어진 자리인데, 인문학자들의 향연이 되고, 인문학 진흥에 도움이 돼야 하지 않겠나? 우리 사회가 대학을 향해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문학적 소양이 길거리에서 나오는 건 아니잖나. 연구하고, 성찰해야 하고, 회임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이 잘 연계돼 인문교육을 토대로 하는 인문학연구가 누적돼야 이런 행사를 해도 빛을 볼 수 있는데, 지금 우리 대학사회가 그렇지 못하다. 인문학 연구를 인문교육에 연계시키는 메커니즘이 피폐해졌기 때문에 인문학자들이 인문포럼 참여에 미온적인 걸로 이해하면 된다.”

   

대교협 산하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는 손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진단을 제시했다. 아카데미의 인문학이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사회에서는 인문학적 소양 요청이 높아지고 있는 ‘비대칭성’에 대한 지적이었다. 그는 대학 인문학계 내부에서 동력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는 이유로 대학들의 지나친 상업화를 꼽았다. 모든 걸 취업중심으로 재단하는 현실을 ‘상업화’라고 보는 듯했다. 이것은 물론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 탓도 있다. 이 대목에서 손 위원장은 작정한 듯 ‘인문학계의 동력 상실’ 원인으로 인문학자들 책임도 거론했다.

“공동의 인문학적 주제를 놓고 함께 어떤 일을 하는 걸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강사 시절에는 학회도 잘 다니지만, 교수가 되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논문 쓰기 바빠졌다. 전체 분위기가 그렇게 변했다. 뭔가 목소리를 내고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은 다 직업학교로 전락했다. 이러니 사회가 요청하는 것 이상의 인문학적 소양을 발신하는 게 어려워졌다.”

그는 인문포럼이 ‘지속성’에 문제가 있다는 걸 시인했다. 한 번 행사가 끝나면 또 다시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그래서 손 위원장은 이 인문포럼을 진단하는 ‘정책연구’를 제안해놓은 상태다. 인문포럼을 지속할지, 아니면 4회째로 끝을 낼 것인지, 그런 연구 위에서 뭔가 방향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하나마나한 인문포럼에 국고 십 수억원이 투입되고 있으며, 이마저도 한국 인문학계 진흥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불필요한 것 아니냐는 게 그의 인식이다. 그래서 그는 인문학회 회장들에게 참여를 독려하는 편지도 보내고 설득 중에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손 위원장은 교육부의 ‘에이스사업’에 깊이 관련된 인물이기도 하다. 이른바 대학 교양교육 개편에 그의 입김을 불어넣은 것인데, 그런 그가 인문학계 내부 동력 상실을 지적하는 건 어떤 의미에선 ‘교양교육’의 변질을 인정하는 대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손 위원장은 자신이 구상한 교양교육의 진의는 조금 다르다고 주장했다. 대학 학부교육의 본령은 ‘교양교육’에 있다고 확신하는 교양교육 전도사인 그의 지론에는 경청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인문학을 교양교육과 묶어서 사유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기존의 학과 중심의 대학구조에서 탈피해 인문학이 스스로 자기갱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그의 평소 지론이 반영돼 있다. 어째서 교양교육의 중핵은 ‘기초학문분야’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 대학의 교양교육과정은 엉망이다. 교양교육의 핵심은 기초학문 교육이어야 한다. 그런데 교양교육이라고 하면 모든 교수들이 자기 전공이 있어서 관심 없다. 모든 학과, 모든 교수들이 ‘교양’에 지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초학문 분야 교육은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더 많은 인문학자들을 필요로 한다. 지금 곳곳에서 학과를 없애고 있는데, 학과가 없으면 학생이 없고, 그러면 ‘자리’를 보전할 수 없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어차피 학령인구가 줄고 학생들은 취업에 불리한 학과는 지원하지 않으려고 한다. 학과가 아니라 교육과정에 더 많은 ‘인문·예술 교육’을 집어넣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손 위원장은 오래 전부터 연구비보다는 대학 교육과정에서 인문학 교육을 더 많이 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제안해왔다. 지금 정부가 시행하는 인문정책이란 게 결국 지속성과 안정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인데, 한국철학회 회장을 할 때도 ‘철학교육 없이 철학연구 없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그이다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교양교육을 언급하는 손 위원장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다른 기회에 듣기로 하고 세계인문학포럼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인류 보편적 가치체계의 탐색에 기여하는 인문포럼, 그리고 인문포럼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심 지역 확정. 먼저 두 번째. “다보스 그 촌구석에서 해마다 다보스포럼을 하고 있듯, 경북 안동이면 안동 이렇게 한 곳을 정해 특화하는 게 필요하다. 여기저기 옮겨다니다보면 정체성도, 아이디어도 끊어지고, 특색도 찾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장기적 인문포럼 계획도 세워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보편적 가치체계의 모색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동서문화의 교류 속에서 통증을 격심하게 앓았고, 이데올로기 갈등도 치유하지 못했으며, 압축적 근대화와 산업화의 경험 속에 던져져 있기 때문에, 충분히 ‘획을 긋는 인문학적 사고의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인류가 품을 수 있는 모든 모순을 품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어떤 사유의 길을 개척할 수 있지 않겠냐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인문포럼을 그런 사유의 길을 개척하는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실용론’에 서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회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가능하면 지속적으로 해답을 찾아 계속 질문을 던져보자는 생각이다.

“세계인문학포럼도 결국 한국 인문학계의 진흥을 위해 활용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 인문학이 활력을 찾으려면, 공교육 내용 안에 인문학적 성찰 성과가 스며들어 가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인문학이 강했다. 인문학적 탐구의 성과를 교육에 흘러들어가게 하는 채널은 어느 나라든, 문화든 있었다. 우리에게도 조선시대까지 이 채널이 존재했다. 최근에 와서 그 채널이 끊겼다. 이걸 회복해야 한다.”

손 위원장은 그런 채널의 회복을 위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한국적 가치’의 탐색이라는 지난한 작업이 필요하며, 이러한 가치가 녹아든 정전을 초중등 교육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원투수’ 격으로 제4회 세계인문학포럼 추진위원장을 맡은 손동현 교수의 아이디어가 한국 인문학의 새로운 갱신에 어떻게 스며들지 주목된다.

글·사진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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