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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디에?
‘근본주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디에?
  • 교수신문
  • 승인 2016.02.0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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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근본주의의 유혹과 야만성: 현대철학에 그 길을 묻다』 강학순 지음 | 미다스북스|336쪽|22,000원

지성의 눈을 부릅뜨고 ‘눈에 보이는 테러리즘’과 ‘눈에 보이지 않은
테러리즘’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 전자는 이슬람 극단적
근본주의 노선의 무장단체들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리즘이고,
후자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사회의 세계화 및 시장 근본주의에 깃든
구조적 테러리즘이다.

‘외로운 늑대들’의 울부짖음인가? 아니면 폭도들의 광란의 질주인가? 자살폭탄 테러로 호명되는 ‘죽음과 죽임의 퍼레이드’! 이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저 불길한 징후들! 그것들은 우리의 힘겨운 일상을 또다시 잿빛으로 물들인다. 저러한 ‘노마드 테러’를 야기하는 근본주의의 망령! 그것을 외면하고 모르는 것은 약이 아니다. 불행한 현실의 막다른 골목에 처할 경우, 그곳에서는 언제나 야만적인 얼굴을 숨긴 근본주의가 독버섯처럼 돋아 나온다. 테러리스트들이나 ‘테러와의 전쟁’을 치루는 자들은 똑같이 자신의 공격행위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된 근본악에 대한 정당한 응징과 복수로 정당화한다. 여기에 바로 우리 모두가 빠지기 쉬운 ‘생각의 오류의 함정’이 등장하고, 이른바 참을 수 없는 ‘복수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말하자면 쌍방이 자신의 입장과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이 결국에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불리한 결과를 유발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사로잡히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하면 테러이고, 우리가 하면 정당한 전쟁’이란 도덕적 이중적 잣대다. 지성의 눈을 부릅뜨고 ‘눈에 보이는 테러리즘’과 ‘눈에 보이지 않은 테러리즘’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 전자는 이슬람 극단적 근본주의 노선의 무장단체들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리즘이고, 후자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사회의 세계화 및 시장 근본주의에 깃든 구조적 테러리즘이다. 그리고 ‘약한 자의 강한 자에 대한 테러리즘’과 ‘강한 자의 약한 자에 대한 테러리즘’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전자에는 분노하고, 후자에는 관대하다. 그리고 ‘테러의 현상’에는 관심을 가지나, ‘테러의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애써 외면한다. ‘테러리스트들은 왜 그랬을까?’를 한번쯤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서구중심의 위선적인 ‘우리의 근본주의’와 이슬람 중심의 배타적인 ‘그들의 근본주의’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대립각을 세운다.

저러한 ‘근본주의의 망령’이 불러오는 ‘복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 그것을 과연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이 물음을 실마리로 삼아 종교적 근본주의 및 정치적 근본주의, 시장 근본주의, 생태 근본주의, 과학·기술 근본주의 등에 내재해 있는 근본주의적 사고의 유래와 문제점을 주제화한다. 무엇보다 종교적·정치적 근본주의는 ‘근대성의 지적 유산’ 내지 ‘계몽주의의 어두운 유산’과 연계돼 있음에 주목한다. 이런 점에서 근본주의는 원래 서구중심의 근대철학적 사고를 숙주로 삼고 있다. 또한 그것은 오늘날 자본과 권력을 독점한 서구사회의 ‘진리에 대한 의지’가 만들어낸 하나의 담론이라는 입장에 동의한다. 특히 테러리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네오콘(neocon)과 ‘시장 근본주의’에 기초한 세계화의 부작용과 폐해를 중대한 문제로 인식한다. 그리고 오늘날 근본주의를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나 옥시덴탈리즘적 시각 모두가 동일한 편향된 사고의 오류에 빠져있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과 신념의 근본을 존중하고 지키려는 근본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해체를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倒立된 근본주의’로 순환되는 비현실적인 徒勞에 불과하다. 우리는 근본주의의 문제를 외과적 수술요법으로 환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불편한 현실태를 받아들이면서, 그 발생기원을 철학적으로 진단해 원인치료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근본주의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과 차별화되는 이 책의 고유한 지점은 어디인가? 그것은 착종되고 오도된 근본주의 개념을 명료화하고, 근현대사상사의 맥락에서 그것의 이론적 계보를 추적해 주제화하는 것을 선결과제로 삼는다. 왜냐하면 근본주의는 서로 각축하는 ‘종교적 모드’ 에서보다는 오히려 성찰하는 ‘철학적 모드’에서 다뤄지는 것이 좀 더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의 근대적 사고를 극복하고자 하는 현대철학의 탈근대적 담론들과 사고방식을 길잡이로 삼는다. 근본주의는 근대주의의 논리인 주객 이분법, 모순율에 의거한 善惡 이분법, 聖俗의 이분법을 토대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이 근본주의에 깃들어 있는 배타적 독단론과 ‘적과 동지의 도식’ 그리고 서양사고 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이항 대립적 사고, 이를테면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의 한계와 문제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로써 근본주의에 깃든 사고의 폐쇄성과 일방성 그리고 사고 기피증 등을 밝혀내고자 한다.

모름지기 근본주의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사고체계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조건만 주어지면 쉽사리 근본주의로 경도될 수 있는 보편적 특성을 지닌다. 이는 모두가 근본주의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경향성이 있음을 반증한다. 그것은 낭만적 유토피아주의로의 유혹, 배타적 선민주의와 불온한 정체성 옹호로의 유혹, 위험한 광신주의와 비합리적 순응주의로의 유혹, 차이의 소멸로의 유혹이다. 또한 근본주의가 배태하는 야만성이란 반인륜적 야만성의 확산과 복수의 악순환, 적대적 타자의 악마화와 희생양 만들기, 정체성 수호를 위한 반인권적 차별주의의 옹호, 제노사이드(genocide)와 우생학적 인종주의의 옹호이다.
나는 이 책에서 대안적 패러다임을 여섯 가지로 제시한다. 근본주의와 반근본주의를 넘어서는 ‘포스트 근본주의’, 근본주의와 정치와의 불온한 야합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구되는 탈정치적 ‘순연한 근본주의’,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선 ‘관용적 근본주의’, 상대적 절대주의를 지향하는 ‘각자적 근본주의’, 맥락적·관계적 사고에 기초한 ‘조건적 근본주의’, 평화공존과 상생을 목표로 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근본주의’이다.

이 책은 자문화중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중심주의와 이슬람중심주의에 대한 양비론적 입장에 서서 쌍방의 시각의 한계와 사고의 문제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제 근본주의의 해법을 위해서는 그것을 배태하는 전체주의적 세계화 내지 자문화중심주의 시스템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요구된다. 이슬람 국가(IS)와 같은 극단주의자들도 ‘적과 동지의 도식’에서 비롯되는 ‘근본주의 망령’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그들의 적마저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임을 자각하고, 진영의 논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유의 필요성과 상호문화적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의 부작용과 폐해는 종교적 근본주의로 퇴각하게 만드는 원인제공자 역할을 할 수 있고, 불온한 신보수주의에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근본주의 문제의 진실을 알리고, ‘적대적 타자’마저도 품어주는 인류애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일깨우는 것이 당대의 지성인에게 주어진 도덕적 과제와 동시대적 책무임은 자명하다.

 

강학순 안양대·철학 
필자는 독일 마인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근본주의의 극복에 관한 논문이 있으며, 저역서로는 『존재와 공간』, 『해석학의 이해』(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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