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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날아간 황새 산황이의 죽음
일본으로 날아간 황새 산황이의 죽음
  • 이재 기자
  • 승인 2016.01.28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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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항공기 추돌 뒤 소각 … 죽음 ‘미스터리’ 규명될까?
▲ 사진제공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부장.

‘산황이’는 충청남도 예산군 황새마을에서 날개를 폈다. 우리를 벗어나 처음 한 날갯짓은 낯설었을까. 함께 방사된 7마리의 황새와 함께 한동안 주변을 경계하는데 온 신경을 쏟았다. 지난해 9월 3일 전국 최초로 야생에 방사된 황새 산황이는 하얀 몸통에 먹빛 날개와 부리가 인상적인 놈이었다. 붉은 다리에 식별기를 달고 있던 산황이는 순간 날아올랐다. 연신 플래시가 터지고 지켜보던 인파들 사이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날개를 편 그 녀석은 꽤 아름다웠다고 한국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산황이는 그렇게 9월 무더위 속에 야생의 하늘을 갈랐다. 

한동안 예산군 황새마을을 비행하던 산황이는 뒤처진 다른 놈들을 제외하고 남쪽으로 날았다. 3일 방사된 산황이는 일주일만인 10일 전라남도 장흥군까지 날아갔다. 다른 놈들은 여전히 예산 인근을 배회하고 있었다. 남하를 지속하던 산황이는 이튿날인 11일 다시 조금 북상해 전라남도 남원을 날았다. 그는 그렇게 한동안 전라남북도를 오르내렸다. 그러다 방사 2달이 지난 11월 23일 전남 신안군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근 진도에서 또다른 황새 1마리의 위치가 확인됐다. 그렇지만 산황이는 이튿날 아침 9시, 신안군에서 홀로 날개를 폈다. 잠시 중국 상해 쪽으로 날던 산황이는 24일 오후, 동중국해를 건넜다. 

일본이었다. 산황이는 11월 26일 오전 7시경 마침내 동중국해를 건너 일본으로 간 것이다. 그가 출발한 우이도 인근에서 도착한 일본 오키노에라부섬까지 직선으로 장장 950㎞에 달하는 거리다. 비행시간만 10시간을 훌쩍 넘겼다. 야생 방사된 황새 8마리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을 벗어난 사례라 학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산황이의 비극은 오래지 않아 한국에도 전해졌다. 

▲ 산황이는 방사된 후 동중국해를 건너 일본으로 날아갔다. 자료제공 한국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

산황이에게 부착된 식별표는 계속 오키노에라부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산황이가 착륙하는 비행기의 기류에 빨려 들어가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12월 10일에는 연구원 측은 소식을 접한 후 급히 산황이의 사인을 규명하고자 했으나 그의 시체 역시 이미 소각된 뒤였다. 일본측 공식발표에 따르면 11월 26일 오전 9시 25분경 오키노에라부 공항을 이륙한 일본 국내선 항공기와 산황이가 충돌했다. 항공기에는 아무런 충돌 흔적이 없었지만 황새는 활주로 옆 초지에 쓰러져 있었고, 이를 발견한 공항 직원이 곧바로 소각해버렸다는 것이다. 연구원 측은 북한에 황새방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황새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터라 충격이 컸다. 

현재 연구원은 오키노에라부 공항에 산황이에 대한 자료요청을 한 상태다. 또 일본 외교부에도 관련 사실을 전달하고 협조를 구하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소각됐다고 하지만 만일 하나라도 자료가 남아있다면 산황이의 사인을 좀 더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황이의 사인을 밝히는 문제는 앞으로 황새복원사업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연구원 측은 “현재 예산군 황새방사지 근처 30㎞ 반경에 미군훈련기 수십대가 매주 정기적으로 저공비행훈련을 하고 있다”며 “이는 일본 오키노에라부 공항보다 훨씬 심각하다. 오키노에라부 공항은 하루 4편 정도 운항하는 한적한 공항이지만 미군훈련기들은 예당저수지 상공 20~30M 높이에서 빠른 속도로 비행훈련을 하고 있어 황새와의 충돌 위험이 더 크다”고 말했다. 매년 황사를 방사할 경우 황새들이 일찍 예산군을 벗어나지 않는 한 버드스트라이크(항공기에 새가 추돌해 발생한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지난해 9월 황새 방사에 앞서 연구원이 이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미군기지에 훈련장소 변경을 요청했다가 묵살당한 바도 있다. 

연구원 측은 “산황이의 사망원인 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산황이가 버드스트라이크로 인해 사망한 것이 아닐 것으로 본다. 버드스트라이크로 죽었다면 공항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체를 소각할리 없지 않느냐. 산황이 죽음의 원인은 문화재청이 나서야만 밝혀질 수 있고, 이후 황새복원사업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황새는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된 새로 크기는 100~115㎝에 달한다. 일본에서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으며, 오키노에라부 공항에서 황새를 소각한 것이 확인될 경우 일본 당국의 처벌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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