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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院長 … “긍정의 리더십으로 과거·현재·미래 가교 놓겠다”
최초의 여성 院長 … “긍정의 리더십으로 과거·현재·미래 가교 놓겠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1.25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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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대중화’ 박차 가하는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지난 19일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69세, 이하 한중연)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장서각 대중화·세계화’를 한중연 새해 역점사업으로 발표했다. 이 원장은 “장서각은 조선왕실 도서관으로 조선시대 국보급 유물이 많은데 몇몇 연구자들끼리 보는 미시적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왕실 도서를 포함한 고문헌 자료들을 번역하고, 의미를 부여해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작업을 해야 한다. 고문헌의 디지털 작업도 지속해 널리 활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 총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등 굵직한 경력을 갖춘 이 원장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제16대 한중연 원장에 취임한 역사학자다. 2013년 9월 취임한 그는 ‘긍정의 시각’을 강조하면서 한중연을 좀 더 대중과 소통하는 국책기관으로 이끌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를 가리켜 ‘뉴라이트계’라고 지적하지만, 이 원장은 ‘일제 수탈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신의 신념은 뉴라이트계와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그 자신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하고 있지만, 한중연 교수들이 ‘반대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학자적 양식에서 존중하는 균형 감각도 발휘하고 있다. 한국학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배용 한중연 원장을 신년 기자간담회 하루 전인 18일 한중연 집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 2016년 1월 18일(월) 오후 4시
-장  소 :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실

▲ 이배용 한중연 원장은 1947년 서울 생.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서강대에서 「구한말 열강의 광산이권 획득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이화역사관 관장, 이화여대 제13대 총장을 지냈으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15대 회장, 교육과학강국실천연합 이사장,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2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여성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등을 거쳤다. 저서로는 『한국 근대 광업 침탈사 연구』(공저), 『한국사회사상사』,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 『한국 역사 속의 여성들』 등이 있다. 2013년 9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제16대 원장에 취임했다. 사진제공=한중연 대외협력팀

우리 안의 보물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물론 연구도 당연히 잘 해야 하지만,
국가기관인 우리는 국민에게 서비스해야
하는 사명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더욱
한국학의 대중화·세계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 지난해 말 광복 70주년 시리즈를 출간해 화제가 됐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점이었는데, 어떻게 빛을 보게 됐나.

“나는 역사학자다. 특히 역사학자에겐 과거를 다룬다 해도 미래를 예비해야 하는 안목도 필요하다.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정부에서 우리 한중연에 뭘 해달라고 하진 않았다. 그때는 정부가 광복 70주년 준비위원회도 구성하지 않았을 때였다. 부임하던 2013년 말부터 광복 70년의 분야별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광복 70년의 성취를 우리 한중연이 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회성 행사 말고 뭔가 더 의미 있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런데 원장에 취임한 게 9월이니 이미 예산 배정은 끝나 있었다. 그래서 추경예산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발간되지 않은 책에 대한 선입견이 존재했지만, 나는 역사학자로서의 사명, 객관적 기술에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시리즈 집필 과정에서도 학술서로 할 것인지, 대중서로 할 것인지만 ‘가이드’했다.

사실 광복 70주년 시리즈에 대해 다른 시선도 존재했다. 뉴라이트 출신 학자들이 포함되냐, 특정 주제이기도 했던 ‘산림녹화’ 부분은 박정희 대통령 미화작업 아니냐하는 일부 시선도 있었지만, 나는 잘한 건 잘했고, 못한 건 못했다고 말했다. 역사학자보니 유적답사를 많이 다녔는데, 가장 경이로웠던 게 어렸을 때 벌거숭이산들이 푸른 녹색 숲으로 울창하게 변화해가고 있는 광경이었다. 솔직히 그건 기적이고 감동이었다. 산림녹화는 나무 심는 걸로 끝난 게 아니라, 자연을 배우게 하는, 자연을 경이롭게 존중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실어줬다. 그래서 일부 의혹어린 시선에 대해, 개인 미화가 아니라, 성취한 역사를 후세에 제대로 알려줘야 미래 세대가 지혜와 창의성을 배울 수 있다고 설득해 예산을 가져올 수 있었다.”

△ 2013년 9월 부임 이후 가장 역점을 둔 사업 부분은.

“물론 한국학 대중화 사업이다. 장서각만 보더라도 민족 기록문화의 정수가 온축된 곳이다. 이렇게 정교하게 기록한 나라가 있나? 의궤만 500여 책이 있다. 왕실 문헌 12만권, 문중에서 기증 기탁한 책들도 상당수다. 수장기능 뛰어난 곳이어서 많은 곳에서 안심하고 고문헌을 기증 기탁해온다. 그런데 원장으로 와서 보니, 안에 있어서 볼 수 없었지만, 밖에서는 잘 보이는 보물이 즐비하더라. 무엇을 이끌어내 국민에게 서비스해야할지 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문헌들 많다고 말로만 자랑할 게 아니라 번역, 탈초 작업과 함께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선조들이 품었던 이상과 시대정신을 미래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세계에서 신뢰를 받고 나라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유산들 아닌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해봐서 이 부분은 잘 알고 있다. 고품격 대중화, 즉 학술 한류가 필요하다고 봤다. TV 역사드라마를 보고, 역사와 허구를 구분 못하시는 분들 많은데, 역사문헌에 스토리텔링 과정을 입히고, 이것이 대중과 만나면, 대중의 역사 이해는 더 깊어지지 않겠는가? 조선시대 재산분재기, 이런 것은 딱딱한 내용이지만 특정 여성의 분재기 사례로 제시하면 다들 관심 있어 한다. 이렇게 스토리를 엮어줘야 한다. 한국학 대중화가 그런 거다.

또 하나는 ‘한중연’을 곳곳으로 찾아가게 만든 것이다. 찾아가는 한국학 콘서트가 대표적이다.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소재를 쉽게 풀어서 가자, 그렇게 해서 세종시 공무원부터 시행해봤다. 12강을 여는데, 반응이 엄청 좋았다. 정책 입안하고 실행하는 공무원부터 우리 것을 더 잘 알아야 하지 않겠나? 국회 직원들과 일반 국민들 함께 신청해서 들을 수 있는, 국회인문학아카데미도 3회째 마치고 4회를 준비하고 있다. 건양대, 대구교육청 등에 가서도 했다. 부산에서도 하고, 앞으로는 평창도 갈 예정이다.

또한 지역 서비스에도 주력하고 있다. 학생들이 중·고등학생 때부터 우리 것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인근 중·고등학교에 가서 재미있는 한국학 콘서트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국악과 함께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한국학이다. 우리 것을 알리는 장서각 대중화 사업 등을 펼치고 있는데, 이렇게 하니까 전시장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그걸 경험한 분들이 직접 홍보하기도 한다. 오픈 아카데미도 열어서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한국학을 알리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제대로 알려야 한다. 물론 연구도 당연히 잘 해야 하지만, 우리는 국가기관이고, 국민에게 서비스해야 하는 사명 있기 때문에, 계속 대중화,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자 한다. 한국학 콘서트는 외국에도 진행할 예정이다.”

△ 전문성을 바탕으로 좀 더 대중과 만나는 출판 작업도 활발한 것 같다.

“한중연이 한국학 연구의 중추기관이다 보니 전문 연구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엔 한중연에 많이 수장돼 있는 영조시대 기록물을 연구한 결과물이 이어지고 있다. 이름 모를 고문헌에 관한 번역, 연구도 잇따르고 있다. ‘영조시대의 조선’ 시리즈를 비롯해 ‘조선의 사대부’ 시리즈, ‘조선 왕실의 소설’ 시리즈 등이 그런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화 작업에도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 기관을 정부 3.0시대에 맞게 개방, 공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 한국학 세계화와 차세대 국내외 한국학자 양성 사업도 진행하고 있는데.

“한중연에도 석·박사 과정이 있다. 한국학대학원이다. 지금 현재 273명 정원에 251명이 공부하고 있다. 외국인이 124명, 한국인이 127명이다. 34개국에서 온 외국 학생들이 있다. 특히 외국 학생들은 고국에 돌아가면 다 엘리트 역할을 할 학생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강의실에서는 많이 지도하고 있지만, 문화현장, 한국적 성취의 현장, 바깥세상은 잘 안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직접 창덕궁, 강화도로 같이 가서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물론 교수님들께도 현장을 보여주게 독려했다. 외국 학생들이 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 한국학을 습득해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당연히 석·박사 논문은 한국어로 쓰게 한다. 한국어를 못하면 안 된다. 이게 다른 대학과 차별화된 점이기도 하다.”

△ 한중연은 독특한 국가기관이다. 국책기관이란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자율적 연구자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원장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내가 항상 말하는 게 ‘주전자 정신’이다. 어떤 일이든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주인정신, 전문성, 그리고 소속된 곳에 대한 자긍심이다. 그것은 나라 사랑하는 애국심과 주전자의 물을 이웃에게 나눠줄 수 있는 나눔의 정신으로 승화돼야 한다. 이것이 내가 역사학이란 학문에서 발견한 가치다. 또한 나는 ‘긍정의 힘’, 긍정의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臣에게는 아직도 12척이 있습니다’와 같은 긍정의 힘이 국난 극복의 동력이 됐다. 어디를 가든 나는 긍정적인 요소를 먼저 찾곤 한다. 한중연에 와서도 이곳이 지닌 장점, 긍정적인 부분을 더 찾고자 했다. 그래서 장서각이 더 눈에 들어오고, 연구자들을 더 밖으로 보내 소통의 창구가 되게 하고 있다. 긍정의 눈으로 보면 많은 게 보인다.

우리 안에서 세계를 감동시키는 자원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퇴계 선생님도 ‘가까이 있는 단 복숭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신 똘배 찾으러 온 산천 헤맨다’고 지적하셨다. 국가브랜드 위원장을 지낼 때, 우리 안에서 우리의 보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했다. 우리 안에서 보물 찾을 수 있어야 세계에 나가서도 인류를 위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정수가 바로 이곳 한중연이다. 우리 것부터 제대로 알자, 라는 생각이 한중연 원장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본다. 나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이곳 한중연 원장이 됐다. 한중연 원장으로서 조선시대 이후 전공자는 초대 원장 이성근 박사(근세사) 다음이기도 하다.

취임사에서 말했듯, 나는 편향보다는 조화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구와 교육의 조화를 이뤄야한다. 연구가 연구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연구 결과는 국민 교육에까지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서재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대중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지만, ‘한국적’인 것에만 머물 수는 없다. 세계화 시대이므로 國格을 높이는 일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브랜드 위원장 때 굉장히 많이 실감했다. 경제지표만으로는 국격이 올라가진 않는다. 문화적인 부분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졌다. ‘문화리더 국가’를 그때부터 생각해왔다. 이제는 우리가 갖고 있는 귀중한 자원들을 통해 세계문화를 함께 리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정신들 속에서 우리 전통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일맥상통한 ‘가치’를 발굴해, 한국과 세계의 조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해야 한다. 전통은 이제 전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法古創新이란 말처럼 현대적 재창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등 여러 가지 재창조작업을 강조하고 있는 거다.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를 다져서 미래로 이어주는 일들을 해야 되고, 하고 있다고 봐 달라.

이 과정에서 내가 강조하는 것은, 한국학이란 진실 속에서 찾은 것이기도 한데, 함께 가자는 ‘동행의 역사’다. 한중연의 사업들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선조들의 정신에서 미래를 향한 길을 더 많이 열어줘야 하는 것을 배웠다. 더 큰 바통을 미래의 주자에게 이어주는 게 우리 사명이라고 본다. 자긍심 높이는 콘텐츠를 발굴, 재창조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한중연 원장의 바람직한 역할이란 그런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가교 역할 말이다. 이게 내가 한국학을 하는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 ‘세종실록’을 오랫동안 읽어왔다고 들었다.

“1990년대에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분야 등에서 다섯 명이 모여서 우리 것을 공부하자, 그래서 ‘조선왕조실록 읽기’를 제안했다. 실록을 다 읽을 수는 없어서 여성, 가족 관계를 주로 읽다가 세종실록에 와서 독회가 멈췄다. 그래서 세종실록만 10년 이상 읽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세종시대에 매료됐다. 통치의 역사보다 인간의 역사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세종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을 때, 여기에 바로 과거 속의 오래된 미래가 있다, 이렇게 가야 한다, 이런 깨달음과 확신을 갖게 됐다. 우리 다섯 명은 거기서 역사의 나침반을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감동이 있었다.

세종의 성취는 그가 따뜻한 가슴 지녔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지런함 속의 열정이기도 했다. 그는 어려움 속에 살아가는 백성의 고충을 이해한 국왕이었다. 세종이 세계최초로 노비 출산 휴가제를 실시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1426년, 세종의 나이 30세였다. 세종은 노비 중에서도 애를 낳은 노비가 애 낳자마자 노동에 동원되는 걸 ‘인간으로서 가혹하다’ 해서 100일 휴가 줄 것을 제안했는데, 연민이 많았던 세종은 결국 산전산후 130일 휴가제로 이를 발전시켰다. 출산한 노비의 남편에게도 아내를 도와줄 수 있게 한 달 휴가를 시행했다. 동서고금 어디에도 없는 사례다.

나는 여기서 임금에게 직접 휴가 받은 노비들이 얼마나 행복해했으며 신바람 났을 지를 생각했다. 세종에게서 배운 따뜻하게 품어주는 긍정의 리더십이다. 한국학은 뭔가 거창하게 어려운 게 아니라, 역사의 훈훈함, 따뜻함을 자꾸 발굴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것 아니겠나?”

△ ‘식민사관을 옹호하는 뉴라이트계 인사’라는 비판도 있는데.

“뉴라이트가 만일 친일 미화하는 이들을 말한다면, 나는 정반대다. 나는 ‘수탈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도매금으로 넘겨서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열강의 침탈 아닌가? 나는 일본이 우리를 얼마나 잔악하게 압박하고 우리를 희생시켜 자기 발전에 활용했는지를 밝히는 석·박사 논문을 썼다. 일제 강점기에 아무리 근대적 발전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희생을 발판으로 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연구한 ‘광산’ 사례만 봐도 그렇다. 그 현장에서 우리 민족은 임금, 안전 문제 등에서 극심한 민족적 차별을 겪어야 했다. 식민지기 근대화란 어디까지나 우리의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인명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구잡이로 살상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는 것, 자존심 짓밟히고 문화 훼손도 얼마나 험했나? 우리의 자긍심 서린 문화에 대한 약탈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절대로 수탈론에 배치되는 논리에 동조하지 않는다.

또 내가 책에 ‘명성황후 민비’라고 썼다고 ‘친일’아니냐고 비난한 이들도 있다. 나는 명성황후 민비의 정치적 역할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람이다. 책에서 ‘명성황후 민비’를 계속 표기해야 하니까 ‘이하 민비로 한다’라고 했다고 문제 삼은 거다. 이런 문제를 언론중재위에 가서 다 정리했다. 뉴라이트에 가입한 적도 없다. 그러나 만일 뉴라이트가 제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이랄까, 또 우리의 성취, 그리고 ‘수탈론’을 위배한 것이라면 선을 그어야 한다고 본다.”

△ 대학총장, 대교협 회장, 국가브랜드 위원장까지 역임했다. 대학구조조정이 격심해지고 있는데, 대학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일단 교육정책은 일관성이 중요하다. 물론 변화도 필요하지만, 기조는 일관돼야 한다. 또한 대학 자율성도 중요하다. 대학 설립의 정신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나름대로 대학 특성화 하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백화점식 나열보단 각 대학의 능력, 규모에 따라 고유 특성을 추구하게 할 필요가 있다.

구조조정에 관한 한, 대학의 규모, 설립 주체, 수도권-지방 대학, 이렇게 다 입장이 제각각이다. 이를 한꺼번에 녹이기란 쉽지 않다. 특히 지방대가 몸살 앓고 있다. 자율성 인정하면서 교육정책이 일관성 있게 대학을 특성화하는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 가능성 없는 대학들은 과감히 조정하되 경쟁력, 잠재력 있는 곳은 마중물 부어서라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지속가능한, 신뢰성 있는 교육정책을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재설정해야 한다.

총장을 지낼 때나 대교협 회장할 때, 내가 항상 강조한 것은 졸업생들이 많이 취업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이 취업의 도장으로서만 존재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대학은 상아탑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용도 중요하나, 거기에서 실용성과 함께 진리 탐구에 가장 중요한 핵심 도장이 대학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의 고민은 행복한 인간을 길러내 이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대학은 지식순환의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도장 아닌가? 취업 장려도 대학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산소 같은 힘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교수들도 함께 협력해줘야 한다. 물론 그전에는 교수실 문이 낮았다. 학생들의 어려운 고민, 인생 고민을 함께 풀어줬다. 학생들은 위로받고,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교수들과의 인간적 관계가 가능했는데 지금 너무 삭막해졌다.

대학은 결국 교육이다. 대교협 회장 할 때, 교육협력위원회를 구성했다. 인성교육을 강조하면서 두 가지를 주문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성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장, 학부모 등과 같이 논의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또한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업들이 같이 도와줘야 한다. 기업이 대학과 손잡고 할 일은 인성을 지닌 인재를 채용하는 일이다. 기업도 인성을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런 작업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한데 지금 흐지부지 되고 있다. 좋은 일은 계속 지속해야 한다. 대학이 고민해서 미래 희망을 주는 역할 떠맡아야 한다. 교수들도 제자들을 애정 갖고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대학은 실용적인 부분에만 너무 집중돼 우려된다.”

최익현 편집국장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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