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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하나됨’이란 인류의 보편성 이념 위에 숨쉬는 작품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하나됨’이란 인류의 보편성 이념 위에 숨쉬는 작품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1.12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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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46강.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대 교수 ‘타고르 『안과 밖』’

'문화의 안과 밖’시즌2 고전읽기 강연의 ‘근대·현대 소실’ 섹션 마지막 강연은 타고르의 『안과 밖』이다. 강연은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대 교수가 맡았다. 타고르의 『안과 밖』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 작품이다.
타고르 1861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캘커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보여 여덟 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1878년 17세에 첫 시집 『저녁의 노래』를 출간했으며, 1913년 연작시 『기탄잘리』로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41년 80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2천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를 두고 근대 조선문단이 ‘詩聖’으로 불렀던 것은 이런 사정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그는 시 이외에도 소설, 수필, 극문학에도 뛰어났으며, 작곡가로서도 활동했다.

이번 강연을 진행한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대 교수는 델리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와 동국대 대학원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외교학 박사를 수료했다. 2011년 ‘10만 번째 귀화인’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부산외대 국제언어교육원장과 평생교육원장을 거쳐 현재 부산외대 인도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5년 12월부터 부산국제교류재단 제5대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타골의 문학사상, 그 한국적 수용」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고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힌디어로 번역해 인도에 소개한 바 있으며 방글라데시의 그림책 『말의 알을 찾아』를 번역하기도 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타고르

19세기 벵갈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꽃 타고르는 인도뿐만이 아니라 유럽 등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예이츠는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인간의 정신세계’를 찾아내는 그의 통찰력을 보고 그를 ‘인도문명’ 그 자체라 칭송했고 당시 영국 신문들은 하나같이 타고르를 윌리엄 블레이크와 비교하거나, 타고르의 작품세계에서 나타나는 리듬과 정서를 기독교 찬송가나 솔로몬의 아가와 비교하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또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일본의 오카쿠라 텐신을 비롯한 세계적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더 깊어진 그의 사유는 그의 에세이들과 여행기, 그리고 오랜 기간 교환했던 서신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타고르의 글들은 어느 한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 한계에 규정돼 있지 않은 전 인류적 정신적 자유의 중요성을 가리켰다.

『안과 밖』은 인도가 결정적인 역사적 교차로에 서 있을 무렵의 지적 의식을 깊게 내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20세기 초반 세계 곳곳에 일어났던 민족주의적 폭동을 배경에 놓고 1916년에 집필됐다. 1905년 영국 총독 커즌 경의 칙령에 의해 인도 벵갈주가 두 개의 지역으로 분리됐고 독립에 대한 생각과 갈망도 폭력적·비폭력적인 투쟁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러한 사상적, 국가적, 그리고 식민주의에 의한 분열의 연속이 타고르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안과 밖』의 이야기
이 소설은 일인칭 시점에서 서술되는데 세 명의 이야기꾼, 부잣집에 시집간 변변찮은 배경의 어린 아내 ‘비말라’, 근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신사이자 비말라의 남편인 ‘니킬’, 그리고 니킬의 친구이자 영민하고 술책이 뛰어난 스와데쉬 운동의 리더 ‘산디프’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눈여겨볼 점은 비말라 이외에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등장인물이 두 사람이나 있음에도 소설의 시작과 마무리는 여성인 비말라의 독백으로 끝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 속에서도 중심축으로써도 활약한다는 점이다.

타고르는 숭고한 의도를 가진 민족주의적 운동의 양면성을 강조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어떻게 폭력적인 양상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다면적으로 구체화한다. 또, 이 작품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니킬의 집안에서 일어나는데 여기서 ‘집’이란 인도라는 국가의 상징적 표현이다. 타고르는 그들의 독백을 통해 여러 개념들을 다루는데,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반영하는 각기 다른 가치관들은 민족주의와 반식민주의 운동에 대해 타고르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토론되는 그의 내면의 목소리와 도덕적 상상력이라 볼 수 있다. 즉, 타고르는 민족주의의 양상 속에 존재하는 욕망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투영하는 것이다.

여성 그리고 사회적 베일을 넘어
이 작품에서 비말라의 역할은 무척 흥미롭다. 소설 초반의 비말라는 당시의 보편적인 인도 여성상을 반영한다.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전통적인 부인으로서의 의무를 굳게 믿으며 여성으로서의 헌신이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한편, 니킬은 그 시기의 여성들 스스로가 자진해서 지향했던 지리적, 사회적 제약, 그리고 여성의 공간과 그 밖의 공간을 나누던 관계는 단순히 전통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믿었다. 눈에 띄는 것은 타고르가 니킬을 통해 보여주는 비말라의 자유를 향한 발걸음이 억압을 숨긴 위선적인 가르침이 아닌, 그녀가 자유를 찾아 가는 길에 폭 넓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니킬은 절대로 자신의 관점을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심지어 비말라가 애국심의 물결에 떠밀려가 버렸을 때에도 더 많은 이해와 사랑으로 인내하며 기다렸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타고르가 강조하는 관점 중에 하나는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이다. 과연 헌신하는 것이 사랑인지, 사랑하는 것이 헌신인지, 아니면 헌신이 사랑을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 것인지에 대한 주제는 이 작품에서 거듭된다.

스와데쉬 운동
스와데시, 즉 외래품을 배척하는 이 운동은 인도 독립운동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정치적 전략이었다. 식민지 통치에 대한 항의는 외래품을 불에 태우는 공공행동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타고르는 이 광기에 오히려 가난한 가게 주인과 빈곤한 사회적 약자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는 것을 지적하며 민족주의적인 스와데쉬 운동에 대한 윤리적 의문을 던졌다. 부유한 이들은 이러한 허영심을 감당할 여건이 됐지만 이미 비참한 삶을 살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은 더 나은 차선책도 없이 희생돼야 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급작스런 민족주의적 운동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었던 여성들을 포함한 당시 벵갈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기도 했다.

타고르는 스와데쉬 운동이 비말라를 포함한 벵갈 여성들에게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들 자체도 실제로 그 운동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는 몰랐지만, 호기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듯이 그 화려함에 매료됐다. 본래 사회적 베일 속 공간에만 국한돼 있었던 여성들이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보기 위해 집안이라는 베일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인도 독립운동 중 스와데쉬운동에 관한 토론은 중대한 국가적 논쟁이었다. 이 중 타고르와 간디의 담화는 유명하다. 인도 그리고 유럽에서 독보적인 문학적, 철학적 지성이라 알려졌던 타고르와 스와데쉬 운동, 인도독립운동, 그리고 비폭력운동으로 인도 안팎에서 반식민주의의 중심에 있었던 간디는 상호간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타고르는 간디의 비폭력주의 속에도 폭력성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논쟁이 이 두 훌륭한 인물들의 상호간 존경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간디는 항상 타고르를 ‘Gurudev(훌륭한 스승)’으로 여겼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만 보아도 인도 근대사의 전개에 있어 타고르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느낄 수 있다.

삶의 완전성
타고르의 주된 관심사는 역사책 속에서 희미해져 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역사와 미래에 아무런 주장도 할 수 없는 패배한 사람들이었을 뿐일까. 그렇게 난폭하게도 만들어졌던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들을 중심으로 그의 글들은 국가주의, 문명의 위기, 인간의 종교, 역사의 인간화, 민족주의의 민주화에 대한 주제들을 다룬다. 타고르는 식민지시대였던 그 당시 인간문명이 향하고 있던 방향성에 대해 비판적인 역사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타고르의 역사관을 짧게 요약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타고르는 인류 역사가 ‘통일과 분단, 확대와 축소의 움직임’으로 형성돼왔지만 인류사가 결국 진보하며 전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타고르의 작품세계에서 보이는 세계관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면,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의 작품이 당시 시대상에 반하며 도발적이고 자칫 논란을 일으킬 법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숙한 50세란 나이에 집필된 이 작품에서 타고르는 진실과 현실을 좀 더 대담하게 실험하며,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적 장벽을 허물고 삶의 완전성(푸르너타, Purnata)을 지향해가도록 자극했다. ‘삶의 완전성의 추구’란 타고르의 작품세계에서 반복되는 주제 중에 하나인데 이는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뻐르다 혹은 사상적 ‘베일’을 넘어 자유를 찾는 것이 삶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타고르에게 삶의 완전성이란 개념은 단순히 인도와 인도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다양한 사상적 경계에 속박되지 않고 윤리적 고찰을 통해 자유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정의’라는 이름을 가진 ‘선’이 어떻게 선과 악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간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류가 자유라는 숙제를 완성하기 위해 도덕적 상상력을 한 국가에 구속시키지 않고 그보다 더 큰 틀을 통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타고르는 자유에 대한 윤리와 인간의 본성이 진실과 정의감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타고르의 『안과 밖』은 우파니샤드에서 강조하는 ‘하나됨’이라는 인류의 보편성이란 이념에서 살아 숨 쉬는 글이다. 그리고 타고르에게 역사란 아직 끝나지 않은, 인류가 이상의 구현을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이기에, 타고르가 남긴 선물은 인류의 보편성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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