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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숲길에서 마주친 길동무
호젓한 숲길에서 마주친 길동무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6.01.11 10:1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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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45. 동박새
▲ 동박새 / 사진출처= 블로그 쓰리박의 탐조기행(threepark.tistory.com)

동박새(Zosterops japonicus, Japanese white-eye)는 참새목 동박샛과의 소형조류로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해안가나 제주도와 울릉도 등 섬 지방에 흔한 텃새다. 꽃 중에서도 동백꽃의 꿀을 좋아해 동백나무숲에 많이많이 날아든다. 아마도 ‘동박새’의 ‘동박’은 이 새가 겨울 冬柏나무에 모여들어 동백 꽃물(nectar))을 즐겨 먹는 탓에 붙은 이름이라. 동박은 동백의 방언으로 일부지방에서 동백기름을 동박지름으로 쓰는 것을 봐도 그렇다.

필자는 땅에 사는 달팽이(land snail)를 찾아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아쳤었다. 여름에는 풀숲이 우거지는 탓에 대형 종을 채집하고, 겨울이면 소형짜리를 잡는다. 여관도 아닌 연탄 냄새 풀풀 풍기는 여인숙에서 잠자고, 후줄근한 이른 아침엔 맛동산 과자 한 봉지와 막걸리 한 사발로 때우고, 진종일 발품 팔아 아등바등 휘저으며 헤집고 다녔지. 사실 채집을 나가면 불현듯이 생존본능이 발로해 온통 먹는 것에 정신이 팔리고 신경이 곤두선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麗水근교의 적막한 동백나무숲에서 은근슬쩍 홀로 허기를 채우느라 꽃잎하나를 통째 싸잡아 움켜쥐고, 후루룩 꿀 냄새 물씬 나는 진득한 꽃물을 둘러 마시고 있는데, 바로 이야기주인공 동박새가 지척지간이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아침을 걸게 먹고 있던 그 모습이 말이다. 이렇게 호젓한 숲에서 따로 만난 동박새가 마냥 친구처럼 정답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지사. 놈에게 훼방꾼이 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나 제나 입가엔 샛노란 동백꽃가루를 잔뜩 묻히고 있었더랬다.

동박새(white-eye)는 몸길이 11.5cm 남짓이고, 날개 5.6~6.3cm, 체중 10~13g 정도다. 등은 올리브 잎과 같은 어두운 黃綠色이고, 배는 淡綠色이며, 옆구리는 연한 갈색이다. 또 날개와 꽁지는 녹갈색이고, 턱밑과 목의 앞쪽인 멱(throat)은 노랑 또는 녹황색이다. 1~1.3cm인 부리는 가늘고, 등이 다소 아래로 굽었으며, 끝은 뾰족하다. 부리 아래 뒷부분은 푸른색을 띤 잿빛이고, 그 외에는 갈색이다. 무엇보다 눈꺼풀에 하얀 가는 깃털이 빽빽하게 둘러 난, 은색 둥근 눈테(eye ring)를 가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까만 눈알에 또렷한 하얀 고리를 가졌기에‘white-eye’라 부른다.

동박새는 잡식성(omnivorous)으로 여러 곤충·나무열매·꽃물을 먹는다. 꽃물 먹으며 벌나비(蜂蝶)가 없는 겨울동백의 꽃가루받이를 돕고, 여름의 해론벌레를 잡아먹으니 이론새(益鳥)인 셈이다. 한데 그 거센 놈들이 먹을 게 없으면 서로 잡아먹기도 한단다.

지상 1~30m 자리에 7~10일에 걸쳐 나뭇가지에, 이끼·지의류·짐승의 털들을 모아 치덕치덕 거미줄로 검질기게 꽁꽁 묵고 엮어, 지름 5.6cm, 깊이 4.2cm의 찻잔 꼴의 둥지를 늘어지게 짓는다. 알자리(卵座)에는 가는 식물줄기나 보드라운 털을 깔고, 가끔은 남의 집에서 둥지거리를 훔치기도 하며, 같은 집을 대부분 1번만 쓰지만 3번까지 재사용한다. 5∼6월에 한배에 4∼5개의 희거나 푸른색의 알을 낳아 암수가 교대로 지극정성으로 품는다.

암수가 미리 짝진 일부일처로 생식기에는 수컷이 큰소리 지르면서 세력권을 지킨다. 그런데 같은 종은 얼씬도 못하게 하지만 다른 종에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아주 사회성이 있어서 다른 종류의 새들과도 무리를 이룰 뿐더러 동박새들끼리 서로 상대의 깃털을 손질(깃털다듬기, preening)해주는 붙임성 있는 새다. 나무에서 먹이를 찾을 뿐 여간해선 땅바닥에 내려앉는 법 없이 없다.

한반도·일본·중국·베트남·타이완·필리핀 등지에 서식하고, 특히 일본에서는 ‘白目’이라 부르며, 일본 새들 중에서 優占種(dominant species) 이라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예부터 여러 그림들에 많이 등장했고, 지금도 새장(鳥籠)에 넣어 키운다고 한다.

새를 移動(migration)에 초점을 맞춰 보자면, 한 곳에 늘 머무는 텃새(留鳥,permanent resident bird)와 먼 길을 오가는 철새(migratory bird)로 크게 나눈다. 철새 중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지내면서 새끼를 치는 여름철새는 고만고만하게 자잘한 숲새들이고, 시베리아 등 북에서 산란하고 우리나라에 와서 겨울을 지내는 겨울철새는 거의가 덩치 큰 물새이다.

또 철새 중에서도 남이나 북으로 가는 도중에 잠깐 우리나라에 머무는 나그네새(通過鳥, bird of passage), 태풍 등으로 자칫 잘못해 엉뚱한 곳으로 날려 온 길 잃은 새(迷鳥,vagrant), 동박새처럼 여름엔 높은 산지에서 송충이 등의 벌레를 잡아먹고 살다가 벌레가 없는 겨울엔 야산이나 들판으로 내려와 나무열매나 꽃의 꿀물을 먹고 사는 떠돌이새(漂鳥,wanderer)가 있다.

이처럼 계절에 따라 높고 낮은 곳으로 옮겨 다니는 전형적인 떠돌이새에는 동박새와 함께  굴뚝새(Troglodytes troglodytes)도 있다. 굴뚝새는 참새목 굴뚝새과의 꼬마 멧새이면서 붙박이 새다. 몸길이 10.5cm, 날개길이 약 4.7∼5.5cm로 짧은 꽁지를 바짝 세울 때도 있고, 까닥까닥 온 몸을 젖히며 깐족거린다.

겨울이면 안 빠지고 우리시골 안채 뒤꼍(後庭)의 굴뚝에 자주 날아들었다. 풀풀 내뿜는 매운 굴뚝 연기로 까맣게 그을린 초가집을 들쑤시고 다니느라 제 빛을 잃고, 말 그대로 새까만 굴뚝새가 되었다. 친구들의 얼굴이 숯검뎅이처럼 새까맣기나 하면 굴뚝새가 됐다고 놀리지 않았던가. 오늘따라 굴뚝새도, 또 저승으로 먼저 간 동무들이 그립구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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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현 2016-08-14 14:10:24
동박새는 먹을 것이 없으면 서로를 잡아먹는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동박새는 매우 조심한 행동을 하는 새이며 서로를 공격하는 일은 없습니다. 또한 상대방에게 데미지를 줄 정도의 생체적인 무기도 없습니다. 부리는 벌새의 부리 만큼 매우 연약합니다. 암수 구별은 육안으로 식별이 되는데 이것은 전문가가 봤을때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안목으로는 암수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암수 특징은 앞가슴의 담록색이 선명한 것이 수컷이고 암컷은 흐리면서 회색이 더 많습니다.

김명현 2016-08-14 14:01:03
동박새는 먹이가 없을때는 산과 들에 있는 작은 씨앗을 먹기도 합니다. 동박새가 좋아하는 먹이는 꽃과 꿀 외에 나무의 수액도 좋아하며 여름철에 산과 들에서 나오는 각종 과일과 야생의 열매를 좋아합니다. 산딸기나 복분자열매 그리고 뽕나무 열매와 자두 복숭아 등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길들여서 일반 가정에서 기를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 인공 번식에 성공한 사례는 없습니다.

김명현 2016-08-14 13:54:33
동박새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부분 추측으로 지어낸 내용들이 돌아다니거든요. 동박새는 잡식이 아닙니다. 오리지널 초식입니다. 1년 내내 꽃과 과일과 어린 새싹만 먹고 삽니다..... 특히 과일은 무화과, 홍시감, 등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의 벌새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벌래 근처에는 가지도 않을 뿐더러 먹는 음식에 벌래가 있으면 그 음식을 먹지도 않는 순수 초식성 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