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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좋은 삶이 가능한 좋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사회학자, 좋은 삶이 가능한 좋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1.04 15: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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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응답하는 사회학: 인문학적 사회학의 귀환』(문학과지성사 刊) 내놓은 사회학자 정수복
사회학자/작가 정수복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문학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유학해 세계적인 사회학자 알랭 투렌이 주도하는 ‘사회학적 분석 및 개입 연구소(Centre d'Analyse et d'Intervention Sociologiques)’에 소속돼 연구했으며 1988년 ‘지식인과 사회운동’에 대한 이론적 경험적 연구를 마치고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귀국후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1994년 이후 ‘공공의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으로서 시민운동 현장에 적극 참여하며 연구했지만,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파리로 거쳐를 옮겨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사회학적 분석 및 개입 연구소(CADIS)’ 에 소속돼 연구하면서 ‘객원교수’로 강의하기도 했다. 쓰거나 번역한 책에는 『현대 프랑스 사회학』(번역서), 『새로운 사회운동과 참여민주주의』, 『의미세계와 사회운동』, 『현대성 비판』(번역서), 『녹색대안을 찾는 생태학적 상상력』, 『시민의식과 시민참여』,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 『책인시공―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등이 있다.

한국사회에 사회학자는 많다. 대학 교수로만 친다면, 한 전수조사에 따르면 236명이다. 이들은 모두 특정 기관에 적을 둔 학자들이다. 그런데 ‘독립적 사회학자’라는 이름표를 붙인 사회학자가 있다. 열심히 글 쓰고, 그래서 스스로 작가라고 자처하는 연구자다. 그가 바로 정수복 박사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책 한 권에 새로운 마침표를 찍었다. ‘인문학적 사회학의 귀환’이란 부제를 단 『응답하는 사회학』이다.
책 곳곳에 날선 비판이 사회학계 내부와 대학을 근간으로 한 제도로서의 사회학을 겨냥하고 있다. 사회학자로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나온 것이어서 가감 없이 직절적인 표현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학계는 등재지에 게재하는 논문의 편수로 학자의 학문적 업적을 산술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제도화했다. 그 결과 두 가지 부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첫째, 원고지 150매 내외로 한정되는 규격화된 논문은 양산됐으나 오랜 기간 동안 긴 호흡으로 이뤄지는 학문적 저작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됐다. 둘째, 학문적 논의가 교양 시민과 분리돼 몇 명 안 되는 전공 분야 학자들 사이에서만 폐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무엇을 위한 사회학이고 누구를 위한 사회학인가를 묻지 않고 그냥 자신의 전공 논문 생산에 매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비판만 던진 건 아니다. 성찰과 모색이 곳곳에서 동행하고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학의 밑그림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인간을 사물이 아니라 인간으로 대우하는 인간주의 사회학이다. 그러기에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19세기 말에 형성된 근대 주류 사회학의 자연과학적 인식 모델을 거부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해석학적-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 역시 부르디외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학적 자기분석을 시도했다.
과연 ‘독립적 사회학자’ 정수복은 이 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지려 했던 것일까. 잠시 파리에 체류 중인 그를 이메일로 만나봤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선생님께서는 10여년 파리에서 자발적 망명 생활을 했다. 2012년 귀국 후 어느 기관이나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 ‘사회학자/작가’로 살아왔다. 저술도 흥미롭지만, ‘자발적 망명’과 독립적 사회학자라는 말이 더 인상적이다.
“동아시아 지성사에는 자발적 은둔의 전통이 있다. 세속으로부터 물러나 거리를 두고 세상을 상대화시켜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며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그려보는 전통이다. 다른 한편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등은 강요된 은둔이라고 할 수 있는 귀양살이 동안에 이전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학문 예술을 이룩했다.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도 강제 이주나 망명은 새로운 사상과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나의 자발적 망명은 동서양의 그런 오래된 전통에 이어져 있다. 1990년대 나는 대학 밖에서 학문 활동을 하면서 환경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에 관여하는 ‘공공의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2002년 개인적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자발적 망명’의 길을 떠났다.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자리를 쟁취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자유롭게 한국을 떠나 10년이란 세월을 파리에서 보낼 수 있었다. 파리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는 그냥 사회학자에서 ‘사회학자/작가’로 변신했다. 대개 사회학자는 대학 교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작가들은 대체로 소속이 없다. 파리 망명시절 이후 나는 소속이 없는 독립적 지식인으로 살아왔고 2011년 말 귀국 이후에도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소속이 없다는 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도 지시를 받지 않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을 뜻한다. 지금 생각하면 불리한 상황을 나 나름대로 반전시키거나 역전시키기 위해 ‘자발적 망명’의 길을 선택한 것 같다.”

△ ‘응답하는 사회학’이란 제목이 재밌다. 분명, 응답이란 우리가 발 디딘 현실, 사회로부터의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읽힌다. 사회학 자체가 현실을 깊이 바라보는 학문일텐데, ‘응답하는 사회학’ 나아가 ‘인문학적 사회학’으로 명명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회학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짜여지고 움직이는가를 보여주고 그런 사회의 구성과 운영 방식이 우리들 각자의 개인적 삶을 어떻게 구속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들 각자의 삶이 좀 더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게 하는 학문이다. 말하자면 사회학자는 더 나은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지식을 생산하고 그 지식을 동료 시민들과 공유해야 한다. 사회학이 ‘좋은 사회’를 위한 지식을 탐구한다면 인문학은 ‘좋은 삶’을 위한 지식을 탐구한다. 그렇다면 좋은 삶이 가능한 좋은 사회를 모색하는 사회학자는 인문학적 사회학자일 수밖에 없다. 사회학은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과 대화할 때  깊고 두터운 지식, 영감을 주고 감동을 주는 인문학적 지식을 창조할 수 있다.”

△‘인문학적 사회학’이란 말이 ‘사회학’에 전제될 수 있는가.
“인문학적 사회학이 아니라 과학적 사회학의 패러다임 안에서 사회학 지식을 생산하는 사회학자에게도 인문학적 성찰은 필수적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학은 사회공학이 돼버린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럴 경우 사회학자는 권력이나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양식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지식을 만들며 살아가는 ‘지식기사’가 될 것이다.”

△ 책의 부제는 ‘인문학적 사회학의 귀환’으로 돼 있는데 막상 책 안으로 들어가면 사회학을 과학으로서의 사회학과 예술로서의 사회학으로 구별하고 있다. 인문학적 사회학과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어떤 관계에 있나.
“인문학적 사회학이라는 말이 일단 과학으로서의 사회학과 구별되는 해석학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사회학을 말한다면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회학자 개인의 독창성, 고유성, 창조성을 십분 인정하는 사회학이다.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이 사회학자의 개성을 객관성과 중립성의 원칙으로 억압하고 위장한다면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사회학자의 개인적 삶의 궤적마저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객관화시킨다.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그런 자기 객관화의 바탕 위에서 자신의 고유한 문제의식과 감수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회학이다. 그럴 경우 사회학자는 소설가나 시인과 마찬가지로 상호주관적인 의미망을 구성하는 위치에 선다. 좋은 사회학 논문이나 저서는 좋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자기가 사는 세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사회학자 개인의 삶에서 출발하며 냉철한 설명과 더불어 따뜻한 감동을 주는 사회학이 될 수 있다. 사회학적 연구 결과는 작품이 돼 그 글을 읽는 동료 시민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동시에 머리를 맑게 해줘야 한다.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사회학자 개인의 삶과 연결된 사회학적 앎을 추구하면서 개별성을 보편성으로 연결시킨다.”

△ 우리 학계에는 학술적인 것과 대중 교양적인 것을 어떤 고정된 것으로 구분하고, 대중적 글쓰기를 가치폄하 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사회학자 정수복’의 글은 이 경계를 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술적 글쓰기가 지나치게 ‘논문형식’ 일변도로 경직화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좋지 않다고 본다. 스스로 자신의 대중적 글쓰기를 평가한다면? 또 이런 대중적 글쓰기에서 조심해야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학자, 작가, 기자는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나는 ‘사회학자/작가’로서 학문적인 글도 쓰고 대중적인 글도 쓰며 그 중간에 위치하는 글도 쓴다. 사회학자로서 학술 논문을 쓰기도 하지만 제도권의 평가체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논문의 형식을 취하지만 자유로운 문체를 구사할 수 있다. 동료들의 논문이나 저서를 읽고 논평을 하는 ‘사회학 평론’이라는 장르를 개발하기도 했다. 나는 학자로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동료학자들과 나누기 위해 논문보다는 학술서적의 형식을 빌린다. 그리고 동료 시민들과 나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기 위해 여행기, 산문, 일기, 인문학적 에세이 등의 글을 쓰기도 한다. 학술 서적에는 문학과 예술의 분위기를 가미하고 교양서적에는 나의 개인적 사색과 더불어 사회학자로서의 감수성을 표현한다. 사회학자로서의 글쓰기와 작가로서의 글쓰기는 서로 삼투 현상을 일으킨다. 학자로서 치열하게 연구하면서 그와 동시에 작가로서 개성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동료 학자들이나 동료 시민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면 지속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자신의 개성적인 글쓰기로 표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회학자와 작가 사이의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대중적 글쓰기를 한다고 사회학자의 위치에서 멀리 벗어나 정치평론가나 사회평론가가 돼버리거나 감성적 글쓰기를 하는 대중적 작가가 돼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잘못하면 ‘사회학자/작가’가 아니라 덜된 사회학자나 유사 평론가 또는 어설픈 작가가 되고 말 것이다.”

△ 이 책은 드물게 ‘학자들과의 대화 소통’에 무게를 두고 있다. 노명우, 조은, 송호근 등의 저작에 대해 깊은 분석을 하고 있다. 일종의 ‘응답’으로 읽히는데, 책 속 지면의 상황과 달리, 실제 학술대회나 기타 자리에서 학자들 간의 이런 진지한 대화와 소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 않나? 동료 사회학자들과의 대화, 소통의 최선의 방식은 책에 실린 ‘사회학평론’과 같은 글쓰기 외에는 없을까?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말과 글을 통해 이뤄진다. 학자들 사이의 소통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의 소통에서는 말보다는 글이 더 중요하다. 학자의 연구 결과는 논문이나 저서라는 글의 형태로 발표된다. 그러므로 학자들 사이의 소통은 동료학자가 쓴 논문과 저서를 읽고 그것을 자신의 논문이나 저서 속에서 인용하거나 참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에 대한 비판이나 반론을 펼 수도 있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한 걸을 더 나아가는 연구결과를 발표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의 사회학자들은 동료사회학자들의 글을 잘 읽지 않고, 읽었더라도 인용을 하지 않고 참고문헌에도 넣지 않는 경향이다. 외국학자들의 최신논문과 저서를 인용해야 무언가 실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한국의 사회학자라면 사회학 내의 같은 전공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전공 분야의 논문이나 저서는 물론 인문학이나 다른 사회과학 분과에서 나온 글도 읽고 활용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학문 공동체가 형성되고 우리의 문제의식이 심화되며 자주적인 우리 학문의 길이 열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비학문적 연고주의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누구나 학계의 일원으로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나 인간적으로 교류하면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말과 생각의 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막상 대면관계에 들어서면 여전히 서열과 친소를 가르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때문에 나는 일단 ‘사회학평론’을 통해 자유로운 학문적 의견 교환을 하는 작업을 고수하고 싶다.”

△ 최근 그 어느 분야보다도 사회학계에서 뚜렷한 자기성찰적 목소리가 많이 들려오고 있다. 원로들, 중진들, 그리고 젊은 소장학자까지. 책의 제2부 ‘사회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는 학자의 길을 선택한 삶을 객관적으로 조명한, 또 다른 의미의 자기민속지적 접근이다. 독립적 사회학자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선생님 처지에서 본다면, 오늘 한국 사회학이 직면한 위기를 ‘제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대체 한국 사회학은 지금 어떤 위기에 직면해 있는가?
“나는 대학 밖에 위치하는 ‘사회학자/작가’이기 때문에 학문적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내가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논문과 저서를 마음껏 읽는 편이지만 그와 동시에 대학 안에 위치한 동료 사화학자들의 글도 가능하면 많이 읽으려고 애쓴다. 그런 나의 독서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현재 한국의 사회학은 세 가지 위기에 처해있다. 첫째, 대학 내에서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비실용적 학문이라는 이유에서 교수 충원이나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으로 대학에서 사회학과가 점차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둘째, 학문적 정체성의 위기다. 정치학이나 행정학, 경제학이나 법학과 달리 연구 대상이나 연구 범위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인구, 노동, 가족, 정치, 경제, 법, 군대, 종교, 문화, 예술, 과학, 기술, 보건, 의료, 환경, 교육, 여성, 역사, 일상생활, 세계체제 등 거의 모든 것을 다 연구하면서 아무 것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세 번째는 적합성의 위기다. 한국의 사회학자들이 쓰는 논문과 저서들이 현재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동료 시민들의 삶과 어떻게 관련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첫 번째 위기는 둘째와 셋째 위기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사회학자들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종합하면서 일반이론을 구성하는 기초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고 세 번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국 이론을 한국에 수입 적용하기보다는 한국의 동료 시민들이 살아가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진지하고 심층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적합성이 높은 자생적인 사회학 이론을 구성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인접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분야의 동료학자들과 대화하며 그들에게 배운 것을 융합하는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경우 사회학은 인문계와 사회계 이공계를 포함하는 모든 학생이 이수해야 하는 기초 교양 과목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사회학자는 사회학과만이 아니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다른 학과와 법학대학원 등 전문대학원의 교수로도 충원될 수 있을 것이다.”

△ 이건 조금 다른 질문인데, 최근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사회학과 교수 전수조사 내용을 후기사회학대회에서 발표했다. 미국 박사가 53.2%가 넘는 현실도 ‘사회학 위기’와 관련 있다고 보는가? 
“한국의 사회학자들이 학문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배적인 학문적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 사회학은 해방 이후 미국에서 수입된 신생 학문으로서 지금까지도 미국 사회학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이른바 일류대학을 나와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젊은 학자들이 대학 교수로 충원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다수가 미국에서 배운 사회학을 넘어서는 다른 사회학을 생각하지 못한다. 영어 논문과 저서를 주로 읽고 한글 논문을 주로 쓰며 때로 영어 논문도 쓴다. 미국의 주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학문적 목표이며 자부심의 근원이다. 문제는 미국 박사가 아니라 한국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그 결과 한국의 동료 시민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지식을 산출하지 못하는 데 있다.

앞으로도 어떤 사람을 사회학과 교수로 뽑을 것인가는 한국 사회학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변수다.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하든 미국이든 프랑스든 독일이든 일본이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든 한국의 사회학자라면 남한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와 세계로 확대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기 나름의 개성 있는 사회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에서 어느 고등학교, 어느 대학을 나왔고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했느냐는 외면적 평가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진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사회의 현실과 관련해 적합성이 높은 독창적인 연구를 했는가가 학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 SSCI 영어 논문 편수도 중요하지만 논문의 문제의식과 적합성 그리고 독창성을 고려해서 학문적 업적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사회학자라면 우선 우리말로 훌륭한 논문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영어 이외에 다른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모국어, 영어, 제2외국어를 해서 최소한 세 개의 사회 이상에 대한 비교의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외국어라면 점점 더 영어 일변도로 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혹 이런 사회학 위기 나아가 사회과학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그것이 제도 안에서 가능하리라고 보는가? 선생님이 말하는 ‘인문학적 사회학’은 과연 적절한 타개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주류 경제학의 경우에 분명하게 들어났지만 분석 방법론을 세련화하는 경쟁에 시달리는 경제학은 현실 경제를 설명하거나 경제위기를 예측하는데 무력한 지식만 생산하고 있다. 사회학이 자연과학이나 주류 경제학을 모델로 삼아 방법론의 세련화 경쟁을 계속한다면 사회학은 언제나 자연과학이나 경제학에 비해 열등한 학문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고 대학 제도 내에서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사회학은 역사학, 철학, 문학 등 인문학과 신학, 미학, 법학, 정치학, 행정학, 인류학, 심리학, 지리학 등 인접학문과 대화하고 그들 사이의 대화를 촉진하는 ‘사회자’ 역할을 하면서 지식세계의 전체적인  조감도를 그려야 한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인문학적 사회학이다. 한국의 사회학이 인문학적 사회학이 되려면 한국 근현대사와 한국 문학, 한국 철학 연구 성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에서 대외의존성이 낮고 가장 높은 독자성을 지닌 학문은 국어학, 국문학, 국사학이다. 최근 들어 한국철학도 독자적인 연구물을 산출하고 있다. 사회학도 독자성을 강화하고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와 철학 문학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유학 후 25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선생님께서는 “이제야 비로소 나만의 사회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런 고백이랄까, 성찰은 값진 것으로 보이는데, ‘나만의 사회학’은 과연 어떤 것인가? 인문학적, 성찰적 사회학의 모습을 한 것은 분명하겠지만, 사회학이 ‘제도’ 속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현실에서 ‘나만의 사회학’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기업화가 한참 진행된 한국의 대학 체제 내에서 그리고 SSCI에 등재된 영어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연구의 최종 목표가 돼버린 연구 풍토에서 내가 말하는 인문학적 사회학이 뿌리 내리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시도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대학의 지배체제가 요구하는 교수 평가 기준에 맞추기도 벅찬데 교수들에게 인접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종합하고 융합하는 연구를 하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좋은 삶이 가능한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사회학 지식을 창조하는 것을 자신의 연구 활동의 목적으로 삼는 사회학자라면 대학 안에 있든 대학 밖에 있든 인문학적 사회학의 지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도 ‘안’에서도 그런 사회학자들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제도 ‘밖’에서 내 나름대로 나의 문제의식에서 우러나온 나만의 색깔을 가진 나의 문체로 쓴 대중과 소통하는 ‘나만의 사회학’을 해 나갈 것이다.”

△ 앞으로의 저술 계획을 듣고 싶다.
“나는 2016년에도 ‘푸른역사아카데미 서평모임’과 ‘아산서평모임’을 통해 국내 학자들이 쓴 저서를 중심으로 인문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함께 모여 생각을 주고받는 모임을 계속할 것이며 거기에서 얻은 영감과 생각들로 동료 시민들을 위한 책을 쓸 것이다. 사회학자로서 동료 사회학자들과 다른 분야 학자들을 위해 ‘사회학 평론’을 계속할 것이며 한국사회학의 전통을 ‘발명’하기 위해 ‘한국사회학사’ 집필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고도 여유가 있다면 조은의 『침묵으로 지은 집』에 대한 분석에서 잠시 언급한 한 바 있는 개인의 고통을 개인사, 가족사, 사회사라는 3차원과 최소 3세대 이상의 역사를 통해 분석하는 ‘사회인간학’의 이론, 방법론, 사례연구를 집필할 계획이다. 작가로서 나의 개인적 삶이 드러나는 성찰적인 글쓰기도 계속해 나갈 것이다. 2000년대 파리에서의 자발적 망명기간 중에 쓴 일기를 정리해 펴낼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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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현 2016-01-05 06:17:59
한 번도 책은 못 읽어봤지만 명성은 익히 들어알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