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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성 행사 대신 ‘한국사회 변화상’ 정리 선택 … 균형적 서술·냉정한 평가 시도
일회성 행사 대신 ‘한국사회 변화상’ 정리 선택 … 균형적 서술·냉정한 평가 시도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2.29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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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광복 70년 시리즈’ 전 6권 출간

 

결론부터 말한다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시리즈는 균형적인 서술을 확보한 책이 됐다. 좌우 모두에서 ‘만족’할 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학문적·합리적 토론과 논쟁의 무대만큼은 제공했다는 평이 솔직할 것 같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으로 뜨거운 한 해였다. 학술대회, 세미나가 곳곳에서 열렸고 기념행사도 잇따랐다. 의미 있는 자리였지만, 아쉽게도 일회성이었다. 이와 달리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이배용)은 2014년부터 조금 다른 준비를 했다. 추경예산에서 4억8천만원 규모의 경비를 신청, 확보해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통시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런저런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보다 각 분야별로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가감 없이 그려보자는 의도였다.

그렇지만 국정감사를 받는 기관이라 야당은 ‘돋보기’ 시선을 계속 던졌다. 자칫 친일·독재 미화의 70년 정리가 될까 봐서다. 이런 긴장감과 견제 속에서 마침내 결과물이 나왔다. 시리즈는 모두 6권으로 『한국의 외교 안보와 통일 70년』(남성욱 외), 『한국의 산림녹화 70년』(이경준 외), 『한국의 정치 70년』(이완범 외), 『한국의 경제발전 70년』(이제민 외), 『한국의 문화 70년』(정진석 외), 『한국의 교육 70년』(이돈희 외)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시리즈는 균형적인 서술을 확보한 책이 됐다. 좌우 모두에서 ‘만족’할 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학문적·합리적 토론과 논쟁의 무대만큼은 제공했다는 평이 솔직할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의 특징은? 대표집필진 상당수를 원로 명예교수로 꾸렸다는 것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신명순(정치학), 안국신(경제학), 이경준(임학), 이돈희(교육학), 이인규(식물학), 이제민(경제학), 진덕규(정치학) 명예교수 등이다. 이들이 책의 기획 성격에 맞게 필진을 섭외했다는 게 정영순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처장의 설명이다. 물론 필진들의 적합성을 따지면 ‘적재적소’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고 할 수는 없다. 단적으로 종교 쪽은 종교학자가 참여하기보다 일간지 기자가 정리했는데, 이는 ‘현장’의 의미를 조금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원로 명예교수가 대표집필 맡고 필진 자유롭게 구성

정영순 연구처장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을 연구책임자로 선택한 데는 이들 원로 명예교수들이 실제로 70년간 각 분야의 중심에서 연구와 실제 정책 수립을 이끌면서 이론과 실전을 겸비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이 책이 기획한 의도를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대표집필자와 필진들 구성 이후 이들은 1년간 해당 분야별로 수차례 모임을 통해 주제와 내용을 공유하는 한편, 국내외 발표회를 거치면서 논의를 수렴했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는 독일 보쿰에서 발표회를 열었는데, 이는 이번 시리즈의 성격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외교안보 분야 대표집필을 맡은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광복 70주년을 ‘분단 70주년’으로 이해하면서, 통일 지향을 위해 해외동포사회를 비롯 해외에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분야 성과를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독일 통일의 국제적 변수 활용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로컬에 매몰되지 말고 분단극복을 위해 글로벌한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렇다고 결과물이 ‘전혀 새로운’ 수준 높은 학술적 성과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애초 그게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달콤한 자화자찬식의 형용사를 나열해 대한민국의 70년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료와 실제 수치를 그거로 광복 이후 우리가 걸어온 길을 냉정히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이 평가가 미래를 살아갈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함께 고민했다”고 말하는 이배용 원장의 지적대로 ‘냉정한 평가’와 미래적 가치에 무게를 실었다. ‘냉정한 평가’는 베버가 말한 가치중립적인 접근이기도 하다. 이것이 두 번째 특징이다.

광복 70주년을 말할 때,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라면, 이른바 뉴라이트계 학자들이 목소리 높이는 ‘건국’ 부분을 어떻게 정리했냐 하는 대목, 지난 경제성장의 공과 정리와 향후 바람직한 발전의 방향을 어디에서 읽어낼 것인가 하는 소득과 분배의 접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전자는 정치부분을 정리한 『한국의 정치 70년』에서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글 「‘건국’ 논쟁을 통해 되돌아본 대한민국」을 참조할 수 있다. 후자에는 『한국의 경제 발전 70년』에 실린 안국신 중앙대 명예교수의 글 「분배, 아직 끝나지 않은 ‘진실찾기’」가 해당된다.

흥미롭게도 이완범 교수는 민족사의 전 과정을 관통하는 命名 논리를 개발할 것을 제안한다. “해방과 광복, 광복과 건국의 대립적인 사관을 지양하며 임시정부 수립, 해방과 광복·독립·건국을 단절적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서서 연속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수렴과 통합을 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통합이 필요 없다면 최소한 대화를 통해 의견을 교환해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일종의 대화적 절충론을 제시한 셈이다.

안국신 명예교수는 글의 맺음말을 ‘형평 있는 성장’을 위한 제언으로 마무리했다. “우리나라는 분배의 불평등이 재벌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간의 지나친 불균형과 맞물려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라고 진단한 안 교수는 지금은 고성장의 시대가 아닌 저성장의 시대에 진입했으며,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한다는 종래 경제학계의 통념도 불평등이 지나치게 클 경우에는 오히려 지속적인 성장을 저해한다는 인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주문한 처방책은 선성장-후분배의 후유증과 불평등의 악순환을 타파하는 ‘형평 있는 성장(growth with equity)’이다. “이것이야말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산림녹화는 세계적 모델로 주목해야”

이번 시리즈 가운데 『한국의 산림녹화 70년』은 조금 의외로 비쳐질 수 있지만, 이경준 서울대 명예교수의 설명(「제1차 및 제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들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만나게 된다. 한국의 산림녹화야말로 세계적인 모델로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교수는 구체적 자료를 들어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훑었다. 특히 그는 ‘아까시 나무’가 정치적으로 왜곡된 담론에 갇혀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의 산림녹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아카시나무의 공이 크다고 평가했다. 미국 남동부 지역이 원산지인 아까시 나무는 19세기 말 선교사가 들여와 그때부터 사방조림용으로 심어졌다(기자간담회에서 이 교수는 “북한이 산림녹화에 성공하고자 한다면 아까시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 시리즈가 기획의도대로 ‘과거 70년이 아닌 미래 70년을 이야기하는 것’에 성공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정영순 연구처장이 “이 시리즈가 1945년 광복부터 2015년 현재까지를 조망한 것은 단순히 과거의 공과를 정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미처 몰랐고, 또 잘못 알고 있던 지난날의 일들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70년, 아니 700년을 준비하고, 주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과제가 현재진행형임을 밝힌 데서 알 수 있듯, ‘방법’에 대한 고민과 더 깊은 논의, 사회적 합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가 그런 투명한 사회적 합의에 기여할 수 있다면 ‘미래 70년을 이야기하는 것’은 더이상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광복 70주년 시리즈’ 발간에 맞춰 지난 22일(화) 광화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아쉽게도 이 자리에는 『한국의 교육 70년』이 빠졌다. 필자가 보완, 수정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어서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측은 ‘스포츠’, ‘여성가족’ 부문 작업도 원고작업을 마쳐 발간 대기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의식주’ 부문까지 합쳐 내년까지 모두 10권으로 시리즈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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