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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확장하는 소통의 의미장 … 루만의 ‘교육소통’이란?
끊임없이 확장하는 소통의 의미장 … 루만의 ‘교육소통’이란?
  • 이 철 동양대·행정경찰학부
  • 승인 2015.12.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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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사회의 교육체계』 니클라스 루만 지음|디터 렌첸 편집|이철ㆍ박여성 옮김|이론출판 | 324쪽 | 28,000원
▲ 니클라스 루만

모든 체계는 맹목적으로 자기(재)생산에만 몰두한다. 루만은 바로 이 점에서 흔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제나 정치 외에도, 교육소통의 무능력, 맹목성, 확장성을 지적한다. 교육체계는 성찰이 필요하며, 이 성찰은 교육학과 교육사회학의 몫이다.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의 교육체계』는 인간, 사회, 교육 및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해 탈인본주의적·구성주의적 관점을 제안하고 있다. 루만은 주체, 이성, 상호주관성, 마음 등을 경험적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분석의 출발점으로 취하지 않는다. 루만은 ‘체계/환경-차이’라는 단 하나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체계/환경-차이’란 체계가 내적 질서를 형성함으로써, 그 밖의 환경을 경계 바깥에 두는 자기유지 작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에 부합하는 의미체계의 구체적인 보기로는 심리적 체계와 사회적(social) 체계가 있다.

심리적 체계는 표상의 선택을 통해 내적 질서를 형성함으로써, 그 표상을 만들어낸 대상을 자신의 환경에 두는 자기유지 작동을 반복한다. 사회적 체계는 생각의 표출이 선택됐음을 뜻하는 독특한 소통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생각-표출-인지의 이 관계를 루만은 정보-전달-이해로 정식화한다. 이 관계에서는 감정은 운반되지 않고 정보만 전달되며, 이해는 전달 신호가 수신자 편에 도착했음을 뜻한다. 도착된 신호의 수용이나 거부가 소통의 요소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의 사회적 체계는 표출된 행동의 선택을 통해 내적 질서를 형성함으로써, 그 표출행동을 만들어낸 생각을 자신의 환경에 두는 자기유지 작동을 반복한다. 생각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체계와 소통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체계는 뒤섞이지 않는다.

루만은 의식·소통의 분리·재조합을 가지고, 인간과 사회 및 언어, 제도, 규범, 문화와 같은 모든 사회 현상들을 설명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소통은 의식에 의한 정보의 전달이, 전달의 이해라는 絶合을 거쳐, 다시 의식에 의한 이해의 수용으로 이어진다. 현실적인 소통이 이어지면서 사회는 의식과 소통의 연동을 통해, 인간은 소통과 의식의 연동을 통해 자신을 유지한다. 인간은 사회에 사회는 인간에 의존한 채, 안정·변화의 떨림 가운데 생존·유지해나간다는 것이다.

이 구도에서 인간은 소통이라는 벽 앞에 서 있으며, 소통의 수신자로서 소통의 전방위적인 영향에 운명적으로 내맡겨져 있다. 주체는 관찰의 주관자가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다. 이성과 감각의 구별이 루만 이론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 즉 의식은 소통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자유만 있을 뿐이다.

이 구도는 또한 사회가 인간으로 구성된다는 상식적인 전제를 무너뜨린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사회는 개인들의 합보다 적다. 왜냐하면 소통이 발생하는 순간 그 소통을 발생시킨 인간의 생각은 사회로부터 배제되기 때문이다. 루만은 전체로서의 사회를 사회(societal)체계로 정의하고, 자신의 환경에는 더 이상 다른 소통이 없는 사회적 체계로서 파악한다. 소통의 총합으로서의 사회는 인간을 포괄하는 최종 기관으로서의 사회와는 달리, 환경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바꿔나갈 수 있다.

사회는 환경과 구별되는 의미의 내적 질서를 형성하는 소통 작동을 통해, 매순간 소통의 의미 영역을 구성한다. 그리고 소통은 작동으로서, 자신을 통해 생성된 의미 영역 안에서 새로운 ‘체계/환경-차이’를 생산할 수 있다. 소통은 이러한 역동적인 성격으로 인해 분화의 추진자이기도 하다. 루만은 소통의 의미 영역의 구조 변화를 역사사회학적으로 분석한 후, 계층적으로 분화된 지역사회들이 기능적으로 분화된 세계사회로 재편됐다는 ‘세계사회론’을 이미 1970년대부터 주장했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는 기존 질서가 해체되면서 사람들의 욕구를 사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직면했고, 그 문제들을 특수한 소통 작동들의 제도화를 통해 해결해낸 시기였다. 그래서 근대사회의 경제, 정치, 학문, 법, 예술, 친밀 영역 등은 이러한 특수 소통들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근대의 교육 현상은 전통사회에서 사회화에 의존하던 가족의 미래 대비가 불충분하게 된 배경에서 생성됐다. 아동에게 기술과 지식을 중개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문제가 선한 의도를 자칭하는 교육소통의 기능에 의해 해결되는 과정에서 학생, 교사, 학교체제, 교육행정 등이 생성됐다. 교육소통은 의도 없는 사회화로부터 생성됐지만, 그러한 사회화를 자신의 환경에 두는 독자적인 의미 영역으로 제도화돼왔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은 학교나 교육자들의 교육이 아니라 ‘사회의’ 교육이다.

루만의 ‘체계/환경-차이’ 관점은 또한 거시와 미시의 딜레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해법은 사회체계 안에서 생성된 교육체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루만은 집합의식이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그 반대로 집합행위가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막연한 진술을 싫어한다. 그 어떤 것이든 현실적인 소통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교육 현상의 경우에서 거시와 미시는, (선한 의도의) 교육소통의 작동이 내적 질서를 형성함으로써, (의도 없는) 사회화로부터 분리됨을 통해 현실화돼 나타난다. 그리고 그 둘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관계에서 이론화돼 있다. 루만은 법, 정치, 경제, 예술, 학문, 친밀체계, 조직 현상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법론을 구사한다.

그밖에도 사회를 환경 편에, 특수소통을 체계 편에 두는 체계이론적 관점은 실증주의와 해석주의적 전통으로부터 제반 사회과학들을 해방시킨다. 루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무엇이 그 뒤에 있는가?’: 두 사회학과 사회이론」(『사회이론입문』)이라는 제목의 퇴임 강연에서, 과학철학의 양대 전통 모두 발생한 면의 뒷면에서 실재와 관념이 작용했다는 점에 집착한 나머지 비현실적인 분석 구도를 취하게 됐음을 지적한다. 실증주의는 분석의 구성물에 의존해 사회이론적인 맥락이 없는 자료들을 양산하고 있으며, 비판이론은 사회는 실패했고 자신은 성공했다는 비판을 통해 사회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반면 ‘체계/환경-차이’ 관점에서는 자기준거(Selbstreferenz)와 타자준거(Fremdreferenz)의 관계의 균형이 중요하다. 모든 체계는 환경에서 에너지를 끌어들여 고유한 작동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든 체계는 맹목적으로 자기(재)생산에만 몰두한다. 루만은 바로 이 점에서 흔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제나 정치 외에도, 교육소통의 무능력, 맹목성, 확장성을 지적한다. 교육체계는 성찰이 필요하며, 이 성찰은 교육학과 교육사회학의 몫이다. 교육학과 교육사회학은 인간완성이나 인간해방사업에서 교육소통과 협력할 것이 아니라, ‘교육/사회화-차이’를 만들어내는 교육소통이 교육과 사회 모두에게 유용하도록 안내할 책무를 떠안을 일이다.

 

이 철 동양대·행정경찰학부

빌레펠트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르크하우스의 『쉽게 읽는 루만』과 루만의 마지막 강의 녹취록인 『사회이론입문』을 번역했으며, 루만의 사회학적 체계이론의 함의를 밝히는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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