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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채우는 퀄리티 타임
밤하늘을 채우는 퀄리티 타임
  • 최창수 서울대 박사과정·물리천문학부
  • 승인 2015.12.1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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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최창수 서울대 박사과정·물리천문학부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가졌던 가장 특별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관측을 빼 놓을 수 없다. 거대한 망원경으로 고요한 밤에 수만~수억 광년 떨어진 천체들로부터 오는 광자들을 마주하는 시간은 나에게 무엇보다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얻게 된 가장 특별한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보통 떠올리는 이미지처럼 단순히 별을 보는 일을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세상에서 벗어나 홀로 산속에서 고요한 가운데 평화롭게 저 멀리 우주의 신비를 마주하는, 정적이면서도 매우 고상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천문관측에는 그 이상의 것들이 있다.

관측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사전 연구를 통해 어떤 천체를 무슨 이유로 어떻게 관측할지 관측 제안서를 준비하고 원하는 천문대에 제출해야 하며, 여러 제안서 중 선별돼야만 망원경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얻는다.

천문대에 가기 위한 교통편과 숙박 등의 준비해야 하고 관측 대상과 방법에 대한 제2, 제3의 대비가 필요하다. 날씨나 기기의 상태에 따라 관측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된다. 해외의 경우 하루이틀씩 비행하고 다시 10시간씩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천문대도 있다. 천문대가 가급적 대기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주변에 불빛이 없는 곳에 있다보니 깊은 산에서도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힘겹게 도착하더라도 낯선 환경이 기다린다. 고도가 높아 산소 부족으로 불면증이나 호흡곤란과 같은 고산증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천문대 숙소에서 전갈이 튀어나와 놀란 적도 있으며, 미국에서는 운전하며 가는 중에 도로에 나온 짐승들로 사고 위험을 겪기도 하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음식이 맞지 않아 며칠씩 복통으로 고생한 적도 있다. 호주에서는 밤에 걸어가는 중에 캥거루가 지나가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악천후로 인해 전기와 네트워크가 끊겨서 여러 날을 고립돼 지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관측이 시작되면 보통 상상할 수 있는 여유로운 일상이 아닌 전쟁이 시작된다. 연구의 일부로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가는 것이기도 하고 좋은 망원경을 쓸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일분일초를 다투며 하나라도 더 자세히 관측해야하기에 조금도 신경을 늦출 수 없다. 망원경·검출기기와 같은 고가의 장비를 잘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뿐만 아니라, 밤 내내 날씨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수억 광년 전에 천체에서 출발한 광자들을 하나라도 더 잘 담아 분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피곤하다해서 낮에도 맘 놓고 쉴 수만은 없다. 그날 저녁 관측 준비는 물론이며, 전날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더 분석해 이후에 반영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필자의 경우 10일 정도 관측기간에 체중이 수 킬로그램씩 빠져서 돌아오곤 한다.

이렇게 여러 어려움이 있어도 천문관측에서 얻을 수 있는 놀라움에 다른 일들은 즐거운 추억담이 된다. 낯선 환경에 어려움도 있지만 새로운 환경을 만나고 배우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우리에게 오는 천체들의 빛은 소중한 정보들로 수천, 수억 년 전에 출발한 빛이다. 그렇기에 망원경은 우주의 과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타임머신과도 같다.

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랜 과거로부터 출발해 우리에게 도달한 빛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이 되고, 그렇게 알아낸 작은 비밀들 하나하나를 우리가 이전에 배운 과학 지식들을 토대로 밝혀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우면서도 숭고한 기분이 된다. 그렇기에 미약한 별 빛 속에 있는 하나하나의 광자를 놓칠 수 없는 것이다.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는 하염없이 작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에 대한 근원적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끊임없이 우주를 관측해왔고,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나는 이런 노력을 통해서 인간과 우주를 더욱 더 이해하고 그로부터 인간이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소중한 지식들을 가지고 올바른 지혜를 얻는 것, 그것이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며,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는 그것의 시작이 천체 관측이다. 앞으로도 좋은 관측 결과를 통해 머나먼 과거에서 날아온 별빛들 속에서 더 많은 비밀들을 알게 되길 소망한다.

 

최창수 서울대 박사과정·물리천문학부

은하에서 폭발하는 초신성과 같은 특이한 변광 천체들을 찾고 그들의 기원과 특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 초기우주천체연구단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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