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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별로 믿어줄 것 같지 않은 인문학 이야기
이젠 별로 믿어줄 것 같지 않은 인문학 이야기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5.12.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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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얼마 전 현대문학관에서 김윤식 선생의 저서 전시회 폐막식이 있었다. 선생이 평생에 걸쳐 내신 연구저서가 150권, 폐막식이 끝나고 나서 뒤늦게 축사 요청을 받은 김종회 교수는 이런 일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보다 앞서 인사말을 위해 연단에 나오신 선생은 할 수 있는 말씀이 없다고 하셨다.

선생은 지치고 힘들어 보였는데, 확실히 그것은 오늘 쌓인 피로가 아니요 어제 얻은 피로가 아니었다. 선생이 걸음걸이가 몹시 힘드신 것을 보고, 자리에 지켜섰던 사람들은, 그러게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할 일은 아니라고 우스갯소리를 나누었다.

선생이 떠나시고 남은 사람들이 저녁 뒤풀이를 갔는데, 모여앉은 사람들 분위기가 완연히 1980년대 말 90년대 초로 돌아간 듯 했다. 요즘에는 어디가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 괴로웠는데, 오늘 같은 날은 선생 덕분에 우리 모두 25년,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새로움이 있다.
 
그때는 대학원, 그것도 인문대학, 사회과학 계열 대학원이 문전성시였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뛰어드는 것보다 어떻게든 생각하고 성찰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냉철한 삶을 원하는 대학생들, 대학원생이 많았다. 대학원 입시 경쟁률이 높다보니 진학을 원하는 사람들이 재수도 하고 삼수도 했다. 학교마다 차이는 없지 않겠지만 크게 다른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 같다.

옆에 후배 교수가 한 분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지금은 학생들에게 프롤레타리아니 뭐니 얘기를 해도 그들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정규직 아니냐고 반문한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만, 학생들에게 지금 절실한 문제는 단순히 임노동이 아니라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단기, 단단기 고용이냐 하는 노동의 세분된 형태가 전면에 떠올라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옆에서 다른 분이 세대 간의 갈등이니, 대립이니 하는 말이 있는데, 영 틀린 말이 아니라고도 했다. 우리들 세대는 사람마다 편차는 있지만 확실히 지금 학생들 때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여유가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학생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포유하고 있는 사회에 여유공간은 적다. 그러다 보니 각박하다.

교수들이 모이면 아무래도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정치적 소신이나 가치관에 따라 오가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좁은 대학 세상 얘기만 주로 오가는 분위기다. 프라임 사업이 어떻고 코어 사업이 어떻고 하는 얘기들, 학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 타개방안, 대처방안에 대한 얘기도 학교 수만큼 다양하다고 할 정도다.

지금 화제가 집중되고 있는 사업이라는 것의 요점은 인문학 쪽을 수요가 줄 것이 예상되는 만큼 줄이되 특정 대학들에는 인문학을 특성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란다. 벌써 지방대학 쪽부터 인문학 관련 각 전공 학과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데, 이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이고 인위적인 변화가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당장 기존의 국어국문학과만 해도 지금 옛날의 이름이나 학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현격히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대학 정책을 끌어가는 분들도 많은 것을 고려하고 고민한 결과일 것이니만큼 이런 대학 구조 조정 계획 자체를 놓고 좋다 그르다를 말할 수만은 없다. 삶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인문학의 몫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보면 유명한 침대의 비유가 등장한다. 세상에는 세 가지 침대가 존재한다. 침대의 이데아, 제작된 침대, 만들어진 침대를 그린 침대 등이 그것이다. 플라톤은 여기서 이데아로서의 침대를 이중 모방한 세번째 침대를 그리는 사람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이데아 없이 실물만을 만드는 것으로는 세상을 참답게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 또한 플라톤의 생각이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나로서는 이 세 차원의 침대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지금은 어느 시대냐. 이데아도 싫고 예술도 싫고 오로지 제작인만 좋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마 하고 생각한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만들 때 먼저 이데아를 생각한다. 그것이 인문학이 오늘 오히려 더 필요한 이유다. 별로 믿어줄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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