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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언어는 禁忌를 넘어선 것이었을까?
그의 언어는 禁忌를 넘어선 것이었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2.09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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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 그는 도대체 어떨 말을 했길래

 

최근 출판사 은행나무에서 나온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놓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시간강사’ 신분의 저자는 일종의 대학 ‘내부 고발자’다. 대학원생으로서 공부하던 시절의 경험담,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시간강사로 살아가면서 겪은 다양한 일들을 책에 풀어냈다. 2015년 한국 대학과 대학원, 학문공동체 내부의 자화상을 그려낸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309동 1201호’라는 익명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익명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책의 출간과 함께 학교를 떠나야 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는 어떤 말을 했던 것일까.

저자가 스스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못하고 ‘익명’을 내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몸담고 있는 집단, 사회가 투명하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박사과정을 수료한 시간강사가 대학, 강의, 학문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규율에 딴지를 걸고, 이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걸 어떤 이들은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생각만하지 않고 즉각 ‘행동’을 취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학자가 되는 과정을 ‘도를 닦는 것’에 비유하는 이들에겐, 저자의 책과 그의 행동은 참을성 없고,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그래서 결국은 어떤 ‘禁忌’를 넘어선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책과 문제제기가 유효하지 않거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발칙한’ 것은 아니다.

퇴행적인 ‘시간강사법’ 제정 움직임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강사들이 위축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책의 저자가 시간강사의 현실을 적시했다고 교수들과 대학 관계자들의 노여움을 사 결국은 학문공동체 내부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면, 이런 희극도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참을성 없는 한 인격의 문제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장면을 재현해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연구소 조교 생활

“주말도 거르지 않고 주 5일 이상 꾸준히 출근했던 연구소에서 내가 3년간 받은 보수의 총액은 360만 원이 전부다. 그런 나를 무척 슬프게 했던 것은 언젠가 내 지도 교수가 내게 했던 말 한마디다. 그는 어떤 술자리에서 내게 연구소의 보수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한 학기에 60만 원입니다, 하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한 달에 60만 원이면 생활할 만했겠구나, 했다. 나는 당황해서, 아니 선생님 그게 아니고……하는데 그는 다른 교수의 말에 이미 응대하고 있었다.”

-과정생의 노동과 처우

“얼마 전 주민센터에 제출할 서류가 있어 건강보험료 납입액을 12,000원으로 적었더니 어제는 전화가 와서 ‘0’을 하나 빼먹으신 듯하다, 고 했다. 그래서 정확히 적은 것이 맞다, 고 하자 아……하고 뭔가 횡설수설하다가 실례지만 직업이 어떻게 되시나요, 하고 물었다. 저는 대학교 시간강사이고 건강보험료를 등록해준 곳은 맥도날드입니다, 아니 대학에서 건강보험이 되시잖아요, 죄송합니다 대학에서 안 해줘요, 그럴 리가요, 정말 그렇습니다. 대학에서 노동자의 최소한의 안전망이라 할 수 있는 4대 보험조차 보장하지 않는 데 대해서는, 모두가 놀란다.”

-내가 만난 학부생 조교들

“학과 사무실과 연구소가 이렇게 학부생 조교를 ‘착취’하는 동안, 각 대학 본부 사무실 역시 그에 뒤지지 않았다 어느 부처를 가도 먼저 인사하는 것은 학부생 조교들이다. 이걸 왜 아이들이 하고 있지, 싶은 일도 한다. 도서관의 서가마다 책을 나르고 정리하는 역할 역시 학부생들이 도맡는다. 사무실, 연구소, 기숙사, 대학의 어디를 가든 학부생 근로 장학생들이 있다. 결국 값싼 학부생의 노동력으로, 대학 사무의 최전선이 지탱되고 있는 셈이다. 대학은 기업보다 한발 앞서, 비정규직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해냈다. 더 이상 정규직 교직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조금 젊은 얼굴이 보인다 싶으면, 예외 없이 2년 계약 비정규직이다.”

-강의와 연구 사이의 균형 찾기

“나는 그저 평범한 연구자다. 논문의 편 수가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니고, 훌륭한 연구를 했느냐 묻는다면 더더욱 아니다. 학과장의 말대로 강의도 잘, 연구도 잘, 하는 것은 아마도 무척 버거운 일이 될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당장 그만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그저 강의와 연구의 어떤 우선순위를 두지 않은 채, 강의실에서, 연구실에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한 최소한의 노력을 지속해나가려 한다. 대학을 배회하는 유령과도 같은 시간강사의 삶이지만, 강의실과 연구실에서만큼은 ‘노동자’로서, 존재하고 싶다.”

-맥도날드에서 배운 인문학

“을의 공간은 사람을 무척 작아지게 만들었다. 어떤 말썽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그에 따라 손님에게 최상급의 존대를 해야 했다. 그런데 나 역시 언젠가부터 빅맥 세트 나오셨습니다, 하고 있었다. 그 잘못된 문법은 오히려 더욱 자연스럽게 갑에게 가서 닿았다. 그러고 보면 카운터 위에서 갑의 소유가 된 햄버거 역시,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갑과 을 사이에 끼어든 ‘갑의 소유물’은 어떻게든 을보다는 높은 자리를 점유했다. 그래서 빅맥 세트 나오셨습니다, 하고 외치며 갑의 소유물마저 높여주고 나는 그 아래로 자진해서 내려간다. ‘갑≥ 갑의 소유물 〉 을’이라는 구도가 마련되는 것이다. 카운터 위의 햄버거를 높이는 문법의 오류는 역설적으로 최상급의 존재어를 만들어냈다. 강의실의 문법과 거리의 문법에는 이처럼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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