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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의 치아와 인간의 혀 사이에서 발견한 인도-유럽어의 고향
馬의 치아와 인간의 혀 사이에서 발견한 인도-유럽어의 고향
  • 교수신문
  • 승인 2015.12.0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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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말, 바퀴, 언어』 데이비드 W. 앤서니 지음|공원국 옮김|에코리브르|831쪽|40,000원

 

지금껏 고고학과 언어학 연구들은 상대의 경계를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고 함부로 넘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혀의 욕구를 따르는 음운의 변화가 특정한 규칙을 따른다는 사실과 그 변화의 속도를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근거해 둘을 연결시켰다.

 

“인간의 역사에서 말(馬)의 중요성에 필적할 만한 것은 이 연구 자체의 어려움밖에 없다.”

데이비드 앤서니 하트윅대 인류학과 교수는 중석기시대 전문가인 그레이엄 클라크 전 캐임브리지대 교수의 의미심장한 말로 가장 흥미로운 제10장을 연다. 말은 언제, 왜, 어떻게 길들여져 인간에게 복무하게 됐을까. 그리고 말이 길들여진 후 인간의 역사는 어떤 급진적이며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게 됐을까. 그래서 책의 부제도 ‘유라시아 초원의 청동기 기마인은 어떻게 근대 세계를 형성했나’다.

말이 길들여진 최초의 이유는 식용이다. 말은 겨울에도 먹이 없이 스스로 풀을 찾을 수 있는 특이한 짐승이다. 소든 양이든 눈 덮인 북방의 초원에서 스스로 겨울을 나지 못한다. 말은 자신의 고향인 북방의 초원에서 발굽으로 눈을 해치고 풀을 뜯어먹는다. 말은 움직이는 겨울용 고기 덩어리였다. 그러나 인류는 식용으로 말을 도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에서 말의 유용성을 찾았다. 말은 등이 널찍해서 올라탈 수 있고, 또 어떤 동물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말 위에 올라타고 소나 양을 치고 때로는 말을 타고 말을 사냥했다. 급기야 말을 타고 재빨리 이동해서 남의 가축을 훔쳐 도망치기도 했다. 저자에 의하면 말을 전투에 이용한 역사는 서기전 4천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말이 길들여진 공간은 바로 흑해-카스피해 북부의 초원, 즉 이른바 인도-유럽공통조어를 쓰는 집단들이 살았던 공간이다.

이전까지 騎馬의 역사는 논란거리였다. 바퀴와 함께 묻힌 말뼈 실물은 세계 여러 곳에서 출토된다. 그러기에 기존에는 기마보다 전차의 역사가 오래라고 생각했다. 또한 기마 전사들이 쓰는 이중만곡궁 또한 서기전 천년이나 돼서야 등장하므로 말 위에서 활을 쏘는 전사들의 등장을 기마의 시대와 연결시키게 됐다. 저자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으로 기마의 역사를 새로 썼다. 발굴된 기마 圖像, 기마로 인한 말 척추의 병리학적 특성, 혹은 도축된 말의 연령따위의 간접적인 증거에서 벗어나 기마 시 꼭 필요한 재갈로 인한 마모 흔적에 주목한 것이다. 재갈을 물리면 말의 어금니가 특정한 양상으로 닳지 않을까? 실제로 그랬다. 흑해-카스피해 북부 초원과 카자흐스탄 초원에서 얻은 표본에는 명백하게 재갈로 인한 마모 흔적이 나타났다. 마모 흔적이란 겨우 몇 밀리미터에 불과하지만 자연상태의 말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이 몇 밀리미터는 기마의 결정적인 증거로서 자격을 갖는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기마와 전쟁을 연결시킨다. 최초의 기마 습격대는 궁수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갑자기 나타나 말에서 내려 습격한 후 말을 타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 자체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이들 초원 출신의 기마 습격자를 방어하기 위해 정주 농경민들은 방어벽을 쌓거나 주거 방식을 재조직했다. 물론 양자는 싸움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도 하고 물질문화를 교환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마의 전략적인 우수성은 전체적으로 초원목축민의 권력을

기마 이후에 말이 일으킨 두 번째 혁명은 전차전이다. 전차란 속도를 위해 고안된 두 바퀴 수레다. 이 전차의 기원도 기마 못지않게 오랜 논쟁 거리였다. 저자는 살이 달린 바퀴를 단 전차가 발명된 지역 역시 흑해-카스피해 초원 지대라고 한다. 육중한 일체형 바퀴는 물론 초원에서 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초원에서 일체형 바퀴를 대신하는 가벼운 바퀴가 발명되자 말이 끄는 전차가 탄생했다. 전차가 발명되자마자 그리스부터 중국까지 거의 동시에 이를 채택했다는 사실이 전차의 전술적인 위력을 방증한다. 

말이 가축화되기 이전부터 기마시대를 거쳐 전차시대까지 흑해-카스피해 북부 초원에서 기원한 인도-유럽공통조어 사용자 집단의 팽창은 계속됐다. 저자는 서쪽으로는 주로 동화와 침략의 흔적을 찾고 동쪽으로는 거대한 이주 물결의 증거를 제시한다. 그리하여 고유럽이 인도-유럽어 언어권으로 바뀌고 동쪽으로는 알타이를 거쳐 멀리 타림분지까지 인도-유럽어의 섬들이 생겨났다. 말과 수레에 의존해 이동하는 이들이 가는 곳마다 기존의 언어는 사라지고 인도-유럽어군 언어들이 이식됐다. 저자는 이 불가사의한 과정이 전쟁보다는 오히려 이들 집단이 주도하는 후원자-피후원자 관계망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현지인의 거의 자발적인 언어 채택에 의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선사시대 특정 언어의 확산 과정에 관한 부분과, 그 언어를 실어 나르는 집단의 실체에 관한 부분으로 나눠 읽어도 될 것이다. 지금껏 고고학과 언어학 연구들은 상대의 경계를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고 함부로 넘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혀의 욕구를 따르는 음운의 변화가 특정한 규칙을 따른다는 사실과 그 변화의 속도를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근거해 둘을 연결시킨다. 즉, 오늘날의 단어로 더 고대의 단어의 모양을 예측할 수 있고, 그 시기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오늘날 연대가 확정된 고고학유적들을 인도-유럽어의 각 발전단계와 하나씩 대비시킨다. 예컨대 ‘이 유적을 남긴 집단은 언제적 토하라어의 조상어 사용자들이다’는 식으로 정의를 내린다.

 

융합적 연구의 성과와 한계

우리는 고고학이나 언어학이 인종주의자들의 손에서 겪은 수모의 역사를 기억한다. 가장 비근한 예가 나치의 아리안 순종주의다. 그러므로 이 책을 옮긴 필자 역시 저자의 시도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인도-유럽어의 기원에 관한 가장 탁월한 연구(제임스 멜러리)’라는 등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책의 가정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번역했다. 가끔 증거와 추론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곳도 있었다. 예컨대, 재갈 마모 흔적을 보이는 어금니 실물로서 연대가 가장 오랜 것은 카흐스탄의 보타이-테르섹 유적에서 출토됐다. 그러나 저자는 이 지점 대신 더 서쪽의 흑해-카스피해를 기마의 기원으로 보는데, 보타이-테르섹에는 아직 가축 사육이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가축을 사육하던 서쪽에서 기마가 먼저 시작됐을 것이라 한다. 또한 매우 중요한 주제인 후견인-피후견인 관계가 얼마나 작동했는지 고고학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요원하므로 언어학적 설명으로 후퇴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이 책이 말(馬)에 관한 연구 하나만으로도 기존 연구를 압도한다고 확신한다. 이 책이 미국 고고학 학회로부터 ‘2010년 최고의 과학책 상’을 받은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또한 분과 학문을 융합해 이렇게 분명한 결론을 내기란 쉽지 않는 일이다. 새로 개척하는 분야에서 발견되는 지나친 추측이나 오류는 새 길에서 만나는 필연적인 장애물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이 문명 발전의 척도 논쟁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란다. 기마나 전차의 발명이 인종 간의 우열로 해석된 과거의 기시감 때문이다. 『환단고기』 등의 위사류가 여전히 고대사 인식에 영향을 주는 한국에서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우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앞으로 선사 고고학을 쉽사리 남용하지 못할 것이라 낙관한다. 먼저 우리는 문명은 우열 관계가 아님을 알고 있다. 기술은 문명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대개 필요가 우연과 만날 때 만들어질 뿐 집단 전체의 지적 능력과는 상관이 없다. 더욱이 기술 채택은 가치 선택의 문제다. 양귀비가 아편의 원료라지만 여전히 중독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성분을 더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공원국 동양사학자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유라시아 신화 대전』을 집필하기 위해 유라시아 전역을 답사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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