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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8호 새로나온 책
제808호 새로나온 책
  • 교수신문
  • 승인 2015.11.3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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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을 책으로 읽는 것과 영화 「한나 아렌트」로 경험하는 건 같지 않았다. 하지만 궁극에 느끼는 평범성의 비범함과 일상성의 정치는 관객을 물들인다. 오래도록 머무는 ‘울림’은 반드시 종교적일 필요도 없고 난삽하기만 한 추상의 메시지도 아니란 자각은 아렌트가 영화로 일깨워준 또 다른 ‘놀라움’이다. 악마도 곁에 두면 한없이 익숙해지고 천사의 자유로움마저 시늉하게 만드는 아둔한 나날들 역시 모두의 ‘부끄러움’이었다. 올바로 행동해야 할 때 침묵과 외면을 재촉한 정치적 원죄의식의 밑바탕이었음도 안타깝게 확인한 수치스러움이었다. 전체주의가 무서운 건 삽시간에 모두를 빨아들이는 기운 때문이었다. 그래서 연약한 개인을 한없이 용감하게 만드는 익명성이 비겁의 가면까지 덧씌워 자기가 누구였는지 잊게 만드는 재주 때문이었다.”
- 박종성 서원대 교수, 『영화가 뿌리친 정치사상: 정치교육의 새로운 방법을 찾다』(인간사랑, 2015.11) 중에서

■ 가난을 팝니다, 라미아 카림 지음, 박소현 옮김, 한형식 해제, 오월의봄, 384쪽, 17,000원

2006년 방글라데시의 무함마드 유누스는 혁신적인 마이크로파이낸스 활동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마이크로파이낸스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인 것처럼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라민은행의 성공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 착한 자본주의 등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저자 라미아 카림은 그라민은행을 대표로 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은 빈민을 상대로 자본주의의 이윤을 확대할 뿐이며 자본주의의 대안은커녕 빈곤의 악순환을 더 가속화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비판한다. 마이크로파이낸스, 사회적기업 등에 대한 분홍빛 전망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저자는 소액대출을 받은 빈민 여성들이 겪는 현실을 불편한 시각으로 시의적절하고 적확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방글라데시의 빈민 여성들은 오히려 빚더미에 앉게 됐고, 가정과 마을공동체 안에서 폭력에 노출됐으며, 결국 자본의 맹렬한 공격 앞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가 착한 자본주의의 가면을 쓰고 방글라데시와 같은 주변부 국가에 어떻게 침투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대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최재천 지음, 휴머니스트, 640쪽, 28,000원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세계의 깊이 있는 만남을 시도한 『대담』 10주년 기념판. 2001년 12월 10일, 인문학자 도정일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이 만났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을 주선한 대한민국 지성사 최초의 프로젝트 ‘대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4년 동안 십여 차례의 대담, 네 차례의 인터뷰로 이어진 도정일과 최재천의 『대담』은 2005년 출간돼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소통하며 융합과 통섭을 이야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독자들은 과학의 시대를 사는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지, 우리 사회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는 어디까지 왔는지, 새로운 세대를 위한 교육과 사회문화적 기반으로서의 융합적 실천은 어떻게 가능한지 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내용에 더해, ‘『대담』 그 후 10년,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어떻게 함께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특별 대담을 수록했다.

■ 법사상: 생각할 의무에 대하여, 박준석 지음, 아카넷, 344쪽, 25,000원

대우학술총서 614권. 법사상의 관점에서 판례를 분석하고 있다. 이 작업은 판례의 논리에 대한 참신한 정당화나 비판만이 아니라, 법사상적 논의 자체의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법사상 연구만의 독특한 가치는 법사상의 창을 통해서 볼 때 비로소 법이 이해 가능한 것이 되는 순간들과 관련이 있다. 과거 누군가의 말과 생각이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법질서의 아주 구체적인 부분들을 비로소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과정을 담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제안하는 법사상적 시각에서 판례를 분석하는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판례의 의미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이것이 필자가 선사하는 궁극의 놀라움은 아니다. 판례의 의미에 다가감을 통해서 결국에는 법사상적 논의에 담긴 본연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음을 체험하는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어리석음, 아비탈 로넬 지음, 강우성 옮김, 문학동네, 544쪽, 30,000원

파격과 유희의 사상가 아비탈 로넬 뉴욕대 교수의 대표작이다. 어리석음은 앎의 확실성, 주체의 확실성과 밀접하다. 앎이나 주체가 불확실해질 때 앎의 세계는 거대한 미궁에 빠진다. 저자는 서양철학이 이 거대한 공백으로서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억압하고 왜곡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로넬의 성찰은 어리석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계보 및 그 한계에 대한 비판, 어리석음을 미학적 범주로 다루는 사유의 흐름에 대한 비판, 그리고 로넬 자신의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어리석음에 대한 고백과 ‘타자’에 대한 어리석음의 윤리 모색으로 이뤄진다. 궁극적으로는 어리석음을 무지의 표상으로 억압하며 성립한 서양철학의 사유 일반에 대한 정치적 비판인 동시에 철학적 논증의 타자로 배제된 문학적(여성적)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한 옹호로 요약할 수 있다.

■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정혜경 옮김, 반비, 288쪽, 17,000원

정신분석학의 대가가 파헤친 신자유주의 경제의 심리적 부작용들. 왕따에서 묻지마 살인, 총기난사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전의 공격성과는 질적으로 다른 심리적 증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그 원인을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우리의 정체성 형성 과정, 인성 발달 과정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데서 찾는다. 철학사와 윤리학사, 종교사에서부터 뇌과학, 동물행동학, 정신분석학, 그리고 언론 기사들과 개인적인 체험을 오가며 명쾌하게 입증하고, 이를 극복할 개인적이고도 공동체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오늘날의 사회 현상들을 가로지르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고민하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윤리와 정체성의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 저자가 좋은 삶을 위해 제안하는 것들은 새롭지는 않다. 인간의 조건을 끌어안는 이런 전통적인 방법이야말로 지금의 시스템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 인터넷의 철학, 휴버트 드레이퍼스 지음, 최일만 옮김, 필로소픽, 240쪽, 16,000원

현상학과 인공지능 분야의 거장 드레이퍼스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교수의 인터넷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 플라톤에서 니체, 데카르트에서 하이데거까지 다양한 노선의 사상가들을 끌어들여, 인터넷이 대중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인간에게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를 열어줄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를 탈신체화에 관한 현상학적 관점으로 논의한다. 저자는 가상 세계의 한계를 지적하며, 가상 세계에서의 삶이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고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신체와 유리된 인터넷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한다. 인터넷과 함께 살아야 할 미래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컴퓨터와 인간, 인터넷 삶과 현실 삶 사이의 균형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2001년에 초판을 낸 뒤 8년 만에 상당한 수정, 삭제, 보충을 거쳐서 2판을 냈다. 저자가 다루는 많은 논의들은 인터넷의 사실적 특성보다는 본질적 특성, 탈신체성과 관계하기에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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