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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설명 돋보이는 과학대중서 … ‘미래’의 위험을 읽다
친절한 설명 돋보이는 과학대중서 … ‘미래’의 위험을 읽다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11.23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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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호모 사피엔스 씨의 위험한 고민』 이필렬·권복규 외 지음|메디치|336쪽|15,000원

 

『호모 사피엔스씨의 위험한 고민』은 과학의 이면에 감춰진 ‘어떤 의도’를 들춰내고자 한다. 그 의도란 인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자연 세계에 의해서 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책의 부제는 ‘미래 과학이 답하는 8가지 윤리적 질문’인데, 공동 저자 한 사람씩 한 가지씩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최근작 『호모 사피엔스씨의 위험한 고민』은 과학의 이면에 감춰진 ‘어떤 의도’를 들춰내고자 한다. 그 의도란 인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자연 세계에 의해서 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책의 부제는 ‘미래 과학이 답하는 8가지 윤리적 질문’인데, 공동 저자 한 사람씩 한 가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올해 6월, 메르스로 우리나라에서 난리가 났었다. 저자의 한 사람인 권복규는 메르스 문제에 숨어 있는 한국 의료계 현실을 바닥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려 했다. 우리나라는 환자를 보지 않고 연구만 하는 분야인 기초의학에 대한 인식이 저조하다. 특히 전염병 비상시 통제를 해야 하는 질병관리본부가 힘이 없어 비전문가인 보건복지부장관이 나섰다가 수습에 실패했다. 물론 우리나라 전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훌륭하게 명시돼 있다. 그러나 전염병 예방과 관리를 군수와 도지사, 복지부장관, 심지어 시·군·구청장이 하게 돼 있다는 것이 문제다.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에서 지휘체계가 시·군·구청장까지 내려오면 방역이 늦기 때문이다.

권복규는 의학은 학문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말한다. 의학은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서 생긴 실천이기에, 메르스 사태에서 의학 실천 대상은 역병으로 고통 받는 사회가 돼야 했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건 교육기관이다. 메르스 사태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왜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왜 자가격리 조치를 준수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의료를 이용해야 자기 건강에 최대한 득이 되는지를 학생들은 사회에 나오기 전, 보건이나 체육 시간에 배워야 한다. 물론 학교마다 보건교사가 있지만 보건교육은 고작 1년에 한두 시간 밖에 하지 않는다. 권복규는 삶과 인권에 밀접한 의료를 폭넓게 이해하길 독자에게 바랐다. 그러면 시민들은 전염병 사태에서 국가 지시를 받는 동안 크게 초조하지 않을 수 있다. 

 

과학에 숨은 의도

홍성욱은 올해 4월 중국 중산대 준지우 황 교수가 크리스퍼 유전가 가위(CRISPR)로 인간 배아를 편집한 사례를 통해 유전 공학 문제를 환기한다. 황 교수는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자궁에 착상했을 때 사람이 될 수가 없는 배아를 편집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라고 해명했다. 유전자 가위는 질병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미래에 병에 걸릴 위험이 없도록 한다. 질병 요인을 지닌 성인은 질병이 완화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지도 모른다.

지금 크리스퍼 기술은 한 번 자르는데 불과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의 돈이 든다. 이전 가격의 1%도 되지 않는다. 대학원생이나 대학생들이 이것으로 실험 작업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기술이 남용되고 있으며, 유전자를 잘라냈는데 다른 유전자까지 잘라낼 수 있는 불확실성을 배제할 수 없고, 맞춤형 배아 이슈를 낳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나를 만든 것에 책임을 다하라. 그렇지 않으면 통제 불능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고 말한다. 이는 과학자들이 과학 지식과 함께 도덕과 윤리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사람이 만든 기술들을 책임감 있게 다루지 않았을 때 그것들은 역습을 할 것이다.

이필렬은 한국 원자력 상황을 독일, 일본과 비교했다. 일본은 원전 폐쇄 결정을 한 반면 독일은 국회의원 600명에서 반대 10 표로 원전 포기를 선언한 나라다. 출퇴근이 엄격해 노동자가 8시간 이상 근무를 하면 적발돼 기업이 불이익을 받기에, 독일 노동자는 일주일에 36시간을 일한다. 그래서 시민들은 나머지 시간에 환경문제나 원자력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참여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원자력 반대 집회에 25만 명의 독일인이 모일 수 있었던 이유다. 일본 시민들도 원자력발전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반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은 그다지 활발하게 하고 있지 않다.

이필렬은 이에 대해 민주주의 정도의 차이로 설명한다. 그 예로, 독일에 있는 작은 마을 셰나우는 2천500여 명의 주민이 산다. 이들은 처음에 주로 전력 절약운동을 했지만, 대형 전력회사에서 전기를 독점적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절약 운동에 한계가 생겼다. 마을 사람들은 자가발전을 시도해보자고 합의를 했는데, 마침 1994년 전력회사와 맺은 20년 계약이 만료됐다. 셰나우 사람들은 원자력이 섞이지 않은 전기 생산 회사를 만들고자 마을 사람들과 협의를 본다. 그리고 투표를 거쳐 56%의 찬성표를 얻고, 독일 전역에서 모금활동을 벌였다. 모은 모금액으로 전력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다가오는 11월부터 셰나우 전력회사에서 전기를 공급받게 됐다. 독일의 마을 민주주의가 얼마나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필렬은 우리나라도 국민이 원자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국전력이 전력을 계속해서 독점하고 있는 체제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아무런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는데, 이런 인식이 에너지독립에 큰 걸림돌이 된다. 국민이 단합한다면 전력 독점을 해체한 뒤 분산적 에너지 생산과 공급이 이뤄지도록 할 수 있다. 시민들이야 말로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다.

 

민주주의의 눈높이와 과학

과학은 때론 불가능한 도전을 감수한다. 엄청난 속도로 치닫는 혜성에 탐사선이 착륙할 수 있을까. 로제타 탐사선은 실제로 혜성을 쫓아가 작은 탐사선을 내린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절반만 성공이다. 작은 탐사선 필레(Philae)가 착륙했지만 얼마 못가 작동을 멈췄다. 이명현에 따르면 그건 바로 어마어마한 속도, 중력(충돌), 푸석푸석한 지표면 때문이다.

원종우, 정지훈, 이정모는 과학을 통해 미래에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생물 멸종 속도가 1천배나 빨라진 제6의 대멸종 시기가 도래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기술 개발은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왓슨(Watson)’이라는 인공지능프로그램은 퀴즈쇼에서 사람을 물리치며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미국의 암 센터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왓슨이 소요하는 에너지는 4천명 분에 이른다. 왓슨은 지금 쥐의 지능 정도까지 근접했다고 한다. 한편 ‘지보’나 ‘페퍼’ 같은 로봇은 개보다는 못하지만 햄스터보다는 인간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고 한다. 이런 로봇에 대해 햄스터보다 못한 취급을 한다는 게 정당할까? 파업하지 않고 해고도 간단한 로봇의 노동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잔꾀를 부리지 않고 24시간 일을 할 수 있는 로봇의 출현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로봇의 윤리와 인권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AMA(Artificial Moral Agent)’ 즉, 인공적 도덕 행위자를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연구다. 로봇이 실수를 하면 소유주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아니면 각 로봇한테 책임을 따질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

『호모 사피엔스씨의 위험한 고민』는 전문 학술서라기보다는 과학 대중서에 가깝다. 수림 인문강좌 시리즈를 토대로 집필했기 때문에 읽는 이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눈에 띈다. 결국, 과학에 대한 인간의 ‘위험한’ 고민은 위험할 미래에 대한 고민이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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