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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논란에 앞서 …
천경자, 논란에 앞서 …
  •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한국회화사
  • 승인 2015.11.16 11: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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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한국회화사

1991년에 있었던 「미인도」를 둘러싼 화가 천경자와 소장처인 국립현대미술관과의 위작논란이 그의 타계를 계기로 다시 불붙으며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작품의 진위문제는 동서를 막론하고 미술애호와 수집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에 대두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판별하는 감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조선전기부터 있었다. 조선 중종대의 김안로는 “지금 전하는 고화 가운데 진품과 위작, 모본 등이 섞여있어 具眼으로 이를 가려내야 한다”며 감별의 중요성을 처음 발설한 인물이다.

아마도 조선 최초의 구안자는 김안로와 같은 시기에 궁중 수장품과 왕실관련 서화 감별에 관여한 성세창이 아니었나 싶다. 이후 조선중기의 이항복과 후기와 말기의 김광수와 서유구, 전기, 오경석 등이 최고의 감식가로 이름을 남겼다. 이들은 모두 작품의 화풍과 필묵법, 관서와 도인, 재질을 통해 감정하고 식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인도」의 진위논란은 작품보다 이와 관련된 인사들의 진술과 정황을 둘러싼 진실게임 같은 흥밋거리로 기사화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작가 자신은 그리지 않았다고 했고 위조범이 자신이 그린 것이라고 하지만, 진실은 「미인도」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작품 자체에 대한 양식 분석과 같은 치밀한 학술적 검증과 광학적 방법 등의 과학적 조사로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들 중에는 자신이 그린 것도 나중에 마음에 안 들거나 하면 위작이라고 주장한 사례도 있고, 위조범의 경우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적도 있기 때문에 작품의 철저한 재조사가 무엇보다 긴요한 것이다.

그러나 천경자의 타계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가와 미술사적 의의 등에 대한 조명은 뒷전에 두고 가족사나 위작논란을 이슈화한 것도 유감이다. 그는 우리 현대 화단의 보기 드문 개성파 작가였으며 여성화가로서 거장이었다. 그림과 수필 모두 어느 누구 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본화를 전공했지만, 신동양화의 차원에서 이집트의 벽화성을 비롯해 라파엘 전파와. 샤갈, 르동, 앙리 루소 등의 환상성과 장식성을 혼합하면서 시대적 과제였던 채색화의 왜색을 극복했는가 하면, 자전적 주제의식의 심층적 모티프로 독창적인 세계를 이룩하며 한국화의 현대미술로서의 가능성을 열은 작가인 것이다.

천경자는 한국전쟁과 가족사의 잔혹과 비극의 절망감에서 화려하면서도 징그럽고, 저주스러우면서도 슬픈 몸뚱어리의 뱀을 무더기로 그린 「생태」를 1952년 부산 피난지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발표하고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서정주의 「화사」를 연상시키는 이 그림은 미학적 본능과 한으로 점철된 천경자의 자전적이고 독자적인 세계를 예고하는 의의를 지닌다. 그의 독보적인 양식으로 손꼽히는 꽃과 나비가 어우러진 여인상도 「생태」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를 그는 자기의 분신처럼 그렸으며, 정면관과 측면관의 엄숙한 도상성에 눈동자마다 황금색을 칠해 영매성과 신성함을 부여하며 나타내기도 했다. 남국 원주민 여인들의 이색적인 이미지를 통해서는 원초적인 황홀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부분 소품이지만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강렬한 화면은 환상적이며 매우 자극적이다.

천경자의 여인상은 1960년대에 얼굴의 측면관과 눈의 정면관을 조합하여 영생의 이미지를 추구한 이집트 벽화의 인물상을 연상시키는 신화적 모습에서 본격화 됐고 1970년대에 개성화와 전형화를 이룩했었다. 위작 논란을 일으킨 「미인도」에 적혀있는 1977년은 그가 이러한 여인상을 가장 많이 남긴 해였다.

홍선표·이화여대 명예교수·한국회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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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 2015-11-18 08:54:41
위작 논란에 대하여 본질은 작가가 살아있을때 본인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면
그 어느것 보다 본인의 판단을 우선시 해야 한다고 본다.위작을 진본으로 우기는 이유는 과학적 근거에 의해 증명이 된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천경자 화백의 그림은 폐기하여야 했다. 누가 진본으로 판정하여 이득이 있는것인가 생각할때 하등의 논란과 시비가 되지 않는다. 본인의 주장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옳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