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21:40 (목)
皇國臣民을 내면화한 일본의 국민작가 … '메이지의 정신' 정치적 독해 필요하다
皇國臣民을 내면화한 일본의 국민작가 … '메이지의 정신' 정치적 독해 필요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1.02 13: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37강. 윤상인 서울대 교수의 ‘나쓰메 소세키 『마음』’
▲ '메이지의 정신'을 정치적으로 해석해낸 윤상인 서울대 교수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가 6섹션에 접어들었다. 6섹션은 나쓰메 소세키, 루쉰, 마르케스, 밀란 쿤데라 등 ‘근대·현대소설’의 문제작을 읽는 데 집중한다. 지난 24일(토) 37강은 윤상인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일문학)가 진행한 ‘나쓰메 소세키 『마음』’이었다.
윤상인 교수는 서강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 비교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세기말과 나쓰메 소세키(世紀末と漱石)』 『위대한 아시아』(공저), 『일본의 발명과 근대』(공저) 『일본문화의 힘』(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그 후』,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등이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최초의 문호’로 지금도 일본 독자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구 근대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세계를 조명했다. 윤상인 교수는 “20세기 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은 100년 동안 이 작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왔다. 이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이 ‘근대’라는 시대를 살아온 일본인들의 정신적 경험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말한다”라고 평가한다.
이날 강연에서 윤 교수는 “존재의 불안, 구원의 주재라는 내밀한 문제를 긴밀한 구성 안에 녹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 『마음』을 ‘일본의 근대’라는 지평을 대입해 읽어냈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사진출처=https://en.wikipedia.org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100년의 나쓰메 소세키

▲ 일본 국미작가 나쓰메 소세키

일본에서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여전히 각별한 존재이다. 1년 후인 2016년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사후 근 1세기에 걸쳐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존경과 지지는 흔들린 적이 없다. 『마음』을 비롯해서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같은 그의 소설은 일본 문학사의 정전(canon)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국민 작가’라는 영예가 단지 그의 미학적 성취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諭吉)를 근대화의 스승으로 추앙하듯이, 나쓰메 역시 근대 일본의 정신적 현실을 진단하고 나아가야 할 지표를 제시한 지식인으로 보고 있다. 일본 학계는 그의 논설과 강연을 ‘문명 비평’이라는 층위에서 부각시켜 왔다. 이 과정에서 서양 문명에 대한 상대적 관점을 바탕으로 시대와 일본 사회에 대한 통찰을 전개한 ‘국민적 지식인’으로서의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평가가 정착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한 서신에서 창작을 하는 이유를 놓고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천하를 위해, 천황 폐하를 위해, 사회의 모두를 위해서”라고 부연했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한다. 이는 ‘다음 세대 청년들의 살과 피가 되어 존속’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는 발언과 더불어 나쓰메의 창작 입문이 문사 의식에 기초한, 다분히 공리적인 맥락에서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나쓰메 소세키가 문학이 국가와 사회의 지속, 발전에 필수적인 정신적 근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1세대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영문학과 서양 문명과의 만남을 통해 일본인으로서의 자기 인식을 강화해 나갔다. 아울러 타자로서의 서양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개인주의, 자기본위의 사상을 체득했고, 이윽고 소설가로서 자립의 길을 걸었다. 일본이 서양이라는 외부의 자극을 통해 근대화의 길에 들어선 것과 동일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를 통해서 동아시아에서의 문학의 운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일본과 정신주의
『마음』(1915)은 탐정 소설의 기법이 가미된 심리 소설이다. 화자인 ‘나’가 ‘선생’에게 접근하고 종국에는 선생이 스스로 자신이 껴안고 있던 어둠의 근원을 유서로 밝히면서 이야기를 맺는다. 이 소설은 한 세기가 지난 요즈음 독자들에게도 전혀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의 세부를 살펴보면 이 소설에는 그의 다른 어느 소설보다도 낡은 가치관이 투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1909) 등에서 그려진 반사회적인 표현도 개인주의에 대한 언설도 이 작품 속에서 희미해진다. 그 대신 전통 지향적이고 보수적인 세계관이 자리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메이지 천황의 죽음에 즈음한 노기 마레스케의 순사나 ‘선생’의 죽음은 분명히 武士道 윤리라는 문맥에서의 독해를 요구하고, 천황과 ‘선생’, 부친의 계속되는 죽음은 독자에게 군사부일체라는 유교 이념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천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부권적 질서는 이 작품의 서사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아울러 이 소설은 ‘국가’와 ‘국민’을 환기시키는 언설이 많이 내포된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음』에 등장하는 ‘메이지의 정신’, 가족과 고향에 대한 애착 등의 표현은 ‘정신 공동체’로서의 일본을 상상하게 한다.

정신(혼)과 육체의 이원론적 구조는 『마음』의 첫 부분에 이미 나와 있다. ‘내’가 가마쿠라의 해변가에서 처음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선생이 혼자서 서양인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인데, 데려온 서양인이 ‘달랑 팬티 하나 외에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고 ‘아름다운 하얀 피부’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생의 유서’에 전개되는 유교적, 혹은 무사도적 정신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복선이라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서양인과 ‘선생’의 대조적인 모습은 육체와 정신이라는 이원론, 나아가 서양의 물질문명과 일본적 정신주의라는 이항대립 구도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서 정신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사도 윤리이다. 실제 노기 마레스케와 K, 그리고 ‘선생’의 죽음은 무사도 윤리의 체현으로서의 자살이라는 맥락으로 수렴된다. 소세키는 ‘무사도가 퇴폐해 배금도가 되고 말았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이는 나쓰메 자신도 무사도를 물질문명(혹은 서양 문명)에 대항할 수 있는 일본 고유의 정신 윤리로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죽음과 정치-‘신민의 마음’
『마음』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독자는 이야기 전개에 따라 다섯의 죽음과 대면하게 된다.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천황의 病死, 노기 대장의 자살(殉死), ‘선생’의 자살, 그리고 부친의 병사이고,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K의 자살이 있다. 그런데 이 중 천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 사람의 죽음은 각각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죽음이라는 물리적 현상에 내셔널리즘의 맥락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죽음은 국가와 개인을 일체화하는 특권적인 모티프로서 작품 세계에 편재해 있다. 메이지 천황의 죽음에 잇따른 세 사람의 죽음에는 시대와 국가, 혹은 천황에 대한 국민(신민) 의식이 개재돼 있다. 이 세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것은 메이지 천황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들은 개인이 죽음을 통해 시대와 국가에 참여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선생의 유서’에 나오는 메이지 천황의 붕어와 노기 장군의 순사에 대한 기술은 과거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의 저장고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과거 역사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킴에 따라 이를 읽는 사람들을 ‘국민’으로서 사회화시키는 문학 표현으로서 계속 읽히는 것이다.

이점에서 메이지 시대의 문명개화를 겉핥기식 근대화로 규정한 나쓰메가 메이지 천황의 사망 후 발표한 장편 소설 『마음』에서 주인공 ‘선생’의 유서를 통해 메이지 시대에 대한 강한 일체감을 표명한 것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주인공 ‘선생의 유서’로 구성되는 『마음』의 후반부 한 구절을 보자.

“그러고 있노라니 여름 무더위가 정점에 달했을 때 메이지 천황이 붕어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이 천황에서 시작해서 천황으로 끝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이지의 영향을 가장 깊이 받았던 우리들이 더 살아서 남아 있는 것은 필시 세상의 낙오자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인용문 중에 나오는 ‘메이지의 정신’이라는 어구는 천황제와 메이지 시대에 대한 나쓰메의 정치적 인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연구는 ‘메이지의 정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기피해 왔다. 예컨대 삼각관계의 비극적 결말로서 “자기 처벌과 자살 원망을 포함해 자신의 운명적인 삶을 ‘메이지의 정신’이라는 말로 에워싸고 규정하려 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텍스트상의 공적·정치적 언설을 애써 사적·비정치적 영역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의도야말로 ‘정치적’일 수 있다.

나쓰메는 천황의 사후 발표한 「메이지 천황 奉悼辭」에서 “과거 45년간에 발전한 가장 빛나는 우리 제국의 역사와 함께하신 잊을 수 없는 大行 천황께서 지난 30일 붕어하시다”라고 적은 바 있다. 이러한 메이지 천황의 치세에 대한 나쓰메의 칭송을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비자발적으로 표명된 의례적 언설로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는 대다수 일본인 연구자들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나쓰메는 메이지 천황의 죽음을 계기로 신민(국민)으로서의 자각과 국가와 시대에 대한 귀속 의식을 보다 강화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에게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전 국민적인 애도 속에서 ‘제국의 역사와 함께한’ 메이지 천황의 ‘성덕’을 기리고자 하는 충성스러운 신민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