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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수요 맞춤이라더니, 왜 학생들 이야기는 듣지 않나요?”
“사회수요 맞춤이라더니, 왜 학생들 이야기는 듣지 않나요?”
  • 이재 기자
  • 승인 2015.10.29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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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프라임·코어·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서울지역 공청회

교육부가 대학의 질적 구조개혁을 이끌겠다며 약 3천억원의 예산을 배정한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이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히고 있다. 당초 1천2백억원으로 예상됐던 대학 인문역량 강화(코어) 사업의 예산이 4분의1 수준인 340억원으로 책정돼 인문학계의 비판이 거셀 뿐만 아니라 교육부가 연세대에서 개최한 서울지역 사업공청회에서는 사업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참석해 구조개혁의 정당성을 꼬집는 등 안팎으로 지탄을 받는 모양새다. 

▲ 27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교육부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 2차 공청회에 참석한 한 학생이 교육부가 5.31교육개혁의 실패를 대학과 학생에게 전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재 기자

2일 대학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모임인 ‘대학교육연구모임 대학고발자’ 소속 학생 7명은 연세대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에 반대했다. 이들은 이 사업이 개별 대학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정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2시부터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교육부 공청회에도 참석해 공개질의를 이어갔다. 

이들은 “현재 대학의 위기는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앞세운 교육부의 정책 실패인데, 이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재정을 미끼로 대학 간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지방대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산학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의 주요 평가지표가 ‘구성원간 합의’다. 교육부는 지난 6년간 학과통폐합 사례가 1천320곳에 달하고 이 모든 통폐합 과정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나 있느냐.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달라고 총장실을 점거하거나 삭발하고 단식했던 일들을 아느냐”고 따졌다.

이밖에도 사회수요에 맞춰 입학정원을 유동적으로 바꾸라는 것은 기업이 부담해야 할 자기인재교육비용을 대학에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날 프라임 사업 기본계획 시안을 발표한 하연섭 연세대 교수(교육학)는 “교육부가 각종 재정지원사업을 늘려서 대학을 지원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인 세금이 지원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교육부와 정책연구진 입장에선 이를 성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총장실 점거 같은 물리적인 반대는 사업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학생들의 지적은 교육부가 내놓은 사업 기본계획 시안에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하 교수는 “대학의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사업이 아니다”라고 애써 항변했지만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교수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날 공청회장을 찾은 경남지역의 한 대학 관계자는 “프라임 사업에 지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느 정도까지 정원을 조정해야 ‘안정권’으로 볼 수 있을지 고민이 크다. 교육부가 인정 기준에 대해 보다 확실히 밝히지 않는 한 혼선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 교육부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의 서울지역 공청회가 서울 신촌 연세대에서 열렸다. 교수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공청회 설명자료를 보고 있다. 사진=이재 기자

기본계획 시안을 보면 대학은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기존 학과의 정원을 줄이거나 학과 자체를 폐지해야 정원 조정 인정 기준을 충족해 사업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순히 모집단위를 통합하거나 단과대학을 개편해 이동하는 경우에도 정원 조정 인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대학으로서는 확실하게 학과를 폐지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교육부는 ‘구성원간 합의’를 평가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혀 대학가의 빈축을 샀다. 김승억 세종대 교학부총장은 “사업선정을 내년 2월에 한다는 방침을 내놨는데, 현실적으로 11월 이후에나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 대학의 입장에서는 구성원간 합의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런 마당에 구성원간 합의를 평가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게 앞뒤가 맞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예상보다 턱없이 낮은 금액을 배정받은 인문학계의 반발도 크다. 특히 사업비 3백억원을 배정받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육성사업과 배정액이 44억원 차이밖에 나지 않아 ‘인문학의 중요성이 이 정도에 불과하느냐’는 불만이 커졌다. 기본계획을 발표한 류병재 충남대 교수(언어학)는 오는 11월 국회에서 예산을 1천2백억원에 근접하도록 책정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지만 성난 인문학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 와중에 코어 사업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기존 교수업적평가 내용까지 교체하도록 하고 있어 갈등이 커졌다. 한 교수는 “사업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인데 대학구조개혁 평가 등에서는 연구성과를 강조하며 논문 생산량을 측정하고, 코어 사업에서는 논문량이 아닌 저술이나 다른 형태의 연구성과를 인정한다며 바꾸라고 하니 일선 대학 입장에서는 혼란이 크다. 명확하게 입장을 밝혀라”고 질타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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