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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성장신화의 이면에서 개인들 各自圖生하는 사회 됐다”
“양적 성장신화의 이면에서 개인들 各自圖生하는 사회 됐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0.19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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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성장의 고고학』의 저자들이 말하는 반세기의 변화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소장 장덕진)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지금까지 축적한 사회조사 자료를 집대성해 『압축성장의 고고학: 사회조사로 본 한국 사회의 변화, 1965~2015』(한울 刊)를 내놨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한창인 시점에 나온 책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1965년 창립했다. 당치 명칭은 ‘인구연구소’였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면면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창립 당시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인구, 가족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사회발전연구소의 연구는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도시-농촌 간 인구이동, 도시인의 삶, 출산, 노령화 등 다양한 주제로 그 행보를 넓혔다. 이때 작성된 자료들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밑바탕이 됐고, 많은 사회학자들이 거쳐 가는 연구 陣地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사회 연구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저출산, 학력 인플레이션, 노령화, 사회복지, 정보사회로의 이행 등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 낸 여덟 가지 주제를 통해 한국 사회가 지난 50년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돌아보는 이 책은 여러 통계 자료와 설문 자료를 내세워 사회의 변천과 그 원인을 짚어냈다.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장덕진 교수는 “지난 50년간 만들어진 여러 편의 양적 사회조사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각 시대를 대표하는 다수의 개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복원하고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려 시도한 독특한 책”이라고 말한다.

사실 압축성장은 가족, 인구, 교육, 공동체, 노동시장 등 사회생활의 전 영역에 걸쳐 다양한 결과들을 낳았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2015년의 한국 사회 역시 그러한 결과들의 누적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사회라는 누적 결과를 단순히 경제성장과 민주화로만 요약한다면 ‘다양한 결과들’이 모두 묻혀버리게 된다. 장덕진 소장은 “현대사를 경제성장과 민주화로만 요약한다면 다양한 결과들이 모두 묻혀 버리게 되고,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사회적 구성 원리에 의해 지금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지난 50년간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서 그들의 생각을 정리해낸 100여 개의 사회조사 자료들에 주목했다. 장 소장은 이를 가리켜 ‘당시에는 가장 현실적이고 생생했던 한국인들의 삶의 기록’이라고 평가하면서, “마치 고고학자들이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파헤쳐 과거의 인간과 사회를 복원해내듯이, 우리는 50년에 걸친 사회조사 자료들을 파헤쳐 한국 사회의 변화를 복원하고 추적한다. 그래서 ‘압축성장의 고고학’이다.”

이렇게 탄생한 『압축성장의 고고학』은 장덕진 소장을 비롯, 김현식 경희대 교수(사회학과), 김두환 덕성여대 교수(사회학과), 김근태 덕성여대 연구교수(SSK 네트워킹 지원사업단), 임채윤 위스콘신대 사회학과 교수(매디슨), 권현지 서울대 교수(사회학과), 최혜지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 배영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과), 김석호 서울대 교수(사회학과) 등이 필진으로 참여해 모두 8개의 주제를 소화했다. 과연 한국인의 삶은 지난 반세기 어떻게 변화했을까.

장덕진 소장의 전체 요약과 결론을 정리했다.

 일곱 개의 하위 분야와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추세 가운데 하나는 개인화(individualization)의 경향이다.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경제적 강요나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그들의 선택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떠맡겨지는 삶의 조건들로부터 또 다른 형태의 강력한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산 자체가 줄어들 뿐 아니라 출산 시기 또한 갈수록 엄격하게 제한되는 양상 등이 그러하다.

교육은 경쟁에서 이겨 더 높은 곳에 올라가겠다는 비도덕적 가족주의가 그 주된 동력이고, 그 결과 사회적 연대의 자원을 파괴하고 성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양상을 보인다.

고령화의 과정은 지역별로 양극화돼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중심의 고령화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하게 진행돼온 대부분 지역의 고령화를 외면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노인 세대 내부의 양극화가 또 다시 진행된다.

도시화의 과정에서 한국의 이웃 공동체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상층의 이탈이었다. 그들은 지위 경쟁의 대상이자 사회적 교류의 보상이 그리 크지 않은 이웃 공동체에 참여하기보다는 이미 많은 자원을 가진 사람들로만 이뤄진 동창회와 같은 연고형 조직들에 참여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그와 비슷한 자원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50년에 걸친 노동 레짐의 변화 과정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연대를 잃어버린 노동자’가 됐다. 연대를 잃어버린 노동자들에게 “남은 생존의 방식은 개인의 도구주의를 힘껏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사회적 위험은 현저하게 늘었고, 그 위험은 계층화됐다. 이러한 위험의 계층화 사다리에서 아래쪽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회연대에 기초한 위험 분산의 기회로부터도 배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정보화는 짧은 시간 안에 빠른 사회 변화를 가져왔는데, 사회의 균형추를 회복하는 네트워크된 개인의 역량은 아직 그 단초를 보이고 있을 뿐 본격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들을 개인화라고 하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급격한 양적 성장 신화의 이면에서 개인들은 갈수록 자신의 삶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변화들을 겪어 왔다는 뜻이다. 각자도생의 사회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에서 드러나는 커다란 사회 변화의 추세들, 즉 개인화, 이중화, 고령화, 위험사회의 등장과 같은 것들이 한국 사회에만 유독 나타나는 병리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이미 여러 선진 자본주의 및 후기 산업사회에서 드러난 현상들이고, 그들은 각기 다른 정치적 선택과 사회적 연대의 수단들을 동원해 여기에 잘 대응해왔거나 혹은 그러한 대응에 실패했다. 『압축성장의 고고학』이 복원해낸 반세기에 걸친 한국인의 삶의 모습과 그 궤적은 이제 우리도 그러한 선택과 수단들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가 됐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삶이 성장의 이면에만 머물 수 있는 세상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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