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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에 흐드러진 꽃다발
절간에 흐드러진 꽃다발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10.19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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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40. 꽃무릇

바야흐로 가을이 성큼 찾아들 무렵이면 전북 고창의 禪雲寺 꽃무릇이 이름 나 많은 사람이 그곳을 찾는단다. 선운사를 가보지 못했지만 고향의 한 친구가 꽃무릇 뿌리를 얻어다 화단에 심어놓아 철철이 그 꽃을 만난다. 상사초도 그 곁에 밭을 이루었으니 여름엔 相思草를, 晩秋엔 꽃무릇을 감상한다. 게다가 그들 꽃에는 호랑나비들이 살갑게 다가와주니 한결 운치를 더한다.

▲ 꽃무릇

꽃무릇(Lycoris radiata)은 수선화과의 다년생초본으로 알뿌리식물(球根植物,bulbous plant)이다. 그리고 ‘돌 틈에서 나는 달래’를 닮았다 해 ‘석산(돌石 달래蒜)’이라 하고, 상사초를 닮았다해 ‘붉은 상사초’라 부르며, 서양 사람들은 ‘red spider lily’라 부른다. 추위에 약한 편이라 우리나라에서는 남부지방의 선운사나 불갑사 등의 산사 근처 숲속에 많이 심었다.

花葉不相見이라, 꽃과 잎은 서로 만날 수 없다! 꽃무릇이나 相思花는 결코 花葉이 만날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을 상징하는 식물로 꽃말(花詞)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다. 相思病이란 남녀가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이렷다. 두 꽃 모두다 잎사귀 한 장 없이 가녀린 꽃대 위에 오뚝 꽃송이들을 매달았으니 왠지 모르게 구슬픈 그리움과 애틋한 외로움이 배어 있는 듯하다.

꽃무릇과 상사화를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무엇보다 꽃무릇은 꽃이 진 뒤에 퍼뜩 잎이 나지만 상사화는 잎이 지고 꽃이 피고, 또 꽃무릇 꽃은 짙은 선홍빛인데 비해 상사화는 연보랏빛이거나 노란빛이다. 또한 꽃무릇은 시월 초순에 꽃을 피우는 반면에 상사화는 칠월 말쯤에 꽃이 피니, 한마디로 꽃무릇이 가을꽃이라면 상사초가 여름 꽃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상사화(Lycoris squamigera)는 역시 알뿌리를 갖는 水仙花科에 딸린 여러해살이풀로 꽃무릇(L. radiata)과 같은 Lycoris속이다. 같은 屬(genus)이란 분류단계에서 種(species) 다음으로 가깝다(비슷하다)는 의미다. 상사화도 제주도를 포함한 중부 이남에 분포하고, 난초 잎과 비슷한 잎이 2~3월경에 일사분란하게 나온다. 푸르렀던 잎은 6월이면 가뭇없이 시들어버리고 8월초면 꽃이 핀다. 꽃대가 쑥쑥 자라 네댓새 만에 곧장 꽃을 피우며, 무척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그리고 꽃무릇과 이름이 비슷한 무릇(Scilla scilloides)이란 것이 있는데 학명을 비교해 보아도 속명이 완전히 다름을 알 것이다. 무릇은 심지어 과까지 다른 백합과에 들기에 수련과의 꽃무릇과 더더욱 判異한 초본이다.

꽃무릇으로 돌아와, 이것의 원산지는 아마도 한국이거나 중국·네팔로 추정하며, 그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미국 등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한국·일본·중국·인도차이나(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미얀마 등지에 22종이 나고, 일본에선 무려 230 품종을 개량했다하니 그들이 죽고 못 사는 꽃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일본이나 우리나라의 것은 3배체의 수박씨를 만들어 심으면 씨 없는 수박이 되듯이 염색체가 3n(三倍體, triploid)이라 씨가 생기지 않지만 중국 것은 씨를 맺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꽃무릇은 不姙으로 모조리 뿌리번식(營養繁殖)을 하고, 옆으로 뿌리가 자꾸 새로 번져나 무더기를 이룬다.

花無十日紅이라고, 황홀하고 찬란했던 꽃무릇은 1주일이면 홀연히 시들어버리고, 꽃이 지자말자 단숨에 줄기차게 앳된 잎눈이 大擧(한꺼번에 많이) 안간힘을 다해 치솟기 시작한다. 역시나 수선화(daffodil)를 닮아 잎은 길고 부드러우며, 길이는 30~60cm로 길쭉하고(외떡잎식물로 잎맥이 나란히 함) 폭은 0.5~2cm이다. 한가운데에 굵고 흐릿한 잎맥이 있는 잎은 푸른빛을 띤 진녹색이고, 늦가을에 시들기도 하지만 겨우 내내 추위를 견뎌 푸름을 이어간다.  알뿌리는 여러 겹의 비늘로 싸였고, 길이 5~8cm, 폭 3~5cm이다. 잎이 진 뒤 허겁지겁 길이 30~70cm의 가녀린 꽃대(꽃자루)가 생겨나고, 그 끝에 여러 개의 꽃이 달리는 우산 꼴인 傘形花序다. 꽃잎은 하늘하늘 나리꽃처럼 뒤로 굽고, 야무진 꽃밥(葯,anther)이 달린 7개의 긴 수술이 꽃잎보다 훨씬 길게 쭈뼛쭈뼛 뻗는다.

우리나라의 꽃무릇이 유독 절(寺)에 많은 까닭은 뭘까? 바로 꽃무릇 뿌리에 라이코린(lycorin), 라이코레닌(lycorenin), 세키사닌(sekisanin) 등 여러 가지의 알칼로이드독성분이 든 탓이다. 寺刹과 佛畵를 보존하기 위해 알뿌리를 많이 사용해왔으니, 절집을 단장하는 단청이나 탱화에 독성이 강한 꽃무릇의 뿌리를 찧어 바르면 해론벌레인 좀이나 벌레가 슬고, 꾀지 않는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야생 코끼리 사냥용 독화살에 발랐다고 할 정도로 독한 뿌리다.

그런가하면 일본에서는 自古以來로 꽃무릇꽃을 가을의 신호로 여겼다. 또 논가나 담장  밑에 많이 심으니 해충이나 쥐 따위의 해론동물을 마구 쫓기 위함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이 꽃을 장례식에 흔히 쓰고, 이토록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의 세계에 드는 彼岸花라거나 사바세계의 저 쪽에 있다는 極樂淨土의 꽃으로 섬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무덤가에 더러 심으니 망인에게 바치는 꽃인 셈이다. 그러나 이 꽃은 애오라지 죽음과 관계있는 불길하고 발칙한 꽃이므로 꽃무릇 꽃다발을 대놓고 함부로 줘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중국에서도 비슷하게 黃泉이나 地獄으로 인도하는 꽃으로 여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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