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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발전의 '구조'에 대한 통찰…"과학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이다"
과학발전의 '구조'에 대한 통찰…"과학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이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0.19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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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35강. 홍성욱 서울대 교수의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 토마스 쿤(사진 아래)의 통찰을 설명하고 있는 홍성욱 교수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의 5섹션 ‘근대 사상과 과학’의 여섯 번째 강연이 진행됐다. 지난 10일(토) 홍성욱 서울대 교수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어냈다.

홍성욱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 및 동 대학원에서 과학사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대 박사 후 과정을 거쳐, 1995년에 같은 대학 과학기술사철학과 조교수로 임용됐고, 2000년에 종신교수가 됐다. 매사추세츠공과대 디브너연구소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잡종, 새로운 문화 읽기』, 『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 기술』,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 『인문학으로 과학 읽기』(공저), 『과학으로 생각한다』, 『홍성욱의 과학 에세이』 등이 있으며, 편역서로 『과학, 그 위대한 호기심』, 『과학혁명의 구조』(공역) 등이 있다.

흔히 ‘패러다임 쉬프트’를 말할 때마다 호출되곤 했던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어느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을 가리키는 개념인 ‘패러다임’을 처음 소개함으로써 화제가 됐던 책이다.

과학기술사에 정통한 홍 교수는 이 책을 어떻게 읽어냈을까. “『과학혁명의 구조』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과학적 인식이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였다. 이 점이 쿤이 가져온 ‘혁명’이, 19세기 다윈의 혁명만큼이나 큰 반향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또 수용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그리고 아직도 충분히 수용되지 못한) 이유다”라고 말하는 그의 강연 주요 대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20세기에 출판된 학술서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고, 가장 널리 읽

히고,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이다. 구글 인용지수를 기준으로 이 책은 현재 7만9천400회가 넘게 인용됐다. 쿤이 발굴한 패러다임(pardigm)이란 개념은 이제 일상용어로 자리 잡았다. 도대체 『과학혁명의 구조』는 무슨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기에 이렇게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서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까.?

■ 『과학혁명의 구조』의 주장과 내용

▲ 토마스 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 발전의 ‘구조’에 대한 책이다. 쿤에 의하면 과학은 패러다임이 정립된 정상과학과 이것이 바뀌는 과학혁명을 반복하면서 발전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한 과학 분야가 그 분야의 토대가 되는 이론이나 연구를 가능케 하는 방법론, 그리고 의미 있는 문제의 총체인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면 이 과학 분야가 정상과학 단계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정상과학 하에서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퍼즐 풀이에 몰두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과학의 패러다임 내에서 풀리지 않는 변칙(anomalies)이 등장하고, 이 경우에 정상과학은 위기(crisis)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위기가 지속되면서 기존의 패러다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해서 변칙을 설명하고, 그 뒤에 두개 혹은 그 이상의 패러다임이 경쟁하는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 시작된다.

패러다임이 해결할 수 없는 변칙적 문제를 만나면 정상과학은 위기의 국면과 과학혁명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러나 변칙이 계속 등장하고 과학자 공동체가 기존의 틀을 바꾸지 않고는 변칙들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 때 과학은 위기의 국면에 들어간다. 위기가 고조되고 경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혁명 단계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쿤의 저서에서 가장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점은 바로 두 패러다임의 비교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쿤은 아리스토텔레스 패러다임과 뉴턴 패러다임 사이에, 혹은 뉴턴 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간에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이 있다고 주장했다. 공약불가능성은 원래 수학에서 √2와 같은 무리수를 a/b와 같은 유리수의 비로 표시할 때 a와 b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었는데 1960년대 초반에 쿤과 파이어러벤드(Feierabend)에 의해서 서로 다른 과학 체계의 관계를 지칭하는 말로 거의 동시에 사용됐다.

쿤은 과거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 사이의 비교가 합리적인 잣대로만 이뤄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쿤의 주장의 핵심은, 완벽했지만 한두 현상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패러다임과 한두 현상을 잘 설명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패러다임과의 선택이, 하나의 패러다임 내에서 두 이론을 비교하는 데 사용되는 여러 합리적인 기준을 사용해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쿤의 이런 설명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패러다임 사이의 공약불가능성은 존재할 수 없고, 또 존재한다고 해도 알 수 없다는 비판이 등장했다. 쿤은 이런 과학철학 분야에서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해서 공약불가능성을 두 패러다임의 언어가 1대1로 번역될 수 없다는 ‘번역불능성(untranslatability)’으로 해석했다.

■ 인접 학문에 대한 『과학혁명의 구조』의 영향

쿤의 이러한 주장은 자연과학을 모델로 지식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던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따라서 과학이 이렇다면 역사학자들은 하나의 과학적인 설명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지금 던지는 상이한 질문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이한 노력의 총체가 바로 역사학이며, 역사학이 지금의 모습 그 자체로 타당성을 가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우리는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과연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도전을 내포하고 있었는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쿤 자신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일관성 있게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쿤은 과학적 객관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과거의 객관성이 ‘자연’을 기준으로 삼아 보장되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패러다임’을 기준으로 삼아 형성되는 것으로 바뀌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과학 공동체가 패러다임을 선택하면,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에게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과 방법론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 즉 관찰 대상과 관찰 결과까지도 제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그 속에서 이론과 실험을 비교하고, 이론을 확장하고, 상수를 결정하며 측정하는 등, 과학 활동의 전부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패러다임은 이 중에 어떤 활동이 더 가치 있는 것이며, 어떤 이론이 더 관찰 결과와 잘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공했는데, 쿤에게는 이것이 과학의 합리성, 객관성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비판자들이 보기에 쿤은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부정했지만, 쿤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항상 문제가 많고 모호했던 ‘자연’이라는 준거를 더 확실한 ‘패러다임’이라는 준거로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과학의 객관성, 합리성은 과학자 공동체가 합의한 패러다임이라는 준거의 틀 속에서 더 분명하게 손에 잡히는 개념이 됐던 것이다.

■ 『과학혁명의 구조』의 의의

쿤에 의하면 두 패러다임 사이에 공약불가능성이 존재하고, 이것이 정상과학의 누적적이고 연속적인 발전에 균열을 가져온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채택될 경우에 과학자들은 기존의 현상을 새로운 언어로 기술하고, 새로운 현상에 주목하며, 새로운 데이터를 내어 놓는다. 또 과거에 다뤄진 모든 문제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이 중에서 잊혀지는 것이 발생한다. 과학의 발전은 세상에 대한 절대적 진리를 향해서 누적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단절적인 변화를 연속적으로 겪는다는 것이 쿤의 주장이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과학적 인식이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였다. 이 점이 쿤이 가져온 ‘혁명’이, 19세기 다윈의 혁명만큼이나 큰 반향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또 수용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그리고 아직도 충분히 수용되지 못한) 이유다.

지금은 과학에 대해 더욱 성찰적인 태도가 절실하다. 이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가 지속가능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과학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러하다. 과학이 자연에 존재하는 진리를 발견한다는 단순한 사고에서 벗어나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나타난 것 같이 과학에 대해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이해를 시도해 보는 것이 과학의 교육은 물론 과학과 사회와의 관계를 한 단계 더 성숙한 수준으로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혁명의 구조』에는 정상과학이 왜 놀라울 정도로 급속하고 깊이 있게 발전하는지, 과학적 창의성이란 무엇인지, 과학자의 구체적인 실행(practices)에 주목하는 것이 과학을 이해하는 데 왜 중요한지, 과학이 왜 근본적인 의미에서 문화적이고 사회적 활동인지, 왜 과학자 공동체는 오래된 패러다임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지, 누가, 어떻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창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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